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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원효대사의 발원

기자명 고명석

“모든 것이 꿈임을 관하고 삼매 증득해 깨어나리”

자신이 살던 집에 절 짓고 정진
‘발심수행장’으로 알려진 구도열
해골에 괸 썩은 물 마신 뒤 오도
소성거사 자칭하며 거리서 전법

일본 고산사 소장 원효대사 진영.
일본 고산사 소장 원효대사 진영.

세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주체적 결단력, 불교사상에 대한 진지하고 치열한 통찰과 해석, 모든 형식과 격식을 거부하고 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맑은 샘물을 향한 역류하는 몸짓과 저잣거리의 사람들을 향한 자비로운 마음, 그러면서도 발원과 참회로 자신을 다스려 나갔던 인물이 원효대사이다.

원효(元曉, 617~686)는 신라 진평왕 39년(617) 현재 경북 경산인 압량군 불지촌(佛地村) 밤나무 아래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모친을 여의고 외로움과 세상의 무상함을 절실히 느껴 15세 청소년시절 황룡사로 출가한다. 이윽고 자신이 살던 집에 절을 짓고 스승 없이 구도의 길을 간다. 이는 그의 근기가 아주 출중하여 그를 길러줄 직접적인 스승이 없었음을 일러준다. 그러나 원효가 지은 ‘발심수행장’은 그의 구도열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중요한 구절만을 중간중간 끊어서 적어본다.

“높은 산의 험준한 바위는/지혜로운 사람이 머무는 곳이고//푸른 소나무의 깊은 계곡은/수행하는 사람이 머무는 자리입니다.”
“절하는 무릎이 어름같이 시리더라도/불기운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없어야 하며//주린 창자가 끊어질듯 하더라도/음식을 구하는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부서진 수레는 구르지 못하듯/늙은 사람은 수행할 수 없으니//누우면 게으름과 나태만이 생기며/앉아 있으면 난잡한 의식만 일어납니다//몇 생을 수행하지 않고서/헛되이 밤낮을 보내었으며/이 빈 몸은 얼마를 살 것이건대/한 평생 수행하지 않으리오//몸은 반드시 끝마침이 있으니/내생에는 어찌할 것인가요//다급하고도 다급한 일이 어찌 아니리오!”

원효는 나이 40세를 넘어 그보다 8세 어린 의상과 중국으로 구법의 길을 떠난다. 첫 번째는 실패하고 두 번째 여행길이었다. 그렇게 법을 향한 간절함이 그들에게는 상존하고 있었다. 어느 날 산속에서 하룻밤을 묵던 중 원효는 결정적인 종교체험을 한다. 한밤중에 갈증을 느껴 물을 벌컥벌컥 마셨는데,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자신이 잠을 청한 곳은 무덤이요, 마신 물은 해골바가지에 고인 썩은 물이었다. 원효는 그 자리에서 토악질을 한 다음 크게 깨친다.'송고승전'에서는 이와는 약간 다른 내용이 전하는데, 그가 마음의 도리를 깨우친 사연을 잘 일러준다.

“마음이 일어나니 온갖 법이 일어나고/마음 멸하니 토굴과 무덤이 둘이 아니다//삼계(三界)는 오직 마음이며/온갖 법은 오직 마음의 움직임이다.”(‘송고승전’)

모든 것은 마음의 움직임에 달려 있다는 한 마음의 도리를 깨우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유학길을 포기하고 이 마음을 부여잡고 규명하며, 수행하고 포교하는 길 없는 길을 나선다. 서라벌로 돌아온 뒤 원효는 분황사에 머무르며 왕성한 저술활동에 몰입한다. ‘화엄경소(華嚴經疏)’를 쓰다가 ‘십회향품(十廻向品)’에서 절필한다.

왜 그랬을까? 불교는, 사상은 절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뭇 생명들과 함께 움직인다는 사실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출가에 대한 고정적인 상에서도 떨어져 나와 거기에서도 또 출가를 해야겠기에 다시 새로운 출가를 감행한 것이다. 이를 출출가(出出家)라고 한다. 이후 원효는 문무왕의 딸 요석공주와 만나 결혼을 하고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문무왕도 요석도 그를 알아본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보잘 것 없는 소성거사(小性居士)라 이름하고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며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 무애박(無碍瓟)을 쥔 채 노래하고 춤추며 이 마을 저 마을 구석구석 널리 불법을 전했다.

