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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현대판 신화의 가능성

기자명 고용석

완전채식, 생명체 위한 윤리적 배려

채식, 지구적 위기 넘길 지혜 
생태주의에 기반한 ‘환경운동’
매일 실천해 상호의존성 자각
공장식 사육, 유전자 조작 극복

옛날에는 육상동물 중 인간이 1%이고 나머지는 야생이었다. 지금은 인간과 가축이 97%이고 야생동물은 3%에 불과하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인류가 다른 진화의 경로를 걸으며 지구를 근본적으로 지배하게 된 요인으로 허구, 이야기의 발견을 꼽았다.

아프리카 한구석에 살던 호모 사피엔스는 7만 년 전 새로운 사고와 의사소통 방식으로 인지혁명을 일으켰다. 특별할 게 없던 이 동물은 직접 보거나 만지지 못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집단적 상상이 가능해졌고 허구를 믿는 이들은 결속하고 협력하게 됐다. 오늘날 국가·인권·화폐·제국·종교·자본주의 등도 이야기가 창조한 상상의 질서이다. 21세기에는 핵이나 생명공학, 지구 온난화처럼 국가나 민족 단위로 해결 안되는 문제들이 많다. 지구 차원의 또 다른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이다.

이는 특정한 국가와 더불어 인류와 지구 자체에도 역할을 갖는 세계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이 요구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정체성의 구축에 민족주의가 장벽으로 여겨져야 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때로 국가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인류 공동의 이익을 특별하게 여겨야 한다. 과연 인간의 타고난 본성과 잠재력을 표현할 뿐 아니라 지구 차원의 총체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이야기 즉 현대판 신화는 무엇일까? 

첫째, 환경운동이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이후 산업화의 무한질주를 제한하는 규제 위주에서 새로운 차원의 인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고 신성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생명의 그물에 대한 훼손은 곧 우리 존재 자체의 훼손이 된다는 생태주의 인식이다. 

둘째, 현대과학은 “우주는 계속해서 흐르는 나눌 수 없는 전체이며 140억 년 전에 출현한 게 아니라 매 순간 태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모든 순간 우주는 하나의 교향곡으로 출현하고 하나로 화합한 하나의 노래라는 것이다. 그 어떤 것도 우주의 재생에서 예외 될 수 없으므로 의식하고 있든 아니든 우리는 우주적 수준의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윤리적으로도 만물은 하나하나 고유하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우리의 행동이 자신에게 되돌아옴을 당연히 여긴다. 

셋째, 삶의 전제에 대한 고민 없이 공장식 사육·단일경작·유전자 조작 등 생명조작과 상품화가 일상인 시대에서 현대의 비건(완전채식) 운동은 위의 새로운 인식들이 음식을 선택하는 인식의 질과 무관치 않음을 분명히 한다. 비건은 기후 해결은 물론, 생태적 르네상스와 지구적 식량재분배를 가져오는 실질적 행동이며 그 실천 동기나 음식의 영적·공동체적 가치에 대한 통찰을 통해 세계의 유한성과 우리 자신의 유한성을 받아들이고 우주적 생명의 순환을 깨닫는 계기가 된다. 

생명체는 다른 생명체에 기댄다. 비건은 탐욕이 아니라 필요만큼의 최소한의 폭력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자 윤리적 배려이다. 생명의 그물에 대한 존중이자 무한한 사랑이다. 또한 우리 문화에 내재한 폭력과 미망으로부터 생명을 본질적이고 신성한 것으로 바라보는 영적 각성이다. 음식과 영성, 문화와의 깊은 통찰은 고대 불살생이나 아힘사의 가르침에서 비롯하여 에머슨 소로우 등 미국 초월주의 진보적 지식인들에 의해 본격화됐다. 이들은 오늘날 생태주의와 시민운동의 선구자들이다. 

우리는 생명 속에 깃든 영성과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는 존재이다.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가능한 모든 부분에서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환경과 문화, 정치경제 등의 총체적 위기도 깊게 바라보면 바로 영성의 문제이다. 영성은 상호의존성의 자각이다. 비건은 모든 생명을 향한 자비심과 그들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한 알아차림에 기초한다. 이름만 비건일 뿐, 사실상 상호의존성 자각의 기본 표현이다.

고용석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 directcontact@hanmail.net

 

[1502 / 2019년 8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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