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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비구니 승가의 형성과 클로드 드뷔시

기자명 김준희

새로운 음계 탄생시킨 드뷔시 음악서 붓다 연상

독특한 음악어법 만든 드뷔시
당대 문화계 ‘화요모임’ 창립도 
부처님 당시 마하빠자빠티 출가
여성 최초 출가로 ‘획기적 의미’

2004년 한국에서 열린 세계여성불자대회. 비구니승가의 역량을 전 세계에 보여준 자리였다.

19세기 중반 이후 프랑스 파리는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메테르링크, 보들레르, 랭보 등의 문학가들이 중심이 된 ‘상징주의’ 문학은 직설 화법보다는 암시를 통해 아이디어를 나타내고 독자로 하여금 상상력을 불러 일으켰다. 저변의 잠재의식과 내면적인 느낌, 인간의 심리 상태 등을 은유를 통해 표현하는 새로운 문학은 프랑스 문화의 새로운 부흥기를 열었다. 

모호한 윤곽, 몽롱한 텍스처, 빛과 색의 유희로 대표되는 인상주의 화풍 역시 주목할 만한 문예사조였다.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등의 화가들은 형태보다는 색채를 우선하는 즉각적이고 주관적인 인상을 담아냈다. 그들은 이전시대와는 달리 눈에 비친 자연과 빛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자유롭게 표현했다.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는 당대의 문학가와 미술가들과 교류하는 ‘화요모임’을 만들었으며 그 결과 그만의 독특한 음악 어법을 탄생 시킬 수 있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관현악 작품인 ‘목신의 오후에 의한 전주곡’이다. 상징주의 시인 말라르메의 시에 바탕을 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매우 공상적이고 암시적이다. 나른한 여름날의 오후, 목신이 느끼는 알 수 없는 힘에 의한 관능적인 희열, 환상, 권태로움, 몽상 등이 펼쳐지며 고요함과 평온한 낮잠 등이 모호하게 전개된다. 명료한 선율의 움직임 보다는 음색이 중심이 되는 화음과 뉘앙스를 표현하는 드뷔시만의 독특한 작법은 기존의 장·단음계를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인 화성의 축을 무너뜨리는 획기적인 음악 어법이었다. 

드뷔시는 바로크시대 이후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시대에 정점을 이루었던 조성음악의 개념에 맞서는 새로운 음계를 만들었다. 일곱 개의 음이 각각 반음과 온음 간격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통적인 장음계와 단음계는 각 음간의 위계질서가 있었다. 드뷔시는 3도 음정의 사용 대신, 4도 음정을 기본으로 한 4도 화음의 사용을 바탕으로 사고의 전환을 거쳐, 여섯 개의 음으로 이루어진 ‘온음음계(whole-tone scale)’를 만들었다. 여섯 개의 음은 모두 온음 간격이었다. 즉 장·단음계와는 달리 반음이 없기 때문에 온음음계는 반음에 의해 ‘끌어당기는’ 느낌이 없었으므로 기존의 조성감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온음음계의 모든 음들은 역할이 동등했고, 선율의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아, 시작과 끝이 모호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다. ‘목신의 오후에 의한 전주곡’에서 사용된 온음음계는 플루트를 중심으로 한 목관악기와 하프의 음색을 통해 상징주의적인 묘사를 가능하게 했다.

‘목신의 오후에 의한 전주곡' 자필악보.

드뷔시는 바로크시대 모음곡(suite)의 첫 곡으로 주로 사용된 전주곡(prelude)을 하나의 독립된 기악곡으로 연주하는 낭만주의 시대의 분위기를 이어 나갔다. 쇼팽과 라흐마니노프에 이어 24개의 프렐류드를 남겼다. 그의 프렐류드 작품집의 곡들은 각각의 문학적인 성격의 제목을 가지고 있었다. 드뷔시는 이 곡들을 작곡한 뒤에 제목을 붙였으며, 반드시 곡의 말미에 제목을 넣어두기를 출판사에 요청했다. 이것은 암시적인 표현을 나타내는 것으로 곡이 끝난 후에야 수수께끼가 풀리는 듯한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연주자와 감상자에게 나름의 상상의 여지를 남겨두려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드뷔시는 프렐류드 1집의 열 번째 곡인 ‘가라앉은 사원’에서 특별히 중세시대에 즐겨 사용되었던 선법(mode)을 썼다. 선법은 장·단음계 체제가 확립되기 이전의 음계의 역할을 했던 재료로 화성적으로 명확한 느낌이 적어, 드뷔시의 인상주의적인 분위기를 나타내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고대의 전설과 신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 역시 기존의 조성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뉘앙스를 담고 있다. 

