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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악기의 비유와 중도의 길

기자명 김준희

깨달음 향한 수행의 길, 현악기에 비유한 부처님 

수행 안돼 환속 고민하는 제자에
악기 ‘비나’ 현의 완급 예로 들어
첼로·비올라·하프 등의 선율에서
수행과 중도 떠올리는 계기 되길

로베르트 슈만. 그림동화 작품 113은 비올라를 위한 독주곡으로 비올라의 음색을 잘 나타내고 있다.

바이올린과 첼로의 중간 음역을 지닌 비올라는 독특한 음색을 가진 악기이다. 바이올린이 화려한 소프라노라고 한다면 비올라는 따뜻하고 온화한 알토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음성과 유사하다고 생각되는 첼로의 음색보다 조금은 어둡지만 침착하고 세련된 매력을 가졌다. 또한 비올라는 실내악이나 규모가 있는 관현악에서 중후한 첼로와 개성 강하고 다소 날카로운 바이올린의 중재자와 같은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다.

로베르트 슈만의 ‘피아노와 비올라를 위한 그림동화 작품 113(Märchenbilder)'은 잔잔하면서도 개성 있는 서정성이 돋보이는 곡이다. 원래 메르헨(Märchen)은 독일 낭만주의 문학의 한 장르로 이상하고 기묘한 환상적인 분위기의 이야기를 뜻한다. 전반적으로 따뜻하면서도 변화무쌍한 느낌을 가진 이 곡은 비올라 연주 문헌에서 빠지지 않는 작품으로, 슈만 특유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소나꼴리위사는 온몸에 황금빛 털이 가득한 비구였다. 라가자하에서 붓다의 게송을 듣고 출가한 그는 원래 부유한 장자의 아들이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고귀한 대접을 받고 자랐으며, 한 번도 맨 땅을 밟아 보지 않았기에 발바닥에까지 털이 났다고 한다. 어느 날 그는 붓다의 설법을 듣고 그에게 반하여 망설임 없이 출가를 결심했다. 밤낮으로 정진했지만 수행의 결과를 얻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다짐했다. ‘물러서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자. 무엇이든지 실천하고 반드시 평안을 얻도록 하자.’ 

시간이 지나도 속세의 미혹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자 소나꼴리위사는 점점 환속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아무런 소득도 없이 헛된 수행만 거듭하고 있다. 수행의 결과를 기다리기보다는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세속생활에 만족하며 생활하는 것이 낫겠다. 차라리 가난한 사람들에게 널리 보시하고 공덕을 쌓는 것이 좋지 않을까?’

베토벤 첼로소나타 제3번 자필악보.

그의 생각을 알아차린 붓다는 직접 소나꼴리위사를 불렀다. 그는 붓다에게 여쭈었다. “저는 출가자의 수행생활을 잘 모르는 채로 설법을 듣고 기쁜 마음에 무턱대고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수행 생활도 어렵고 힘든 데다가 아무리 정진하려 해도 뜻대로 되지 않고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붓다는 소나꼴리위사에게 물었다. “그대는 집에 있을 때 비나(Veena, 인도의 전통악기)를 잘 연주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예 그렇습니다.”

“악기를 연주할 때 현을 너무 팽팽하게 조이면 소리가 어떠한가?” “듣기 좋지 않습니다.” “그러면 현이 지나치게 느슨하면 듣기가 어떤가?” “그것 역시 좋지 않습니다. 악기를 연주할 때 현의 완급을 적당하게 하지 않으면 좋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하다. 진리의 길을 걷는 것도 마찬가지다. 의욕이 지나쳐 너무 급하면 초조한 마음이 생기고 열심히 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태만해진다. 그러니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항상 가운데 길로 걸어가야 한다.” 그러면 머지않아 속세의 미혹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악기의 장력과 조율에 관한 비유는 매우 이색적이다. 경전에 악기가 간접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상당히 주목할 만한 일인데, 특히 비나의 예를 든 것은 느슨하지도 팽팽하지도 않은 적당한 현의 조율뿐 아니라 악기의 특유의 음색까지 고려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비나는 류트족의 악기로 주로 네 줄로 되어 있으며, 줄을 튕겨 연주한다. 고대 인도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악기 중 ‘신성’의 상징이며, 악기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또한 예술가에게 많은 칭송을 받는 악기이기도 하다. 국내의 많은 문헌에서는 ‘거문고 줄의 비유’로 소개하고 있다. 현존하는 인도의 현악기는 시타르(Sitar), 사랑기(Sarangi), 탐부라(Tambura) 등인데 그 중 비나의 음색이 가장 과장되지 않고 온화하다.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음악의 신 아폴론이 항상 지니고 다녔던 악기는 하프의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류트(lute)이다. 또한 중세시대의 음유시인들이 많이 연주했던 악기도 하프의 전신이 된다. 이렇듯 동서양 모두에서 자연스러운 맑은 음색을 자랑하는 발현악기는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게오르그 헨델의 하프 협주곡 B플랫 장조 HWV 294는 하프를 위한 협주곡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하프의 맑고 깨끗한 음색이 돋보이는 곡으로 많은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47개의 현에서 그려지는 우아하고도 사랑스러운 하프의 선율은 소박하지만 인상적이며 부드러운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헨델의 음악은 대부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데, 특히 하프 협주곡의 첫 악장은 전반적으로 강렬한 악상보다는 순수한 음색 자체에 무게를 두고 있다.   

‘중도(中道)’의 가르침과 가장 어울리는 음색을 가진 악기는 단연 첼로라고 할 수 있다. 화려함보다는 포용력이 있는 깊은 음색을 지닌 첼로는 바로크 시대까지는 악기의 모양과 크기가 계속 변해오면서 고음 현악기들을 지탱해 주는 역할을 맡아왔다. 루드비히 반 베토벤은 다섯 개의 첼로 소나타를 작곡했다. 실내악과 관현악에서 ‘조용히 저음을 연주했던’ 첼로라는 악기에게 피아노와 함께하는 독주악기로서의 자격을 부여한 획기적인 일이었다. 

비나를 연주하는 사와스와띠(서초구 인도박물관 소장).

베토벤의 첼로와 소나타 제 3번 A장조 작품 69는 첼로 독주곡의 원숙미를 가지고 있는 작품으로 ‘첼로소나타’라는 장르의 대표적인 곡이다. 도입부의 첼로 독주 선율은 첼로의 진지한 음색과 질감을 연구하고자 한 베토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 곡은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확장된 형식의 표본이 되었고, 후대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가볍고 화려한 패시지와  중후하고 견고한 패시지가 교차되며 첼로의 음색을 잘 나타내 주고 있는 이 작품의 마지막 악장의 우아하고 세련된 선율은 특히 감동적이다.

지나치게 느슨한 태도나 필요 이상으로 조급한 마음은 장애가 되므로 알맞게 중도를 취해야 한다는 붓다의 가르침은 소나꼴리위사가 스스로 독려하며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출가 전 즐겨 다루었던 악기에 관한 비유의 일화는 출가자와 재가자 모두에게 큰 지혜를 전한다. 길고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차가운 바람을 맞이하는 때, 침착하고 따뜻한 비올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지닌 하프, 중후하고도 포용력 있는 음색을 지닌 첼로의 선율을 감상하며 스스로에게 맞는 수행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05 / 2019년 9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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