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천태지자대사의 발원
16. 천태지자대사의 발원
  • 고명석
  • 승인 2019.08.27 13:55
  • 호수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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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티끌세상 파헤쳐 천만의 경전 뜻 열리라” 

참회의 도리 수행으로 끌어올리고
교관겸수 사상 완성시킨 중국 고승
육근 하나하나 참회 없이 해탈 요원
수양제에 전란 고통 받는 민생 충고
중국 천태산 지자탑원 내 천태지자대사 육신이 모셔져 있다는 진신보탑. 

불교는 수행의 종교라 할 정도로 수행법이 아주 많다. 이러한 수행법을 최초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분이 천태지의(天台智顗, 538~597) 대사라 할 것이다. 지의는 깨어 있는 수행자였고 참회의 도리를 수행의 차원으로 이끌어 우리에게 참회의 중요성을 일깨웠으며, 두 가지 발원문을 남길 정도로 원력의 삶을 살았다. 

지의는 중국 남북조의 혼란기인 남조의 양(梁)나라 538년에 강릉의 화양 땅에서 태어났다. 양나라는 동진, 송나라, 제나라 이후 들어선다. 양나라는 진나라로 이어지다 수문제(隋文帝)에 의해 수나라에 흡수된다. 불심천자(佛心天子) 양무제가 있었음에도 양나라는 그렇게 명멸하던 나라 중에 하나였다. 그의 부친은 양나라의 고관이었지만, 북조 서위(西魏)의 침입으로 일가가 몰락하는 모습을 보고 불문에 들어온다. 17세 때 양의 멸망과 더불어, 세상의 흥망성쇠를 목격하고 출가코자 했으나 부모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었다. 지의는 18세 때 부모가 돌아가시자 출가한다. 23세 때 스승 혜사(慧思, 514~577)를 만나 법화삼매 수행 중 ‘법화경’의 ‘약왕품(藥王品)’을 읽다가 크게 깨닫는다. 그의 스승인 혜사는 당시의 불교계를 말법(末法)시대로 규정하고 수행의 부재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깨달음을 이룬 후 지의는 스승의 권유에 따라 진나라의 수도 건강(健康)으로 향하여 와관사(瓦官寺)에 머물렀다. 그의 법력과 법화에 감화를 받아 건강의 귀족들, 당시의 황제 등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그의 나이 38세, 그는 도시의 화려함과 번잡함이 수행에 방해됨을 염려하던 중 북주(北周)의 폐불(廢佛)을 계기로 천태산(天台山)으로 들어갈 결심을 한다. 

지의는 학문과 수행을 겸비하면서 그의 교관겸수(敎觀兼修) 사상을 완성한다. 당시 남북조시대의 불교계를 개괄하자면, 북조불교는 수행을 중시했지만, 교학을 등한시하고 영험에 치우친 암증선사(闇證禪師)의 길을 걸었다. 암증선이란 눈 먼 선이다. 교학적, 객관적 검증이 없는 그 자신만의 오(誤)지각된 선이요 깨달음이다. 반면 남조의 불교는 경전을 외울 뿐 수행을 등한시하는 문자법사(文字法師)로 일컬어지는 학문불교로 나아갔다. 지의는 선과 교, 수행과 학문을 통합하여 새의 두 날개처럼 균형적 발전을 도모한다. 그것이 그의 주저 ‘법화문구’ ‘법화현희’ ‘마하지관’을 통해 잘 나타난다.

특히 ‘마하지관(摩訶止觀)’은 불교수행에서 통일된 이론체계와 수행체계를 정리한 명저로 꼽힌다. ‘마하지관’은 차제적 지관법이나 근기에 따른 수행법은 물론, 수행의 조건이나 방법, 그 목표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수행의 조건으로 몸을 다스리는 조신(調身)이나 호흡을 다스리는 조식(調息)과 고요한 장소의 선택, 계율의 준수, 선지식의 지도 등 25가지 방편을 자상하게 설명한다. 수행과정에 나타나는 병과 그 대치법도 알려준다. ‘마하지관’에서의 수행은 참회, 좌선, 행선, 간경, 염불, 다라니 염송 등으로 전개된다. 이 모든 것을 행하기 앞서 발원은 필수적이다. 그는 수행자가 업장을 소멸하고 보리를 이루려면 반드시 발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남긴 것이 ‘천태지자대사발원문(天台智者大師發願文)’이다.

