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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투병 중에도 네팔 한국 잇는 상인 꿈꿔

  • 상생
  • 입력 2019.09.06 19:02
  • 호수 1504
  • 댓글 0

2014년 네팔에서 온 라주씨
입국 석달 만에 백혈병 진단
어머니 불법체류 단속에 출국
암흑 같은 상황서 홀로 투병

만성골수성백혈병을 앓고 있는 라주씨는 몸이 호전되면 네팔과 한국을 오가며 무역하는 희망을 놓지 않도록 매일 기도하고 있다.
만성골수성백혈병을 앓고 있는 라주씨는 몸이 호전되면 네팔과 한국을 오가며 무역하는 희망을 놓지 않도록 매일 기도하고 있다.

처음엔 지독한 감기인 줄 알았다. 몸살 기운과 어지러움이 몇달 째 지속됐지만 혼자 사는 젊은 남자들이 흔히 그렇듯 가끔 먹는 진통제로 하루를 버텼다. 복통과 구토가 하루에도 몇 번씩 이어지자 몸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한참만에 찾은 병원에서 만성골수성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홀로 생활하며 방치한 병은 이미 악화된 상태였다. 한국에 있는 어머니가 그리워 한국으로 넘어온 지 석 달 만의 일이었다.

네팔 출신 라주(28)씨는 2014년 어머니를 찾아 한국에 왔다. 어머니는 아들이 공부를 많이 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길 간절히 바랐다. 아들을 위해 어머니는 수년간 한국에서 모은 돈을 탈탈 털어냈다. 라주씨는 입국과 동시에 서울의 한 대학 어학당에 다니며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어머니가 식당 한켠 쪽방에서 쪽잠을 자며 억척같이 모은 돈으로 시작한 공부였다. 라주씨는 열심히 공부했다.

틈틈이 아르바이트도 했다. 어머니가 일하는 식당에서 설거지를 포함해 힘쓰는 일은 뭐든 자처했다. 사실 어머니와 조금이라도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어머니가 힘들어할 때마다 조용히 옆에서 거들었다. 어학원을 오가는 시간을 빼면 항상 어머니와 함께했다. 쪽방은 둘이 지내기엔 무척이나 좁았지만 잠들기 전까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 생각해보면 태어나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그리웠던 어머니와 늘 함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한국에서는 뭐든 열심히 하면 잘 살수 있다는 희망도 생겼어요.”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머니가 불법체류자 단속에 적발됐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백혈병 진단을 받은 지 한 달도 안 돼 어머니는 네팔로 돌아가야만 했다. 어머니가 떠나던 날, 라주씨는 울었다. 지독한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한국에 왔지만 또 다시홀로 남겨진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어머니가 없는 현실은 가혹했다. 식당 쪽방에서도 나와야 했다. 한국어가 서툰 상태에서 앞날이 깜깜했다. 피 검사와 수혈, 골수검사 등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하는 데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었다. 그러길 며칠, 다행히 어머니와 절친하게 지낸 아주머니가 자신의 집에 머무를 수 있게 도움을 줬다.

라주씨의 투병생활은 6년째 이어지고 있다. 매달 피검사는 물론이요 3개월에 한 번씩 수혈을, 6개월에 한 번씩은 골수검사를 받고 있다. 한번 검사를 받으면 3일은 일상생활을 할 수 없다. 매스꺼움과 어지럼증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한 달에 약값만 50여만원, 골수검사를 위해 입원을 하는 달에는 수백만원이 든다. 검사는 상태가 호전되는 것이 아닌 악화를 막는 것뿐이기에 앞날은 막막하기만 하다.

아주머니에게 언제까지 신세를 질 수 없는 노릇이다. 네팔로 돌아갈 생각도 해봤지만 그곳에서는 약조차 구하기 힘들다. 암흑 같은 상황 속이지만 라주씨는 몸이 호전되면 무역업에 종사하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네팔로 추방된 어머니는 한국 식당에서 배운 솜씨를 발휘해 김치를 만들어 팔고 있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어머니는 고된 일상에서도 매일 부처님께 기도를 올린다. 라주씨도 하루하루 기도를 이어간다. 병이 호전되길 염원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움켜쥐고서.

모금계좌 농협 301-0189-0372-01 (사)일일시호일.

임은호 기자 eunholic@beopbo.com

[1504 / 2019년 9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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