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광우 스님의 ‘떠나는 바람은’(임종게)
107. 광우 스님의 ‘떠나는 바람은’(임종게)
  • 김형중
  • 승인 2019.08.20 10:38
  • 호수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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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어(一轉語)의 언어로 열반유훈 표현
수행과 깨달음 경지 잘 담긴 선시

임종게는 남길 유훈 한마디의
반야문자로 나타낸 사리 언어
광우 스님 22자 한글 임종게
‘집착 않는’ 금강경 핵심 전해

떠나는 바람은 집착하지 않는다.
그저 왔다가 갈 뿐이다.

임종게(열반송)는 고승대덕 선지식이 마지막 떠나는 길에 중생에게 선물로 남긴 일 자 천금의 선시이다. 한 소식을 얻은 대장부라면 자신이 평생 가슴에 품고 읊은 한 마디 노랫가락은 있어야 한다. 선시는 짧을수록 상징성이 있다. 일본의 하이쿠는 5·7·5의 3장 15자 형식의 문학이다.

광우(1925~2019) 스님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비구니다. 비구니 강원의 1기 졸업생이고, 동국대학 불교학과 최초의 비구니 졸업생이다. 최초의 비구니 명사(대종사)이다. 한국 비구니 스님들의 표상이고 모델이고 스승이다. ‘떠나는 바람은’은 지난 7월18일 성북동 정각사에서 입적하면서 남긴 22자 한글 임종게이다. 한국 비구니계의 큰 별인 남두성(南斗星)이 떨어졌다.

불가(佛家)에서 승려나 재가불자에 대한 평가의 기준은 부처님의 제자로서 얼마나 투철하게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고, 불교공부를 해서 깨달음의 지혜를 체득해 중생을 위하여 자비를 실천했는가? 또 국가와 사회에 공헌하였으며 불교교단에 이바지했는가? 이다. 

광우 스님은 비구니의 대모(代母)이다. ‘배워야 한다.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항상 역설하셨고, 공부하는 스님 학비를 마련해 준 인로왕보살이다.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의 마음을 근본(體)으로 삼고, ‘법화경 보문품’의 관세음보살의 자비심을 실천행(用)으로 산 육신보살이다.

스님은 대중에게 베푼 덕화와 설법을 통해서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낸다. 임종게는 자신이 깨달음을 얻어 실천했던 금구성언과 남기고 싶은 유훈을 한 마디 문자인 반야문자로 나타낸 불멸의 사리(舍利) 언어이다.

근래에 큰스님들 임종게가 전통적 사구게, 한시 형식에서 벗어나 알기 쉬운 한글 선시풍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다. 서포 김만중은 남해 유배지에서 지은 ‘서포만필’에서 “우리말로 지은 문학이라야 진정한 국문학이다”고 민족문학론을 설파했다. 김만중은 우리말을 절묘한 리듬으로 살려 낸 정철의 가사문학을 우리나라의 참된 문장,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하였다.  

‘떠나는 바람은’은 우리 민족의 전통 리듬인 3·3·4의 운율적 가락과 1구의 “떠나는”과 2구의 “왔다가”가 대구(對句)를 이루고 있다. 일전어(一轉語)의 깔끔한 언어로 열반유훈을 표현했다. 스님의 수행과 깨달음의 경지를 잘 표현한 한 편의 선시이다.

“떠나는 바람은 집착하지 않는다”는 ‘금강경’의 핵심사상인 “머무름이 없다(無住心)”는 사상을 “집착하지 않는다”고 쉽게 표현했다. ‘금강경’에서는 실체가 없는 본체계의 세계인 공(空)에 대한 6가지 비유(육유: 꿈·환상·거품·그림자·이슬·전깃불)가 있는데, 새롭게 ‘바람’으로 표현했다. 바람처럼 왔다가 가는 인생이다. 그러나 바람은 만물을 살리는 생동의 에너지가 있다. 바람이 통하지 않으면 생물은 죽는다. 미당은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다”고 노래했다. 바람은 실체가 없다. 그래서 그물에도 걸리지 않고 어느 곳이나 마음먹은 대로 갈 수가 있다. 무장무애한 자유인이다. 

“그저 왔다가 갈 뿐이다”고 한 것은 현상계의 가고 옴이 있는 무상의 세계를 읊은 것이다. 여기서 ‘바람’은 스님을 상징하고 우리 모두를 상징하고 있다. 

보통 한글로 남긴 임종게를 보면 시조 형식의 3장이나 사구게 형식의 4장의 선시인데 광우 스님은 2장으로 새로운 형식의 임종게를 선보였다. 스님은 바람처럼 집착 없이 왔다가 떠났다고 읊고 있지만, 기실은 중생을 이롭게 하는 큰 비(光雨)를 내리고 바람처럼 티끌을 남기기 않고 가셨다.

김형중 동대부여고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501 / 2019년 8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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