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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맹·결사 깃든 위례 천막결사 거룩하다

기자명 법보

천막출입 완벽히 차단한
청규는 규칙 아닌 철칙

은산철벽 속 무차 공간
9인 수행자 모두 주인공

조계종 ‘선원총람’에 존재하지 않는 선원이 선다. ‘서리를 맞으며 달을 벗 삼아 정진하는 도량’이라는 의미를 함축한 상월선원(霜月禪院)이다. 이 선원이 들어설 곳은 위례신도시 종교용지이고, 문을 여는 때는 불기 2563년 동안거 결제가 시작되는 올해 11월11일이다. 45일 남겨 둔 상황에서 ‘어떻게 선원을 짓는가?’라는 노파심은 걷어 두어도 좋다. 대들보, 창방, 서까래가 필요 없는 천막법당이다. 한 겨울의 서릿발 칼바람이 휘몰아칠 허허벌판에 조성될 천막 법당에 방부 들일 수행인은 현재까지 9명이다. 

수행시간은 하루 14시간 이상이다. 공양은 하루 한 끼이고, 허용된 옷은 딱 한 벌이다. 묵언해야 하며 삭발·목욕도 일체 금지다. ‘이 청규를 어기면 조계종 승적에서 제외한다’는 각서까지 써야 입방이 허락된다. 선언적 규칙이 아니라 엄밀히 지켜야만 하는 철칙인 것이다. 하여, 이것은 용맹정진(勇猛精進)이다. 

‘가산불교대사전’의 도움을 받아 용맹정진에 담긴 깊은 뜻을 새겨보자. ‘정진이란 용맹을 특성으로 한다’고 했으니 ‘항상 용맹하게 하는 것을 정진’이라고 한다. 그러니 용맹과 정진은 둘이 아니다. 또한 ‘보리를 향해 용맹하게 정진하여 빠르게 증득하고자 한다’고 했으니 최고 수위의 정진은 용맹정진이다. ‘니건자소설경’에서 용맹정진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왕자 사문 구담은 용맹정진하며 힘든 고행을 행하였다. 하루에 마 하나를 먹거나, 쌀 한 톨을 먹으며 마음을 게을리 하지 않고 6년 동안 고행하여 등정각을 이루었다.” 9인의 수행인이 바라보는 지점도 ‘등정각’일 터다. 

“수행자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치열하게 정진하는 것만이 침체된 한국불교를 변화시키는 길이다. 동안거 한 철만이라도 제대로 살아보자!” 백담사 무문관에서 정진한 바 있는 조계종 전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갈파에 8명의 스님이 동감하며 상월선원 조성이 구체화됐다고 한다. 작금의 불교위상 추락 책임이 승가에 있음을 참회하는 메시지다. 세인들이 스님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스님들 스스로 초래한 것이라는 옛 선지식의 일갈을 올곧이 받아들였음이다. 또한 법문(法門)의 흥망성쇠가 승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 통찰이다. 하여, 이것은 결사(結社)다.

‘봉암사 결사’를 연구한 서재영 박사는  결사를 이렇게 설파한 바 있다. ‘승가 본래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정신적 자각이 집단적 형태의 종교적 실천으로 표출된 것이 결사다. 불조혜명을 잇겠다는 공동의 목표아래 수행을 통한 교단 혁신을 추구하는 승가운동으로 정의할 수 있다.’ 고려 지눌선사의 정혜결사, 한말 경허 선사의 수선결사, 문경 봉암사 결사를 관통하는 건 ‘청정승가 구현’과 ‘교단 쇄신’이다. 상월선원 야외천막결사도 그 맥락과 맞닿아 있다. 승가위상이 불교위상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이 결사의 귀함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상월선원 청규 중 가장 인상적인 건 ‘그 누구도 해제 때까지 천막에서 나갈 수 없다’는 점이다. 방선 후의 포행도 천막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얘기다. 주변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고, 앞은 철벽이 가로막혀 꼼짝달싹 못하는, 말 그대로의 은산철벽(銀山鐵壁)을 스스로 세우려 함이다. 추위와 배고픔도 견디기 어려울 지경인데 자신의 발까지 묶어버리는 것이다. 화두를 타파해 깨달음에 이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자, 한국불교 중흥을 향한 염원이기도 하다. 

강렬하면서도 거룩한 이 공간은 무차공간이다. 전 현직의 높고 낮음, 법랍의 무게는 이곳에 들어선 순간 화롯불에 눈 녹듯 한 찰나에 사라진다. 하여, 은산철벽 속에 좌복을 펼친 9인의 수행인은 모두 주인공이다.  

사부대중의 시선은 벌써 천막법당이 들어설 벌판에 쏠리고 있다. 황벽 선사의 시처럼 뼛속 깊이 사무친 추위를 이겨낸 매화가 선사할 향기를 기다리고 있음이다. 

 

[1506호 / 2019년 10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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