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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사랑한 일본스님

  • 데스크칼럼
  • 입력 2019.08.26 11:07
  • 수정 2019.09.05 06:50
  • 호수 1502
  • 댓글 0

고려말 석옹·근대 소마 스님
현대엔 이치노헤·잇코 스님
일본인 자체가 적일 순 없어

드물지만 일본보다 조선을 더 사랑한 일본인들이 있다. 조선인 유학생 박열의 부인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옥중에서 세상을 떠난 가네코 후미코, 독립투사 변호에 앞장선 변호인 후세 다쓰지, 조선 독립을 외치다 그의 조국에 의해 사형당한 고토쿠 슈스이 선생 등이 대표적이다.

불교사에도 한국을 사랑한 일본 스님들이 종종 등장한다. 고려말 회암사의 석옹(石翁) 스님이 그렇다. 언제 어떻게 한반도에 건너왔는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는지도 확인할 수 없지만 뛰어난 선사였음은 분명하다.

‘나옹화상집’에 따르면 나옹 스님은 출가해 4~5년간 전국의 이름 난 사찰들을 찾아다니다 회암사에 이르렀다. 스님은 밤낮으로 눕지 않고 용맹정진을 거듭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암사의 선승들을 지도하던 석옹 스님이 수행처소를 찾아 벽력같이 소리쳤다. “여기에 모여 앉는 그대들은 듣는가?” 모두들 깜짝 놀라 우물쭈물했다. 그때 나옹 스님이 ‘부처를 가려 뽑는 곳에 앉아/ 정신 바짝 차리고 눈여겨보니/ 보고 듣는 주체 다른 물건 아니고/ 본래 그 옛날 주인이더라’라는 게송으로 답했다. 젊은 선승의 게송에 늙은 일본의 선승이 무척 기뻐했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짧은 일화지만 석옹 스님이 한국문화에 익숙하고 선승들을 지도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과 지도력을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고려불교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었기에 이역만리에서 선승으로 살아갔음도 짐작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소마 쇼에이(相馬勝英, 1904~1971) 스님도 한국불교를 무한히 아끼고 존중했다. 정영식 박사의 연구(‘근대 한국불교에 있어서의 성지순례의 제상’)에 따르면 소마 스님은 일본 조동종 선승으로 고마자와대학을 졸업하고 1929년 한국에 왔다. 처음엔 소마 스님도 일본불교가 한국불교보다 우월하다는 제국주의 관점을 지녔으나 7년간 한국의 사찰을 순례하고 수행하며 이러한 입장이 싹 바뀌었다. 대강백 석전 한영 스님에 대해 “조선 최고의 강사”라고 칭송하는가 하면 선암사 경운 스님에 대해서도 지극한 존경을 표했다. 무엇보다 그에게 큰 감동을 준 고승은 한암 스님이었다.

소마 스님은 오대산 상원사에서 안거에 들어 정진하면서 보고 느낀 한암 스님의 일상과 수행경지를 ‘조선불교’에 기고했고, 이 글은 큰 화제가 됐다. 이후 수많은 일본의 고위관료와 학자들이 한암 스님을 찾아왔고 칭송과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경성제대 교수 사토우 타이쥰은 “한암선사는 일본천지에서도 볼 수 없는 인물임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둘도 없는 존재”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소마 스님의 한국불교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일본의 스님과 지식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이런 스님은 오늘날에도 있다. 올해 3월 군산시 명예시민증을 받은 이치노헤 쇼코 스님은 일본 조동종 스님으로 군산 동국사에 일본의 침략을 참회하는 비를 건립했다. 또 군산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후원하는 등 일본의 과오를 널리 알리고 관계회복에 헌신해오고 있다. 2010년부터 한국에 거주하며 일본의 침략을 사죄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매일 기도정진하고 있는 타키모토 잇코 스님도 한국을 사랑하는 스님이다.
 

이재형 국장

한국과 일본은 역사 문제와 이해관계가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보니 서로를 대하는 시선이 싸늘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침탈, 위안부 및 징용, 경제보복 등 참회도 않는 상대를 무조건 용서하는 게 불교의 자비는 아니다. 그렇더라도 원한은 원한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게 부처님의 위대한 통찰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최근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이 당부했듯 “불교는 국가와 민족 구분 없이 동체대비의 자비실현과 사바세계 생명평화를 영구히 보존하는 마지막 보루”이다. 일본인 자체가 적일 수는 없다. 문제 해결에 앞장서되 양국이 극단과 증오로 치닫지 않도록 이끄는 게 불교계의 역할이다.

mitra@beopbo.com

 

[1502 / 2019년 8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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