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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고 변인석 교수

기자명 이재형
  • 데스크칼럼
  • 입력 2019.09.27 16:26
  • 수정 2019.10.01 18:00
  • 호수 1506
  • 댓글 8

9월21일 별세…구법승 권위자
연구 위해 중국도 90회 답사
무상대사 등 구법승 행적 구명

고 변인석 아주대 명예교수
고 변인석 아주대 명예교수

며칠 전 짤막한 메일을 받았다. 내용은 두 줄이었지만 보는 순간 먹먹해졌다. ‘고 변인석 교수님께서 2019년 9월21일 별세하셨습니다. 평생을 공부하시며 불교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기신 변인석 교수님을 추모합니다.’라는 글과 10년 전 내가 썼던 교수님 관련 기사가 링크돼 있었다.

답장을 보내 확인해보니 고인의 차남이었다. 수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는 울고 있었다. 평생 역사학자의 길을 걸었던 부친이 마지막까지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일이 불교사 연구였고, 한반도의 훌륭한 고승들이 묻힐 수 있다는 안타까움에 연로한 몸을 이끌고 중국으로 향했었다고 전했다. 잊혀져간 불교사 복원을 위해 헌신했던 부친을 누군가는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84세로 세연을 마친 변인석 아주대 명예교수님을 처음 뵌 것은 2001년 6월 중국에서였다. 1980년대 말부터 수시로 중국을 오가며 구법승을 연구하던 교수님은 1990년대 후반 산시성에서 신라 혜초 스님이 774년 당나라 황제의 명령으로 9일간 머물며 기우재를 지냈던 선유사 터를 찾아냈다. 2001년 6월 조계사 주지 지홍 스님이 그곳에 혜초 스님 기념비를 세울 때 이 사업을 주도했던 교수님과 함께 취재 기자로 동참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2009년 6월이었다. 조계사 인근 찻집이라며 교수님이 전화를 주어 만났다. 건장했던 옛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지팡이에 의지해 힘겹게 서있는 노학자가 있었다. 교수님은 노란 서류봉투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380여쪽 분량의 ‘정중 무상대사’였다. 그러고는 중국고대사를 전공한 자신이 뒤늦게 불교사에 관심 갖게 된 이유와 그동안 어떻게 연구했는지, 이 책은 어떻게 출간될 수 있었는지를 들려주었다. 그분의 말씀을 듣다보니 경외심이 일었다.

중국 고대사를 전공한 변 교수님이 구법승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다. 교수님은 중국사를 보다 깊이 이해하려면 불교가 필수적임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불교사상과 역사에 관심을 가졌고, 이미 오래 전 중국서 활동했던 한국 스님들의 발자취가 적지 않음도 알았다. 진리의 등불을 밝히려 그 옛날 머나 먼 타국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스님들. 용케 거센 바다를 건넜더라도 언어와 문화의 장벽, 맹수와 도적, 추위와 굶주림을 견뎌내야 했던 고난의 연속이었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닿았다.

교수님은 구법승들이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때부터 옛 문헌을 뒤지고 관련 자료들을 모았다. 1988년 구법승 연구를 위해 중국에 첫 발을 내디뎠고, 이후로도 매년 몇 차례씩 중국을 오가며 연구에 매진했다. ‘중국문화유적답사’(1996) ‘당 장안의 신라사적’(2000) 등은 그렇게 탄생했다. 특히 ‘정중 무상대사’는 신라 왕자출신으로 중국선종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무상대사를 학술적으로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이 분야 연구를 한 단계 끌어올린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교수님은 무상대사 연구를 위해 6년간 방대한 문헌 조사와 관련 유적지를 14회나 답사했다. 그 과정에서 중국 독감에 걸려 몇 달간 사경을 헤맸고 몸무게도 20kg 넘게 줄었다. 절대 안정해야 한다는 의사의 만류에도 다시 현장을 답사하는 등 구법승 못지않은 노력이 있었기에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다.

편집국장
편집국장

그 후 교수님은 논문을 쓰면 연락을 주었고 그때마다 자택이 있는 수원을 찾아 옛 이야기도 들었다. 방광에 종양이 생겨 수술하는 등 뵐 때마다 교수님은 쇠약해져갔지만 열정은 더 단단해져갔다. 중국을 오가는 횟수도 점차 늘어 90여회에 이르렀고, 해동구법승 이해도 더욱 깊어졌다. 그렇지만 거동이 어려워지고 글을 읽고 쓰는 일조차 버거워졌다. 연락도 줄었고 이제는 한번 찾아뵙겠다는 약속도 지킬 수 없게 됐다.

‘구법승의 마음으로 목숨을 걸고 학문의 길을 간다’던 변 교수님. 그분이 계셨기에 숱한 구법승들의 자취가 되살아났고 한국불교사도 풍성해졌다. 불자의 한 사람으로 깊이 감사드리며 고인의 극락왕생을 발원한다.

mitra@beopbo.com

[1506호 / 2019년 10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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