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불 울타리였던 천수관음 승욱 스님 입적
천진불 울타리였던 천수관음 승욱 스님 입적
  • 최호승 기자
  • 승인 2019.09.04 13:52
  • 호수 15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월2일 법납 48년 세수 70세
9월4일 옥천사에서 영결다비
버림받은 고아들 키우는 불사
보리수동산 설립 든든한 돌봄
심장병 환아 돕는 생명불사도
“홀로된 아이들이 내겐 부처님”
홀로된 아이들을 부처님으로 모시고 수행정진했던 승욱 스님은 영결다비식이 9월4일 옥천사에서 봉행됐다. 연화대로 이운 중인 스님의 법구.
홀로된 아이들을 부처님으로 모시고 수행정진했던 승욱 스님은 영결다비식이 9월4일 옥천사에서 봉행됐다. 연화대로 이운 중인 스님의 법구.

홀로된 아이들을 부처님으로 모시고 정진한 ‘천진불의 천수관음’ 고성 옥천사 청련암 회주 승욱 스님이 9월2일 주석처인 청련암에서 입적했다. 법랍 48년, 세수 70세.

9월4일 오전 10시 옥천사 자방루에서 승욱 스님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조계종 법계위원장 무관 스님 법어와 쌍계사 회주 영담 스님 추도사, 문도를 대표해 서울 도선사 도서 스님 조사와 상좌 옥천사 주지 원각 스님의 감사 인사말씀 등이 이어졌다.

무관 스님은 “항상 현재의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며 “마음을 거두어서 현재 내가 생각하는 그 인연들을 다 거두어 나고 죽는, 죽은 사람에 대한 것을 한탄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런 마음 가지면 극락세계 왕생하고 갔다 왔다 하는 일이 그렇게 큰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옥천사 주지 원각 스님은 “승욱 스님은 출가수행자의 권위만 내세우지않고 인정 베풀고 따뜻한 미소로 모두를 대한 천수관음의 손과 같았다”며 “왕생극락을 발원하는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부대중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승욱 스님의 법구는 다정다감하고 자비로웠던 스님의 생전 모습을 잊지 못하는 300여명의 사부대중의 애도와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마음을 타고 지수화풍 4대로 돌아갔다.
승욱 스님의 법구는 다정다감하고 자비로웠던 스님의 생전 모습을 잊지 못하는 300여명의 사부대중의 애도와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마음을 타고 지수화풍 4대로 돌아갔다.

영결식이 끝난 뒤 승욱 스님의 법구는 가까운 곳에 마련된 다비장으로 이운됐다. 올듯 말듯 가느다랗게 내리는 빗줄기 속에서 11시16분경 스님의 법구가 오른 연화대에 불이 들어갔다. 승욱 스님의 법구는 다정다감하고 자비로웠던 스님의 생전 모습을 잊지 못하는 300여명의 사부대중의 애도와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마음을 타고 지수화풍 4대로 돌아갔다.  

승욱 스님은 한 평생 부처님 길을 따라 중생 봉양을 수행 삼아 정진했다. 18세에 옥천사에서 도현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승욱 스님은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쌍계사에서 고산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계했다. 1978년부터 옥천사 청련암 감원 소임을 맡게 된 승욱 스님은 도량 중창과 기도수행, 지역사회 포교를 위해 진력했다. 1997년에는 청련암의 대표적 신행단체인 정토만일봉사회를 창립해 수행과 전법 그리고 사회복지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출가수행자로서 승욱 스님의 삶은 천진불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승욱 스님은 진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절인연과 마주했다. “스님, 어제 아침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했어요. 배고파요.” 1978년 겨울 끝자락, 남매는 추위에 떨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아이들 돌보는 일을 수행 삼으라고 하시는구나.’ 승욱 스님은 아이들의 얼어붙은 손을 붙잡고 부처님 품으로 돌아왔다.

평소 “아이들이 내겐 부처님이다. 홀로된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게 내겐 관세음보살이며 기도수행이다”라고 말씀하시던 승욱 스님은 소외 받고 고통 받는 아이들의 아버지를 자처했다. 2002년 아이들과 함께 한 승욱 스님(사진 오른쪽).
평소 “아이들이 내겐 부처님이다. 홀로된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게 내겐 관세음보살이며 기도수행이다”라고 말씀하시던 승욱 스님은 소외 받고 고통 받는 아이들의 아버지를 자처했다. 2002년 아이들과 함께 한 승욱 스님(사진 오른쪽).

승욱 스님은 평생의 불사라고 원을 세웠다. 당장 따뜻한 밥과 잠자리뿐이었지만 스님의 자비는 입소문이 났고, 청련암 하나 둘 ‘가슴으로 낳은 자식’들이 늘어갔다. 시줏돈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스님은 생활비와 학비를 위해 장례식장에서 염불을 하는 등 백방으로 뛰었다. 스님은 2002년 사회복지법인 정토만일회 보리수동산을 설립, 아이들이 겪는 모진 역경과 고난에 든든한 바람막이를 세웠다.

심장병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도 승욱 스님에게 아픈 중생이자 부처님이었다. 1990년 설립된 감로심장회 이사장직을 맡아 심장병으로 신음하는 아이들에게 무료시술을 지원했다. 스님은 항상 “생명을 살리는 가장 큰 불사”라고 사부대중의 관심을 호소해왔다.

평소 “아이들이 내겐 부처님이다. 홀로된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게 내겐 관세음보살이며 기도수행이다”라고 말씀하시던 승욱 스님은 소외 받고 고통 받는 아이들의 아버지를 자처했다. 스님은 아이들을 보면서 힘든 병환 속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가슴으로 부처님 말씀을 실천하는 환희의 마음으로 세간에서 맺어진 소중한 천진불들과 인연의 탑을 쌓고 쌓았다. 탑 안에서 자란 아이들은 사회에서 수많은 연꽃의 향기를 피워 올리며 세상을 밝히고 있어서였다.

승욱 스님.
승욱 스님.

늘 승욱 스님의 소회는 하심에서 자라난 아이들에게 향해 있었다. “꿈꾸듯 어느새 세월은 흘러 부처님 입은 은혜 하늘 같은데, 내가 베푼 것은 가느다란 선(線)과 같으니 하늘 보기 부끄럽다. 세상 모든 것은 묘음이요 묘법이니 새는 높이 날고 꽃은 만개했구나. 보리수동산에서 자라는 모든 아이들 장대하고 높은 꿈은 하늘에 뻗쳐있다.”

중생의 천만근심을 어루만져 주시는 천수관음의 손처럼 아이들의 아픔과 함께 한 승욱 스님. 스님 말씀처럼 스님은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던 텅 빈 하늘에 가느다란 선 한 줄을 그었다. 그 선을 빨랫줄 삼아 스님 품에서 성장한 아이들의 꿈은 높은 곳에 걸려 청량한 바람 맞으며 고운 볕도 쬘 수 있었으리라. 스님의 임종게가 울림이 큰 이유이기도 하다.

“우주 만상은 한 뿌리에서 났으니/ 너와 나를 분별하는 것은 꿈속의 일이로다/ 본래부터 오고 감이 없었으니/ 생사를 논하지 말라/(萬象與同根 彼我夢幻分 本是非去來 生死無是非)”

승욱 스님의 추모일정은 9월8일 오전 10시 옥천사를 시작으로 9월15일 청련암, 9월22일 청련암, 9월29일 옥천사, 10월5일 보현암 약사전, 10월13일 보광사, 10월20일 옥천사에서 49재가 진행된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경남지사=최홍석 지사장 metta@beopbo.com

[1504호 / 2019년 9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