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섬뜩한 천도재
52. 섬뜩한 천도재
  • 이제열
  • 승인 2019.09.09 15:57
  • 호수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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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무덤에 칼을 꽂겠습니다”

무당이 점집 찾은 시모에게
죽은 시누이 위한 굿 요구
며느리 “제가 천도하겠다”
살아있는 시모 마음 천도해

돈독한 신심과 열정으로 부처님 법을 공부했던 강단 있는 여성불자님 얘기다. 게다가 꽤 오랜 세월 시부모를 모시고 살아야 했고, 시어머니 성격이 유별나 시집살이도 혹독했다고 한다. 결혼을 하고 보니 시어머니가 툭하면 무당들을 찾아 점을 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가 용한 무당이 있다며 함께 가자고 했더란다. 그 불자는 시어머니 말씀을 거역할 수도 없고 내심 호기심도 있어 함께 무당을 찾아갔다.

무당은 동전들을 손에 들고 주문을 외다가 상 위에 떨어뜨린 뒤 펼쳐진 동전들의 배열을 보고 점을 쳤다. 시어머니 차례가 되었다. 시어머니가 자신의 생년월일을 일러주자 무당은 눈을 감고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상 위에 동전을 떨어뜨려 펼치더니 “집안에 젊어서 죽은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시어머니는 깜짝 놀라 “큰 딸년이 10여년 전 마음에 드는 사람하고 결혼을 해야겠다고 했을 때 집안에서 반대를 하니까 분해서 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무당은 “이 애가 원귀가 되어 아직도 저승을 못가고 집안을 맴돈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지금이라도 길을 닦아줘야 이 아들 며느리 내외가 백년해로하고 잘 살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둘 사이가 불행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시어머니는 “아이고, 이미 그 딸년을 생각해서 몇 차례 천도재를 해주었는데 아직도 한을 못 풀고 저세상으로 못 갔단 말씀입니까?”하고 하소연했다. 그러자 무당은 “치성을 드리고 혼령을 다스리는 법을 모르고 굿을 해서 그렇습니다. 이 혼령은 여느 성질하고는 다른 원귀이기 때문에 단단히 다스려서 보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이 말을 들은 시어머니는 어쩔 줄 몰라 했다.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며느리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때였다. 그 불자는 시어머니를 향해 말했다. “어머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 죽은 아가씨 제가 길 닦아 천도해주면 안 될까요?” 하였다. 그 말에 놀란 것은 시어머니만이 아니었다. 점을 치던 무당도 함께 놀라 물었다. “아니, 그 무슨 말이냐! 네가 죽은 애 길을 닦아주다니?” 시어머니 말에 그 불자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제 욕심 못 이겨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고 죽은 것만 해도 그 죄가 큰데 몇 차례 길을 닦아주었는데도 아직도 그 한을 풀지 못했단 말씀인가요? 그런 귀신에게는 물 한 모금 밥 한 숟갈 베풀 필요가 없습니다. 도리어 살아있는 귀신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줘야 합니다.” 그러고는 “어머님, 얼른 집에 가셔서 아버님께 가마솥에 물을 가득 끓이라 하시고요. 아드님에게 대칼을 숫돌에 시퍼렇게 갈아놓으라 하세요. 제가 그 끓인 물을 죽은 아가씨의 무덤에 가지고 가 무덤 머리 위 잔디에 부울 것이고 칼을 꽂아 놓겠습니다.”

정말 당돌하기 짝이 없고 섬뜩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시어머니는 기가 찼는지 멍하니 바라만 볼 뿐이었고 무당은 입술이 새파래져 망연자실하다가 이렇게 입을 떼었다 “어서들 나가시오. 여기 내 어깨가 떨려! 점쟁이 삼십년에 이런 일은 처음이요”하면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무당이 어깨가 떨린다는 말은 무당이 모시고 있는 신들이 두려워 한다는 의미이다)

그 불자의 말로는 한동안 그 무당은 점을 치지 못하였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로 시어머니 태도가 완전 달라졌다. 무당집이나 점집을 찾지 않았고 며느리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그 불자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법사님, 과격하지만 제가 한 행동 잘하지 않았습니까? 죽은 딸을 천도시킨 게 아니고 살아 있는 제 시어머니 마음 천도시켰으니 죽은 아가씨도 절 원망하진 않겠지요?”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천도재의 본질이 흐려진 오늘날 불교 현실을 볼 때마다 떠올리게 되는 잊지 못할 에피소드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504 / 2019년 9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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