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래와 같이 행하고 복심고 선 닦으면 왕생하리”
“여래와 같이 행하고 복심고 선 닦으면 왕생하리”
  • 허만항 번역가
  • 승인 2019.08.27 10:53
  • 호수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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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공 스님의 '무량수경청화' 법문(59)] 법 오래 머무는 세가지 방법

첫째 수행법 행하고 증득해야 
둘째 법을 유통하고 선전해야
셋째 굳은 신심으로 전승해야

말법 시기 현대인들은 불법을 
자기 멋대로 수정하는 일  많아
부처님께서도 이를 막기 위해
멋대로 경문 바꾸는 것 금지 
‘법화경’을 비롯한 ‘미륵경’ ‘잡보장경’ 등의 대승불교사상을 담아 조성한 중국 운강석굴.
‘법화경’을 비롯한 ‘미륵경’ ‘잡보장경’ 등의 대승불교사상을 담아 조성한 중국 운강석굴.

“부처님께 효순하고 스승의 은혜를 항상 생각하며 이 법이 멸하지 않고 오래 머물 수 있도록하며 이 법을 굳게 지켜서 훼손되거나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다(當孝于佛 常念師恩 當令是法久住不滅 當堅持之 無得毀失).”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덕은 부모님을 넘어섭니다. 부처님께서는 세간에서 우리를 위해 대승을 건립하고 정토를 건립하셔서 우리는 비로소 제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조사대덕께서 대를 이어 불법을 전하셔서 우리는 비로소 제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이들 조사 대덕께서 법을 전하지 않았다면 이 수승한 법문을 어떻게 만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법을 전하신 스승님에 대하여 이 같은 은덕을 우리는 언제나 마음속에 새겨야 합니다. 이는 법을 전하는 사람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법은 어떻게 오래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첫째 우리는 이 방법에 따라 수행하고 과위를 증득해야 하며 둘째 널리 유통하고 선전하면 이 법은 멸하지 않을 것입니다. 굳건한 신심으로 수지하여 잃지 않고 이 법을 완전히 유지하여 대대로 계속해서 전합니다.

“허망한 일을 하지 말고 마음대로 경법을 더하거나 빼서는 안 되느니라(無得爲妄 增減經法).”

말법시기에 현대인들은 멋대로 경문을 고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부처님께서 여기서 이 한마디로 우리를 일깨우십니다. 만약 진정으로 법을 보호하려면 경전에 대해 한 글자도 변경해서는 안 됩니다. 한 글자도 늘려서도 한 글자도 줄여서는 안 되며 반드시 원본대로 대대로 전하여야 합니다. 마땅히 목숨이 다하도록 신수봉행(信受奉行)하여야 부처님의 제일 제자가 됩니다.  

‘무량수경’에는 왕용서 거사의 회집본(會集本)이 있고 팽소승 거사의 절본(節本)이 있으며 위원 거사의 회집본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 판본에 대해 인광 대사께서는 문초(文鈔)에서 모두 비평하셨습니다. 원인이 바로 경법을 더하거나 뺀 것에 있습니다. 그들은 회집하면서 경우에 따라 경문을 바꾸었습니다. 고친 것이 우리가 보기에는 매우 쉽고 명백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약 경문을 고칠 수 있다면 후대 사람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마다 몇 글자를 고치고 이 경전이 전해지면 모습이 전혀 달라질 것입니다. 그래서 인광 대사께서 이것에 대해 매우 큰 잘못이라고 꾸짖으셨습니다.  

이 때문에 하련거 거사가 회집한 이 판본에 대해 많은 동수들께서 ‘무량수경’ 원역본 다섯 종을 일일이 대조한 결과 확실히 고친 것이 없었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한 문구 한 문구  원문을 거듭 새롭게 배열하고 거듭 새롭게 조직하였지만 모두 원문 그대로 한 글자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판본은 애석하게도 인광 대사께서 보시지 못했습니다. 이 판본이 성공적으로 회집되었을 때(1932년에 회집을 발원하여 1946년에 완성하고 판본을 간행함) 인광 대사는 이미 왕생하셨습니다(1940년12월 2일).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인광 대사께서 이 판본을 보시고 고개를 끄덕이시며 “이 판본은 차이가 많지 않아 유통할 수 있다”고 허락하셨을 것입니다. 이 판본은 확실히 대단히 얻기 어렵습니다.