어느 날 백고좌법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그 자리에서 ‘금강삼매경론’을 통해 왕비의 병을 치유하려 했지만, 누구도 그것을 꿰어 해설할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 원효가 들어가 그 일을 해낸다. 그는 말한다.

“지난 날 백 개의 서까래를 구할 때에는 내가 끼지 못했지만 오늘 아침 하나의 대들보를 가로지르는 마당에 오직 나만이 할 수 있구나.”

이로 보건대 원효는 규정된 틀로 의미화 될 수 없는 존재로서 방외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는 ‘금강삼매경론’에서 한마음의 근원을 밝힌다. 그것은 있음[有]과 없음[無]을 떠나 홀로 청정하다 했다. 삼공(三空)의 바다는 진여와 세속을 융합하며 깊고 넉넉하다고 설파했다. 유와 무, 같음과 다름이, 나와 타자가 공의 빈틈과 서로의 흔적을 공유하면서 어우러진다. 공생(共生)한다. 나아가 진여와 세속은 둘이 아니고 하나를 지키지 않으며, 둘이 아니기에 한마음이라고 했다. 한마음은 획일적 평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름을 인정하면서 하나의 빈자리를 공유하는 생명의 흐름이다.

그의 ‘대승기신론소’에서도 홀로 청정한 것이 한마음이지만, 그 한마음에서 육도윤회 중생의 파도가 일어나므로 그들을 구원하려는 큰 서원을 내야하며, 육도의 길은 한마음을 떠나지 않으므로 인류애적 동체대비의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가는 길이 쉼 없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 자신의 주체적 빈자리를, 자신의 철저한 가난과 궁핍을 떠맡는 것이라면, 그는 거기에서 안심을 얻는다. 이와 관련 원효는 쉼 없이 모든 생명 교화의 길을 가리라고 서원한다. 그가 남긴 발원문인 ‘대승육정참회(大乘六情懺悔)’를 읽어보자.

“나와 모든 중생 시작 없는 옛적부터/모든 법이 본래 무생(無生)함을 알지 못하고//망상으로 나와 나의 것을 헤아려서/안으로는 육정(六情)에 의지하여 알음알이 내며//밖으로는 육진(六塵)에 집착하여 실체시해/그 모두 내 마음이 지었음을 모르도다//환상 같고 꿈과 같아 영원한 것 아니건만/남자네, 여자네 하며 모습을 헤아리고//숫한 번뇌 일으켜 스스로 속박되어/오랫동안 고해에서 빠져 나옴을 구하지 않네//고요히 생각해보니 참으로 기막힌 일이로새/이는 마치 깊은 잠이 마음을 덮은 것이라//자신의 몸이 큰 물속에 표류함을 헛되이 보고/꿈속의 마음이 지은 줄 모르도다//실로 물에 빠져 큰 두려움 내면서도/깨기 전에는 다시 다른 꿈을 꾸는 구나//시시때때 사유하여 모든 것 꿈이라 관하고/차례차례 닦아 꿈이라 보는 삼매 증득하리//이러한 삼매로 태어남이 없는 법의 자리 얻어서/오랜 꿈에서 활연히 깨어나//본래 윤회 흐름 영원히 없음을 알고/다만 오직 한 마음, 한결같은 평상에 누워 있음이라.”

원효는 바위 동굴인 혈사(穴寺)에서 입적하였다. 그곳이 어딘지 아무도 모른다. 그를 따르는 문도도 없었다. 어떤 문파도 형성하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홀로 한마음으로 돌아갔다. 그는 당시의 지식인들에게 하나의 얼룩진 오염이고 균열이었지만, 그것은 세상을 깨우고 우리들 마음을 흔드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 지닌 삶의 진한 향기이기도 했다.

고명석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 kmss60@naver.com

 

[1504 / 2019년 9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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