31. 슈바이처와 살아있는 우주
31. 슈바이처와 살아있는 우주
  • 고용석
  • 승인 2019.08.20 10:16
  • 호수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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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순간 탄생하는 우주에 예외없다

슈바이처 문화윤리 가치 강조 
문화파국, 세계관 파국 기인해
살아있는 우주, 보편적인 인식
우주만물 존중 가치로 대해야

기후변화를 비롯한 현대의 난제들을 해결하려면 민족과 국가의 역사를 넘어서는 인류 공통의 역사의식, 나아가 우주적인 정체성까지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일종의 이야기 과도기에 살고 있으며 인류사회의 최대 도전은 공동의 비전 즉 총체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배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상황은 세계대전으로 서구 문명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했던 슈바이처의 입장과 비슷하다.

슈바이처는 문화의 파국은 이야기 즉 세계관의 파국에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문화에 대한 의지는 윤리적인 것을 최고의 가치로 의식하는 보편적인 진보 의지였다. 그는 설사 세계관이 훌륭해도, 문화의 창조는 그 세계관이 내면화되고 윤리화될 때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렇지 않다면 문화는 아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새로운 과학과 인식의 패러다임이 뉴턴의 세계관을 빠르게 대체하며 우리의 삶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과연 인류사회에 공동의 이야기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살펴볼 만한 일이다.

뉴턴에 따르면 우주는 일정한 법칙에 따라 운동하는 복잡하고 거대한 기계이다. 질서정연하므로 예측 가능하며 여러 부분으로 분해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시 짜 맞추어질 수 있다. 그리고 재조립된 시계는 전과 같이 작동한다. 비유하면 죽어있는 우주라 할 수 있다. 죽은 우주에서는 의미나 목적도 없고 우리의 정체성도 알지 못한다. 물질이 전부라면 삶의 중요성은 얼마나 물질을 축적했는가에 달려있다. 즉 소비주의가 정당성을 얻는다. 우주가 죽어있다고 보는 인식의 패러다임에서는 삶의 속도를 늦춤은 곧 자신의 존재를 절망의 나락에 떨어뜨리는 것과 같다. 이 패러다임에서 소비주의와 지구 착취는 직접적이고 당연한 결과다. 

새로운 과학은 놀랍게도 생명과 의식이 우주의 기본 속성일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다. 우주가 살아있는 체계로서의 수많은 주요한 특성들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특성들을 종합해보면 우주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완전히 상호의존적인 체계이며 엄청난 생명에너지에 의해 매순간 끊임없이 재생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에너지의 근본적인 본질에는 존재의 모든 수준에서 선택과 자유가 있는 수준의 의식이 담겨있다. 이것은 기계적 우주가 아니라 확률과 불확실성으로 어지러운 양자기반의 세계이며 자유와 선택은 우주가 학습체계임을 시사한다.

우리가 살아있고 재생하는 우주의 완전한 일부라면 그 연결을 막는 물질적인 번잡한 삶을 자연스레 줄이고 본질적인 삶을 모색하게 된다. 자신 안에서 행복과 잠재력을 계발하고 다른 사람이나 생명체, 자연과 더 의식적인 관계 안에서 존재의 기적을 느끼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그 어떤 것도 매 순간 탄생하는 우주에서 예외 됨이 없다는 깨달음은 삶을 총체적으로 인식하게 하고 우주 만물과의 연계의식은 물론, 세상에 대한 우리의 연민을 일깨워준다. 그 결과 우주 만물을 하나하나 고유하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로 대하게 되며 우리 행동의 결과도 모든 존재가 얽히고설킨 살아있는 우주를 공명해 윤리적인 되울림으로 자신에게 되돌아옴을 안다.

사실 살아있는 우주는 새로운 인식이 아니다. 깨달음을 통한 지혜의 말들은 모두 놀라울 정도로 하나같이 우주를 살아있는 체계로 묘사하고 있다. 2000년 전에 그리스 철학자 플로티노스는 우주를 살아있는 피조물을 모두 그 안에 담고 있는 하나의 살아있는 피조물이라 말했다. 불교도 모든 것이 상호의존하며 매 순간 우주 전체가 끊임없는 흐름으로 새롭게 탄생한다고 한다. 전통의 지혜와 새로운 과학이 만나고 있다. 이것이 인류공동체의 새로운 이야기가 되려면 이 인식이 일상에서부터 윤리적으로 실천되고 지속으로 강화될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요구된다.

고용석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 directcontact@hanmail.net

 

[1501 / 2019년 8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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