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청룡사 ‘반야용선도’와 이형록 ‘도선도’
15. 청룡사 ‘반야용선도’와 이형록 ‘도선도’
  • 손태호
  • 승인 2019.09.09 17:17
  • 호수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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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으로 가는 길에는 귀천이 없더라

조선시대 배 타고 강 건너는 모습
‘반야용선도’ 중생 동등하게 자리
차별없는 평등함이 불교 근본사상
‘도선도’ 반상 엄격했던 현실 담겨
‘반야용선도’, 90×220cm, 안성 청룡사 대웅전 좌측 윗벽, 조선후기.

지난 백중날에 백중회향법회를 다녀왔습니다. 올해는 특별히 돌아가신 조부모 49일 천도기도를 인연 있는 스님에게 작은 정성이나마 부탁드렸습니다. 저희 할머니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시여 아무런 기억이 없지만, 할아버지는 중학교 시절까지 살아계셔서 기억이 제법 남아 있습니다.

백중기도는 평소 일반 법회와 다르게 여러 의식과 다라니뿐 아니라 바라춤과 반자, 북, 피리연주로 찬탄과 공양의 의미가 더욱 풍성해져 함께하는 신도들도 마음이 흡족하고 충만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의식이 진행되던 중 법당 한 켠에 마련된 용선을 발견하였습니다. 종이로 약간 어설프게 만들었지만 앞과 뒤에 용의 머리와 꼬리가 달린 분명 반야용선이었습니다. 반야선은 중생이 생사의 윤회를 벗어나 정각(正覺)에 이를 수 있게 하는 반야(般若)를 중생이 생사고해를 건너 피안(彼岸)의 정토에 이르기 위해 타고 가는 배에 비유한 것입니다.

중생들은 이 배를 타고 아미타불과 인로왕보살, 지장보살의 인도를 받아 서방정토로 갑니다. 이때 배의 모습은 용의 모습이라 반야용선이라 불렀는데 이 도상은 13세기부터 그려지기 시작하여 줄곳 그려지다가 조선후기가 되어 ‘반야용선도’란 명칭과 도상이 완전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사찰 벽화로는 양산 통도사, 제천 신륵사, 파주 보광사 벽화가 유명하지만 오늘은 안성 청룡사의 ‘반야용선도’를 함께 감상하고자 합니다.

청룡사 ‘반야용선도’는 배 중앙에 아미타불, 대세지, 백의관음보살이 있어 중심을 잡아주고 양 옆으로 극락으로 가는 왕생자들과 주악천녀, 천동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균형감이 좋은 그림입니다. 용의 몸통은 매우 사실적이고 탄력성이 느껴지며, 배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는 구름모양으로 섬세하게 묘사하였습니다. 또한 인로왕보살과 지장보살이 사라지고 대신 노를 젓는 남녀가 표현되여 일반적인 조선후기 ‘반야용선도’와는 조금 다른 모습입니다.

무엇보다도 청룡사 ‘반야용선도’의 특징은 다른 ‘반야용선도’에서는 볼 수 없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뱃머리에서 노를 젓는 여인과 그 뒤로 밤색 모자와 굵은 염주를 목에 건 인물들입니다. 그 중에 한 인물은 소고를 머리 위로 들고 두드리려는 모습입니다. 이 인물들은 누구일까요? 그 단서는 이 벽화 하단에 모셔져 있던 청룡사 ‘감로도’에 힌트가 있습니다. 청룡사 ‘감로도’에는 감투를 쓰고 염주를 손으로 받쳐 든 인물, 춤을 추는 인물, 소고를 치는 인물 등 굿중패가 등장합니다.

굿중패는 사찰 신표를 지니고 염불과 가무 등의 연희를 통해 불사금을 모았던 집단으로 안성에는 그 유명한 남사당 바우덕이패가 있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바우덕이 남사당패는 청룡사에 기거하면서 큰 불사가 있을 때마다 전국을 떠돌며 굿과 놀이를 통해 시주금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청룡사는 천하에 기댈곳 없는 천민들에게 기거할 장소를 마련해 주었고 사당패들은 굿이 없을 때는 사찰의 불목하니로 지내면서 부처님과 함께하였던 것입니다.
 