“요컨대 늘 이 경전을 염송하고 늘 아미타불을 생각하여 중단하지 않는다면 빨리 도를 얻나니 나의 법은 이와 같아 또한 이와 같이 말하노라. 여래께서 행하신 대로 또한 따라 행하고 복을 심고 선을 닦아서 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할지니라(常念不絕 則得道捷 我法如是 作如是說 如來所行 亦應隨行 種修福善 求生淨刹).”

마지막 단락은 그 뜻이 확실히 매우 깊고 광대하여 선(禪)의 맛이 느껴집니다. 요컨대 당신이 염불법문을 행하고 이해하여 왕생을 구하면 일생 중에 왕생하여 물러남 없이 성불할 것입니다.

“나의 법은 이와 같아 또한 이와 같이 말하노라.” 

이 두 마디 말은 실제로 전체 경전의 총결이자 석가모니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일체법의 총결입니다. ‘여시’란 요즈음 말로 사실진상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조금도 보태지도 덜지도 않고 진상 그대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일체 경전은 상상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사실진상입니다. ‘법화경’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십여시(十如是)로 이와 같은 체(體), 이와 같은 상(相), 이와 같은 용(用), 이와 같은 인연과보”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이것에 불과합니다. ‘여시(如是)’ 이 두 글자를 알면 모든 불법을 명백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엄청나게 운이 좋아 무량한 법문 중에서 제일법문인 염불법문을 만났습니다. 내가 일생에 이 법문에 의지해 반드시 삼계육도를 영원히 벗어나서 불과를 원만히 증득하니 이것이 바로 제일법문입니다. 그러나 근성이 성숙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다른 법문으로 유도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불께서 행하시는 바입니다. 우리에게 능력이 있어 우리 자신이 왕생할 자신이 있으면 따라 행할 수 있고 다른 법문으로 근성이 다른 중생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자신의 왕생에 방해가 되면 안 됩니다. 이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따라 행함(隨行)이라 합니다. 반드시 행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따라서 기뻐하며 행합니다.

우리는 복을 심고 선을 닦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정토에 태어나길 구함에 있어 그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볼 수 없지만 우리는 성실히 따라 행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일체중생에게 좋은 모범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생은 이 세간에서 너무나 괴로워합니다. 이렇게 괴로운 것은 복이 없기 때문이고 복이 없는 것은 선을 닦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을 닦지 않는데 과연 복이 오겠습니까? 특히 지금 시대에 무수한 중생은 선을 닦고 복을 심는 것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탐·진·치와 의심 교만이 가득 차 있습니다. 마음속에 이러한 삼독이 가득 차 있는데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학불(學佛)하는 사람은 이 일에 대해 또렷이 명백하게 보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경에서 “마음속 때를 깨끗이 씻고 행동을 바꾸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말하자면 삼독을 깨끗이 씻고 참정성의 마음과 청정심·평등심·자비심을 기르고 회복하면 복이 생길 것입니다. 삼독 속에는 결코 복이 없고 삼독 속에는 무량무변의 괴로움만 있을 뿐입니다. 학불(學佛)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복을 심고 선을 닦으라고 권할 뿐만 아니라 자신도 중생을 교화하고 정토에 태어나길 구하는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정토에 태어나길 구함은 구경원만한 복과 선입니다. 만약 왕생을 구하지 않고 정토에 왕생하지 못한다면 선과 복은 구경의 것이 아닙니다. 세존께서 여기에서 말씀하신 것은 중생을 교화하는 능력이 원만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허만항 번역가 mhdv@naver.com

 

[1502 / 2019년 8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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