“하나의 티끌세상 파헤쳐서/천만가지 경전의 뜻 열어내어//강가강의 모래 같은 부처님 가르침/한 마음 속에 새벽처럼 밝아지리.//부처님의 한량없는 자비마음 깨달아서/가지가지 인색한 맘 아낌없이 벗어내며//멈춤과 관조의 빛 지관법을 설하여서/일체 처에 두루두루 베푸오니// 온갖 보배 비밀 곳간 문을 열어/여의보주 아낌없이 드러내오리.” 

천태대사가 말하는 네 가지 삼매 중 반행반좌삼매(半行半坐三昧)가 있다. 이는 행선과 좌선을 겸비한 삼매법인데 법화삼매행법이라고도 한다. 21일을 한 기간으로 불상 주위를 돌며 행선과 좌선을 교대로 한다. 그 사이에 예불, 참회, 송경 등이 이루어진다. 참회법은 법화참법(法華懺法)이다. 육근(六根)을 참회하며 사참(事懺)과 이참(理懺)으로 진행된다. 사참이란 자신이 저지른 구체적인 죄악에 대한 참회이다. 이참이란 고정된 죄의 실체는 없다는 것을 관하면서 참회한다.

그렇다면 왜 참회를 강조하는가? 칸트는 근본악을 말했다. 인간이란 악을 향한 이기적 경향이나 잘난 체하는 자만심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근본악의 요점이다. 도덕법칙보다 먼저 악으로 향하는 경향이, 그런 쏠림이 이미 마음속에 앞서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무릅쓰면서 나쁜 짓을 한다. 육근 중에서 우리의 눈을 보자. 눈은 자신도 모르게 색에 불나방처럼 달라붙지 않는가? 그래서 육근 하나하나를 참회함 없이 해탈이란 요원하다. 

참회란 자기 몰락이요, 자기 돌파며 자기 죽음이다. ‘참회도의 철학’을 쓴 다나베 하지메의 말이다. 그는 일본의 총 참회를 주장했다. 철저한 참회를 통해 우리는 본래 청정한 마음 또는 아미타부처님의 무량한 생명과 만난다. 새로워진 나 자신을 본다. 다시 자신을 회복하는 환희로움을 맛본다. 첫 순수의 마음으로 돌아가 영원과 계합한다. 그러면서 불가사의한 힘을 체험한다. 그러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업과 장애의 바다/모두 망상에서 생겨나니//온갖 업장 참회하려면/단정히 앉아 실상을 관할지어다.//온갖 죄는 서리와 이슬 같아/태양의 지혜로 모두 소멸되리니//지극한 마음 모아/육근 참회하오리다.(‘관보현보살행법경’)”

지의는 보현삼매를 닦으면 마침내 보현보살을 친견한다고 했다. 그의 보현보살발원문은 ‘보현행원품’에서 말하는 보리심을 발하고 보현보살 십대원을 실천하여 온 생명의 진여 법계에 회향하는 것으로 맺는다. 

“일체의 티끌세상 그곳에서/한계 없는 바른 깨침 이루어//크나큰 법의 바퀴 굴리어서/모든 생명 해탈 이룸이//미래세가 다하도록 쉼이 없으리.”

지의는 천태산을 내려와 다시 저자거리의 아파하는 중생 속으로 향한다. 세상은 혼란의 도가니였다. 진나라는 수나라에 멸망한다. 그 총사령관이 진왕 광(양광, 훗날의 수양제)이다. 지의는 그에게 보살계를 주며 총지보살(摠持菩薩)이라 하였으며, 그로부터 지자대사(智者大師)라는 칭호를 받는다. 지의는 진왕 광에게 왕권에 대한 조언과 비판을 서슴지 않고 전란의 고통으로 신음하는 민생을 챙기라고 충고한다. 나아가 그를 위해 ‘유마경소’를 지어, 유마거사처럼 살 것을 부촉한다.

여기서 그의 중심 수행인 원돈지관(圓頓止觀)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원돈지관이란 아주 고요한 마음에 머물러 존재의 실상을 관하는 것이다. 그 실상이란 공(空), 가(假), 중(中)을 한 번에 봄이다. 모든 존재는 실체가 없으니 공이다. 그렇지만 그 실체 없는 가의 모습으로 이 세상살이가 돌아간다. 그러면서 공 속에서 가를 보고, 가 속에서 공을 본다. 바로 중도의 자리다. 세상에서 열반을 실천하며, 열반에서 세상을 읽는다. 고통 받는 너의 모습에서 나를 보며, 나와 너 사이의 틈 안에서 열반을 행하며 이룬다.

고명석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 kmss60@naver.com

 

[1502 / 2019년 8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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