이형록 작 ‘도선도’, 38.8×28.2cm, 종이채색, 국립중앙박물관.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중생들과 청룡사는 그렇게 하나가 되어 수행하고 자비를 실천한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대웅전 ‘반야용선도’ 인로왕보살의 자리에 사당패가 등장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원래 안성 청룡사는 공민왕의 진영을 모셨고 인조의 아들 인평대군의 원찰로 왕실과 관계 깊은 사찰이었습니다. 그런데 ‘반야용선도’에는 왕실인물은 보이지 않고 여러 계층의 중생들이 동등하게 자리잡고 함께 극락왕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세속의 귀천과 부귀가 극락왕생과는 관련이 없으며 누구나 선업을 쌓고 복덕을 지으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불교의 평등사상이 ‘반야용선도’에 반영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물들이 배를 타고 가는 모습은 불화뿐 아니라 ‘풍속도’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소재입니다. 그 중 이형록(李亨祿, 1808~?)의 작품이라고 여겨지는 ‘도선도’를 한번 감상해 보려합니다. 이형록은 19세기 화원집안 출신으로 김홍도의 영향을 많이 받은 화가입니다. 강을 건너려는 인물들을 태운 두 척의 배가 살랑대며 지나가고 있는 여유로운 어느 가을날의 풍경을 묘사한 풍속도로 당시의 배의 모습과 풍경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는 작품입니다.

바닥이 넓은 배의 모습은 전형적인 조선의 배인 평저선입니다. 두 척 모두 선미 사공의 힘찬 노 젓기로 물보라를 일으키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저 멀리 원경의 산은 푸른빛으로 간략하게 표현했고 강물은 같은 푸른빛이자만 아주 연하게 선염하여 산수(山水)가 둘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건너편 나무들은 작게, 앞쪽 나무들은 크게 그려 거리감을 나타냈는데 먹빛의 가지를 선염한 나무들과 붉은 색으로 물든 낙엽을 표현한 나무도 있습니다. 이런 나무의 표현에서 이형록은 김홍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풍속화에도 모든 인물들의 표정이 생생하게 묘사한 김홍도와 달리 인물들의 얼굴 묘사는 뚜렷하지 않고 대부분 무표정한 얼굴입니다. 이는 그림의 주제가 배를 타는 인물이 아니라 강물에 떠가는 배와 강변의 평화로운 풍경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목가적 풍경을 강조하기 위해 배 앞으로는 갈매기들이 줄지어 날고 있습니다. 어느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을 편안하고 평화로운 느낌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화가의 의도가 확실하게 느껴집니다.

배는 두 척으로 윗쪽 배에는 도포를 입은 채 모두 갓을 쓴 양반들만 타고 있는데 사공을 제외하고 마부와 시종도 있지만 양반주인과 함께 있으니 이 배는 양반용 배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인지 햇빛을 가릴 수 있는 차양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아래쪽 배는 앞쪽에 쓰게치마를 쓴 여인둘이 있고 그 뒤로 물건을 잔득 실은 나귀와 상인, 어린이, 삿갓과 패랭이를 쓴 평민 등 여러 부류의 인물들이 함께 타고 있으니 서민용 배인 모양입니다. 나루에서 나루로 강을 건너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동안에도 반상의 구분이 엄격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가격이 저렴한 나라에서 운영한 관선과 개인이 운영하여 뱃삯이 비싼 사선의 차이인지도 모르겠으나 권력의 차이가 부귀의 차이와 다름없으니 반상의 차이가 엄격했던 우리 옛 모습이 분명합니다.

배를 타고 가는 두 작품을 함께 보면서 고대 인도 석가모니 부처님 시절에 불가촉천민도 언제나 진심으로 대하였던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화들이 생각납니다. 누더기 옷을 입고 걸식하며 승단의 모든 제자들과 함께 생활했으며 아무리 천한 인물도 부처와 보살이 될 수 있다고 모든 중생들에게 가르쳤기에 불교는 근본적으로 평등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삼국유사’의 ‘사복’과 ‘욱면’의 이야기처럼 깨달음에 있어서는 부귀의 구별이 없다는 것이 불교의 기본사상입니다. 청룡사 ‘반야용선도’와 풍속화 ‘도선도’를 보면서 우리는 남은 시간동안 어디로 향해 가는 배에 탑승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인지 한번쯤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가봅시다. 가봅시다. 좋은 국토 가봅시다. 천상인간 두어두고 극락으로 가봅시다 / 반야용선 내어보내 염불중생 접인할 제 팔보살이 호위하고 인호왕보살 노를 저아 / 제천음악 갖은 풍류 천동천녀 춤을 추며 오색광영 어린 곳에 생사대해 건너가서 / 너도나도 차별없이 필경성불 하고마네.’ (왕생가 중)

손태호 동양미술작가, 인더스투어 대표 thson68@hanmail.net

 

[1504 / 2019년 9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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