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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월주 원덕문의 ‘한산습득도(寒山拾得圖)’

기자명 김영욱

꾸밈없이 순수한 자연의 마음을 얻다

20세기 불모 월주 스님 작품
경전 든 한산과 빗자루 쥔 습득
경전은 지혜·빗자루는 수행 의미

월주 원덕문 作 ‘한산습득도’, 종이에 먹, 129.0×102.0cm, (사)단청문양보존연구회 소장.
월주 원덕문 作 ‘한산습득도’, 종이에 먹, 129.0×102.0cm, (사)단청문양보존연구회 소장.

寒山拾得兩頭陀(한산습득양두타)
或賦新詩或唱歌(혹부신시혹창가)
試問豊干何處去(시문풍간하처거)
無言無語笑呵呵(무언무어소가가)

‘한산과 습득 두 승려 시 짓거나 노래 부르기도 한다네. 풍간 선사 어디 갔는지 물으니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하는구나.’ 초석범기(楚石梵琦, 1296~1370)의 ‘한산습득도찬(寒山拾得圖贊)’.

한산과 습득은 지기지우이다. 두 선승의 일화는 당나라 정관(貞觀, 627~649) 연간에 저장성 천태산에 있는 국청사(國淸寺)를 중심으로 전해진다. 한산은 천태산 한암(寒巖)에 머물렀고, 습득은 스승인 풍간 선사와 함께 국청사에서 수행에 정진했다.

어느 날, 습득이 마당을 쓸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찰의 승려가 그를 보고 “풍간 선사께서 길가에 버려진 너를 데리고 왔기에 너의 이름을 습득이라고 불렀다. 너는 본래 어디에서 살았으며 성은 무엇이냐?”라고 집요하게 물었다. 습득은 돌연 빗자루를 내던지고 승려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사찰에서 남긴 음식을 가지러 왔던 한산이 이 광경을 보고, 습득에게 자신의 가슴을 치며 “푸른 하늘”이라고 크게 외쳤다. 서로를 이해한 한산과 습득은 큰 웃음을 터뜨렸다.

남송 시대부터 그려진 한산습득도를 열람한 조사들의 글을 보면, 한산과 습득의 여러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경전을 지닌 한산과 빗자루를 들고 있는 습득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경전은 지혜를, 빗자루는 수행을 의미한다. 이는 한산이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의 화신이고, 습득이 수행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의 화신인 맥락과 상통한다. 흥미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유행한 조양도(朝陽圖)와 대월도(對月圖)에 납의가 수행을, 경전이 지혜를 상징하는 것과 비교된다.

“한 척 긋는 붓의 이치가 천 리 길을 걷는 것과 같다(一尺筆道千里行步)”. 월주(月洲) 원덕문(元德文, 1913~1992)이 제자들에게 남긴 가르침이다. 먹선 한 척 긋는 힘이 천리길을 걷는 힘과 맞먹는다는 의미이다.

월주는 조선 후기 경상도 불화의 맥을 이은 금어(金魚) 중 한 사람으로, 20세기 불교미술을 대표하는 불모(佛母)다. 뛰어난 수묵의 필치로 그려낸 ‘한산습득도’에는 그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월주의 맥을 이어받은 소운(素雲) 김용우(金容宇)와 김석곤(金碩坤) 두 선생님의 배려로 그림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여간한 안복(眼福)이 아니었다.

중앙에 놓인 소나무를 사이에 두고 경전과 붓을 든 한산과 빗자루를 짚고 서 있는 습득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한산과 습득은 현실적이고 이상적인 인체비례가 합쳐진 월주가 그린 인물의 독특한 비례를 보여준다. 먹의 농담을 적절히 사용해 표현한 암석은, 그의 산수화나 불화에서 보이는 것처럼, 짧고 긴 피마준으로 질감을 나타냈다.

천지는 만물의 부모다. 월주는 노년에 이르러 얻은 깨달음을 “우주만법의 진리가 대자연의 진리와 그 맥을 같이 한다”라고 말했다. 그가 남긴 한 폭의 그림이 꾸밈없고 순수한 것은 한산과 습득처럼 “푸른 하늘”, 즉 천진한 자연의 마음을 얻은 까닭이지 않을까.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504 / 2019년 9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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