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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암호론 타심통 복심통

자연은 그들이 간직한 비밀 결코 숨기지 않아

‘페르마 정리’ 일반인 모르듯
자연 비밀 알려면 지능 필요
부처님이 안 숨기는 것과 비슷
타심통 구현되는 시대 다가와

많은 종교인들은 우주의 비밀이 어디엔가 숨겨져 있다고 믿는다. 그곳에 가기만 하면 모든 비밀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문제는 그곳에 가는 방법이 비밀이라는 점이다. 어떻게 그 비밀을 풀까? 종교적 수련을 통해서이다. 물론 그곳에는 이 세상 모든 문제에 대한 해법도 보관되어 있다.

하지만 설사 그곳에 간다 해도 문제이다. 그 비밀을 보기만 하면 판독(判讀)할 수 있을까? 이는 처음 보는 언어를 해독할 수 있다는 말과 뭐가 다를까? 그 비밀은 어떤 언어로 기록되어 있을까? 설사 그 언어를 안다 해도, 그 비밀 지식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어도 이해할 수 있을까? 한글로 쓰인 수학·화학·물리학 논문을 당신은 이해할 수 있는가?

1995년에 358년 만에 풀린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풀이는 수학자 중에서도 극소수만 이해 가능하다. 수십 명 정도이다. 푸앵카레 추측도 그렇고 비버바흐(Bieberbach) 추측도 그렇다.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 특히 종교인들이 양자물리학 논문은 어떻게 이해할까?

만약 가능하다고 주장한다면, 크로마뇽인도 가능하고 북경원인과 오스트랄로피테쿠스도 가능할까? 그들이 가능하다면 그들보다 더 진화한 침팬지·고릴라·오랑우탄은 왜 불가능할까?

신이 우주와 생명의 비밀을 풀어도 그 방식은 인간의 지능과 인지력의 발달을 통해서이다. 한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협동을 통해서. 그리고 시간을 통해서. 구원은 집단적인 것이다. 구원은 크로마뇽인·북경원인·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겐 없다. 크릴새우·고래·침팬지에게도 없다. 하늘에서 떨어져 뭍으로 흩어지는 물방울에도 없다. 하늘을 가득 채운 공기입자에게도 없다.

자연은 비밀을 숨기지 않는다. 숨길 필요가 없다. 어차피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아직 지능이 발달하지 않고 눈이 뜨이지 않은 자들은 봐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연의 비밀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자연이 그들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자연은 항상 펼쳐져 있다. 개가식(開架式) 도서관의 책들처럼 공개되어 있다. 인간은 전문학술지로 가득한 방에 들어간 유아다. 그에게 모든 지식은 공개되어 있지만 너무 어렵다. (아니, 어렵다는 것조차 모른다. 어렵다는 걸 알려면 그리고 그게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걸 깨달으려면 그에 걸맞은 지능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지금까지 발견한 비밀은 그에 비해 쉽다. 그래서 다들 암호로 숨기려 한다. 수많은 암호를 개발했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원시인들 앞에는 모든 산업기술 비밀을 펼쳐놓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

현대의 암호제작에는 정수론·타원곡선 이론 등 풀기 어려운 수학 이론이 이용된다. 앞으로는 양자역학을 이용할 것이라고 한다. 물론 양자역학에는 고등수학이 쓰인다.

우주의 비밀은 있을까? 부처님은, 자신은 알고 있는 걸 숨기고 보여주지 않은 분이 아니라고 토로(吐露)하신다. 손에 뭘 숨긴 다음 주먹을 쥐고 보여주지 않는 스승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자기공·야금장이 등 중세의 도제들은 스승에게 노예처럼 복종하며 배웠다. 하지만 불교의 지식은 다 드러나 있다. 무상·고·무아 삼법인(三法印)이라는 총론은 다 드러나 있다. 특별한 암호가 필요 없다.

무형의 지식은 금덩이와 다르게 숨길 수 있다. 하지만 뇌과학이 발달하면 이조차도 어려울 것이다. 자기 마음을 숨기는 기술 즉 암호론이 각광을 받을 수 있다. 다들 그런 암호 앱을 하나쯤 머릿속에 깔고 살아야할지 모른다. 예전에 수련의 목표 중 하나가 타심통 즉 타인의 마음을 읽는 것이었는데, 그게 구현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복심통(覆心通)이라는 자기 마음을 숨기는 기술이 더 중요한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그래도 사람들은 잘 살아갈 것이다. 유일신교에 의하면 전능하신 신은 매순간 우리의 마음을 모두 알고 계신다. 그래도 사람들은 별 어려움 없이 산다. 나쁜 생각도 곧잘 하고 산다. 그러니 설사 우리 마음이 누군가에게 (조지 오웰은 그를 대형[大兄 Big Brother]이라고 부른다) 다 낱낱이 드러나는 일이 일어나도 큰 어려움 없이 살아갈지 모른다. 지금도 수십억 명이 그리 살고 있으니 말이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1504 / 2019년 9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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