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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석결(解寃釋結) 원한의 매듭을 풀다

기자명 심원 스님

올 여름이 유난히 무덥고 지루하게 여겨지는 것은 날씨 탓만은 아닌 듯하다. 세상 이야기가 답답함을 더하고 있기 때문이다. 행여나 하고 기대해보지만 연일 쏘아 올리는 미사일과 더불어 남북의 평화 교류는 꿈처럼 아득하고, 세계 주도권을 놓고 도전하는 중국과 지키려는 미국의 양보 없는 패권경쟁에 어느 편에도 설 수 없는 한국은 불안하기만 하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과의 관계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로 삐걱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화이트리스트 제외, 지소미아(GSOMIA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까지 발표되는 등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한반도 국제상황은 양자간 다자간 서로 얽히고설킨 데다, 꼬이고 뒤틀려 있어 만족스런 해결은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 더구나 미국과 중국, 일본과 한국, 그리고 북한까지 모든 당사자들이 “나는 잘못이 없다. 상대방이 문제다. 당신들이 항복하고 당신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외쳐댄다. 과연 그럴까?

까마귀가 날자 배가 떨어지고, 그 배에 맞아 뱀이 머리가 깨져 죽어버렸다.[烏飛梨落破蛇頭] 하늘로 날아간 까마귀는 모른다. 졸지에 변을 당한 뱀이 어떤 원한을 품고 죽었는지.

‘오비이락(烏飛梨落)’ 사자성어의 배경이 된 그들의 이야기는 천태지의(天台智顗) 대사의 ‘해원석결(解寃釋結)’ 법문에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천태 지자대사가 어느 날 삼매에 들어 있는데, 산돼지 한마리가 몸에 화살이 꽂힌 채 피를 흘리며 지나갔다. 곧이어 사냥꾼이 헐레벌떡 달려와 “산돼지 한 마리가 이곳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하고 물었다. 이에 지자대사는 사냥꾼더러 활을 내려놓으라 하고 삼생(三生)의 인연을 들려주었다.

삼생 전에 까마귀가 배나무에서 배를 쪼아 먹고 무심코 날아가자 나무가 흔들리는 바람에 배가 떨어졌다. 마침 그 아래서 볕을 쬐고 있던 뱀이 떨어진 배에 머리가 깨져 죽고 말았다. 이렇게 죽게 된 뱀은 돼지 몸으로 다시 태어났고 뱀을 죽게 한 까마귀는 생을 마치고 꿩으로 태어나 숲속에서 알을 품고 있었다. 이때 돼지가 칡뿌리를 캐먹으려는데 옆에 있던 돌이 굴러 내려갔다. 그 돌에 치어서 알을 품고 있던 꿩이 죽고 말았다. 이렇게 죽음을 당한 꿩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 사냥꾼이 되어 그 돼지를 활로 쏘아 죽이려 했던 것이다. 지자대사는 더 큰 원결과 악연으로 번져가지 않도록 사냥꾼에게 이와 같은 해원석결(解寃釋結)의 법문을 설하게 된 것이었다. 

오비이락 고사에서 보듯이 나는 전혀 의도하지 않고 있으나 지금 이 순간에도 나로 인하여 부질없는 악연이 맺어질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나의 현실은 모두가 직간접적인 인연의 과보이자 새로운 업연의 씨앗이 된다. 

“흉악범이 양아치 죽인 것이라 미안하지 않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대방이 죽을 짓을 한 것”이라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 ‘한강 몸통 시신’ 피의자 장00, ‘전 남편 살해 시신유기 혐의’로 재판정에 선 고00 등. 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죄를 지은 자들과 그들에게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 피해자들. 생각건대 그들의 지독한 악연은 금생에서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닐 것이다. 

국가나 민족 간의 악연도, 개인이나 집단 사이의 악연도, 그것을 깨닫고 용서하고 참회하지 않는 한, 짓고 갚는 윤회의 사슬은 영겁토록 되풀이 될 것이다. 남 탓은 해결책이 아니다. 어떤 상대도 백기를 들고 나에게 항복하지는 않는다. 그들에게도 그럴만한 사유가 있기 때문이다. 원결을 풀고 상생의 길로 가고자 한다면 우선 악연의 실타래가 어떻게 엉켜 있는지 엄정하게 살펴야 한다. 그것이 지혜의 힘이다. 다음으로 내가 당한 억울함과 원한은 내려놓고, 내가 저지른 죄업으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에게 진정으로 참회해야 한다. 그 마음이 자비심이다. 되갚으면서 지어가는 원결의 사슬이 끊기고 모든 이들이 선연(善緣)의 도반이 되는 극락정토는 지혜와 자비의 바탕 위에 비로소 구현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심원 스님 중앙승가대  전 강사 chsimwon@daum.net

 

[1502 / 2019년 8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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