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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조창환의 ‘등대’

기자명 김형중

희망의 항로 밝히는 등대 빛 보며
과거·현재·미래 불교 시간관 시화

마음의 등불 밝힌 사람은 현자
무명 속 사는이는 깜빡이 중생
우리는 오직 이 순간만을 살뿐
등대 불빛은 꺼지지 않는 생명

캄캄한 밤 회오리바람 속에서 깜빡거린다
저 불빛, 부러진 단검 하나 남은 검투사 같다
무슨 결박으로 동여매 있기에
저 안의 황야에 저리 고달프게 맞서는 것일까
등대는 외롭고 적막하고 단호하다
모든 찰나는 단호하므로 미래가 없고
미래가 없으므로 과거도 없다
모든 찰나는 영원한 현재이므로
마지막 순간까지 결연하게 깜빡거린다
저 불빛, 절벽 앞에서의 황홀이다

등대는 망망대해에서 홀로 어두운 밤에 외로움과 회오리바람과 싸운다. 끝끝내 밝은 불빛을 지켜서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배에게 희망의 항로를 밝혀준다.

“부러진 단검(短劍) 하나 남은 검투사 같다”와 같이 홀로 어둠과 싸우면서 불빛을 지키는 바다의 별빛이다. “등대는 외롭고 적막하고 단호하다” 결코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어둠과 타협하지 않고 불빛을 밝힌다.

‘등대’는 우리의 ‘마음’을 상징하고 있다. ‘마음속의 등대’이다. 불확실한 미래와 불안한 인생에 대한 희망의 불빛은 진리에 대한 등불과 자신에 대한 믿음과 철학뿐이다. 내 마음의 등불을 밝히고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현자이고, 등불이 꺼진 무명 속에서 사는 사람이 깜빡이 중생이다.

생명의 불꽃이 꺼진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 생명의 불꽃이 불성이다. 불성을 찾아서 불성을 사용해서 사는 사람이 부처요 보살이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시면서 유훈으로 하신 말씀이 “자신을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으라”는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의 열반유훈이다.

생명의 불꽃은 오직 지금 현재 이 순간 찰나에 불빛을 발할 뿐이다. 지나간 과거도 없고, 아직 오지 않는 미래도 없다. 시인은 ‘금강경’에서 “지나간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過去心 不可得), 아직 오지 않는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未來心 不可得).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가 없다(現在心 不可得)”고 설하고 있는 불교의 시간관을 시화하였다. 현재의 마음도 현재라고 인식하는 순간 지나간 과거가 되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직 이 순간만을 살 뿐이다.

시간은 사람이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관념이다. 세상 모든 사물이 무상하게 변화할 뿐이다. 그 변화하는 모습을 해와 달의 운행을 기준으로 밤과 낮을 만들고, 하루의 시간을 옛날 동양에서는 자시(子時), 축시(丑時), 인시(寅時) 등 12지시로 나누었다가 서양의 시간 구분인 오전 12시, 오후 12시의 기준에 따라 24시간으로 통일하여 쓰고 있다. 

시인은 “모든 찰나는 영원한 현재이므로”라고 읊고 있다. 지금 인식하고 있는 찰나의 순간만이 있을 뿐이고, 그 찰나가 영원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의상대사는 ‘법성게’에서 “한 생각의 마음이 곧 온 세상의 모든 시간과 공간의 일들을 머금는다. 일념즉시함시방(一念卽是含十方)”이라 설하고 있다. 찰나가 무량겁이고, 하나의 티끌 속에 온 우주가 함께 하고 있다. 손톱만한 usb 안에 온 세상의 모습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시인은 마지막 말후구에서 “저 불빛, 절벽 앞에서의 황홀이다”라고 읊는다. 등대불빛이 칠흑 같은 대해에서도 찬란하게 빛을 발휘하고 있듯이 우리 마음속의 등불도 어떤 절망과 어둠 속에서도 황홀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자비광명이요 지혜광명이다. 등대의 불빛은 불성과 꺼지지 않는 생명을 상징하고 있다.

불타고 있는 세상, 고통의 바다에서도 꺼지지 않고 내 마음을 밝혀주고 세상을 밝혀주는 자성(自性) 불광(佛光)이다. 조창환(1954~현재) 시인은 1973년 ‘현대시학’으로 문단에 나와, 아주대에서 교수로 시학을 강의하였다.

김형중 동대부여고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503호 / 2019년 9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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