숫도다나왕의 장례를 마치고 마하빠자빠띠는 붓다를 찾아왔다. “그동안 선왕의 그늘에서 편안하게 지내왔습니다. 이제 저는 다른 이들처럼 출가를 하려고 합니다.” 붓다는 “출가에 뜻을 두지 마십시오”라는 말로 허락하지 않았다. 마하빠자빠티는 상심하였지만 그와 뜻을 같이하는 사꺄족의 많은 여인들과 함께 웨살리로 향했다. 화려한 비단과 보석으로 치장을 해왔던 그들이었으나 모두 머리를 깎고 화장을 지우고 베옷을 입은 채 굳은 결심으로 동참했다. 먼 길을 걸어 웨살리에 도착한 그들은 귀족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처참한 몰골이었다. 아난다는 그들의 모습을 맞이하고 붓다에게 간청했다. 그러나 붓다는 여전히 그들의 출가를 허락하지 않았다. 

아난다는 “만일 여성들이 출가하여 붓다의 계율과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면 아라한과를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붓다께 여쭈었다. 붓다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아난다는 “마하빠자빠띠는 붓다를 정성껏 돌보신 분입니다. 만일 여자도 아라한이 될 수 있다면 그 첫 번째 기회를 그녀에게 주십시오”라고 간청했다. 붓다는 “아난다야, 마하빠자빠띠가 비구를 공경하는 여덟가지 법을 받아들인다면 출가 수행자로 교단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겠다”고 말했다. 마하빠자빠띠의 뒤를 이어 야소다라와 난다의 아내 자나빠다깔랴니를 비롯해 수많은 사꺄족 여인들이 출가를 할 수 있었다.

여성의 지위가 남성에 비해 보잘 것 없었던 시대에 여성의 출가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일이었다. 비구니는 비구를 공경하고 받들어야 한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비구니 팔경법은 겉으로는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던 사회상을 반영한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성도 남성처럼 사회에서 필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나의 방편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불교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양성평등을 위해 노력한 종교임을 증명하는 것과 같다. 여성의 출가를 가능하게 한 비구니 팔경법은 보수적인 사회에서 문화적 배경과 사회적 관습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남성의 보호라는 안전한 장치 아래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수행하여 해탈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당히 훌륭한 일화임에 틀림이 없다.   

클로드 아쉴 드뷔시.

드뷔시는 오랜 기간 동안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서양음악사의 조성체계에 반하는 새로운 음계를 탄생시켜 20세기를 맞이하는 새로운 시대의 음악의 방향을 제시했다. 음계 안의 모든 음에게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여 새로운 음악을 설계하려는 작은 시도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그의 젊은 시절 파리 만국박람회에서의 경험이 가져다준 동양 문화에 대한 관심도 그의 작품세계를 다양하게 했다. 그의 영향을 받은 쇤베르크, 베르크를 시작으로 펜데레츠키에 이르기까지 20세기의 클래식 음악은 그 변화의 폭이 광대해졌다. 

온음음계가 사용된 드뷔시의 음악을 감상할 때, 불가촉천민으로 인분을 나르던 니디에게도 출가를 권했던 붓다의 따뜻한 보호를 떠올려보면 어떨까. 소외된 자들에게까지 차별없는 가르침을 주고 싶었던 붓다의 깊은 뜻을 생각해 본다. 진흙 속에 감춰진 보석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지혜와 덕행을 우선하는 붓다의 보살핌이 비구니 승가를 형성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깊은 샘을 만들어 맑은 물이 고이게 하는 붓다의 세심한 배려가 전해진다.

김준희 고려대 강사 pianistjk@naver.com

 

[1502 / 2019년 8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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