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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내 할머니 스님의 신통력-상

기자명 이제열

“부처님 앞에서 도둑질이라니”

할머니스님 절에 머무를 때
도둑 올 것 알고 화로 준비
밤 되자 정말로 도둑들 들어
할머니스님에 혼쭐 나 줄행랑

나의 할머니께서는 스님이셨다. 오늘날 내가 부처님의 길을 가게 된 동기도 순전히 할머니 명덕 스님의 공덕에 의지해서이다. 스님께서는 나를 무척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셨다. 어린 시절 방학 때면 스님이 계신 암자에서 지냈다.

스님은 도를 깨치신 분은 아니었지만 부처님을 향한 신심과 정성은 극진하셨다. 신도들이 절에 올때 생선도 못 먹게 하셨고 부부간에 잠자리도 금하셨다. 부처님께 바칠 공양미를 가져올 때에는 도중에 땅에 내려놓지 못하게 했고 불공 전에 가져온 음식을 먼저 먹지 말라 하셨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런 스님에게는 신통력이 있으셨다. 나는 스님이 보였던 신통들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내 나이 28살까지 보아왔던 일들이고 보니 거짓이나 착각은 절대 아니다.

먼저 중학교 2학년 때 있었던 일이다. 눈이 많이 와서 온산천이 하얗게 뒤덮인 겨울날 저녁 공양을 마친 스님은 공양주 보살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얘, 오늘은 방에 군불 땔 때 장작을 많이 때라. 그리고 화로에 불을 많이 담아서 방에 가져와라. 내 오늘은 할 일이 있다.” 

공양주 보살은 스님 말씀대로 화로에 장작불을 가득 담아 방에 가져다 놓았다. 암자가 작은 관계로 식구들이 한방에서 지냈으므로 나는 스님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었다. 방에는 스님과 공양주, 스님의 도반 보살님과 내가 함께 잠을 잤다.

그런데 그날따라 스님의 행동이 달랐다. 여느 때 같으면 일찍 잠자리에 들 텐데 잠을 주무시지 않고 화로불만 계속해서 쬐고 계셨다. 그리고는 인두로 화로에 담긴 불들을 신경을 써서 보살폈다. 시간이 얼마 흘렀는지 내가 잠이 들었는데 스님이 이렇게 혼자말로 중얼거리셨다. 

“이놈들 왔다. 이 고약한 놈들….” 순간 잠자던 두 보살님과 나는 잠에서 깨었고 화롯가에 앉아계신 스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스님이 속삭이듯 말했다. 

“지금 밤손님들이 왔으니 아무 말 말고 모두 이불 쓰고 누워 있거라.” 나는 무서워서 오금이 저려왔다.

여기에 더욱 두려운 광경이 있었으니 사람들의 그림자가 방 뒷문에 얼씬거리는 모습이었다. 그 그림자들은 하얗게 쌓인 눈과 달빛의 영향을 받아 더욱 선명하게 문에 비치었다. 나는 무서웠지만 이불 틈으로 문에 비친 그림자들을 지켜보았다. 도둑은 모두 세 명이었다. 법당 쪽에서는 칼로 법당 문을 찢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때 도저히 믿기지 않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뒷문 검은 그림자의 얼굴이 문을 향해 가까워지더니 손가락 하나가 문창호지를 뚫었다. 호롱불이 켜있는 방안 풍경을 보려고 도둑 하나가 손가락으로 구멍을 들이민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스님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들고 있던 인두로 그 손가락을 지져버렸다. 나도 나지만 기절초풍 한 사람들은 도둑들이었다. 그들은 전혀 예상 못한 스님의 행동에 망연자실했다.
손가락을 데인 도둑은 넘어져 뒷문의 도랑가에 빠졌고, 다른 도둑은 법당 문을 찢던 도둑을 데리고 절 마당의 나무 뒤에 숨었다. 스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미리 준비해 놓은 몽둥이를 빼서 들고 문을 박차고 나가시더니 도둑들을 향해 큰소리로 야단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산천이 떠나갈 것같은 목소리로 도둑들을 나무랐다. 스님의 기상에 도둑들은 아무 짓도 못하고 건너 마을로 도망쳤다.

악몽과도 같은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자 스님이 도반 보살님에게 말씀하셨다. “저녁을 먹고 법당을 들어갔는데 갑자기 밤손님이 올 것이라는 생각이 요지부동으로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놈들 혼내줄려고 그렇게 했지. 쌀이 없으면 달라고 할 것이지 부처님 앞에서 도둑질하려고 하면 되나” 하셨다. 이미 50년이 지난 일이지만 지금도 그때 모습이 역력하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506호 / 2019년 10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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