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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천안 성거산 천흥사 동종

기자명 이병두

여전히 유랑 중인 고려왕실 동종

왕건, 후삼국 통일기념해 창건
1010년 당시 가장 큰 동종 축조
조선시대 폐사한 후에 유랑길
1969년 국립중앙박물관 이전

1920년 남한산성 종각에 있던 천흥사 동종(출처 ‘조선고적도보’2).
1920년 남한산성 종각에 있던 천흥사 동종(출처 ‘조선고적도보’2).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높이 1.68m로, 상원사 동종, 성덕대왕 신종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동종이 있다. 국보 제280호로 지정된 이 종은 본래 충남 천안시 성거산 천흥사에 있던 것으로, 종의 몸통에 ‘성거산천흥사종명통화28년경술2월일(聖居山天興寺鐘銘統和二十八年庚戌二月日)’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서, 고려 현종이 즉위한 1010년에 주조된 사실을 확인해준다.

‘성거산’과 ‘천흥사’.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전설에 따르면 성거산은 고려 태조 왕건이 삼국통일 과업 마무리로 동분서주할 때 이 산을 보고 “성스러운 신령이 있다”며 제사를 지내게 하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산과 똑같은 이름이 자신의 출생지이자 고려의 도읍지가 되는 송악(개성)에도 있으니, 왕건이 이 지역을 천안(天安)이라 하고 이 산에 성거산이란 이름을 붙인 정치‧심리적인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왕건은 936년에 후삼국을 통일한 뒤 이를 기념하는 뜻에서 이 성거산에 천흥사(天興寺)를 착공하여 4년 뒤인 940년 완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절은 고려왕실의 특별한 지원을 받는 유가종 사찰로, 앞에서 말했듯이 그 70년 뒤인 1010년에는 거대한 동종과 보물 제354호로 지정된 5층석탑 등을 축조하였다. 폐사된 지 오래된 이 천흥사 터에는 그밖에 보물 제99호로 지정된 당간지주도 완벽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 전성기의 규모를 짐작하게 해준다.

천흥사 동종은 고려시대 범종 중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워서 그 시대를 대표하는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조선 초기에 천흥사가 폐사되면서, 이 종은 이곳저곳 유랑생활을 이어가게 되었다. 조선 인조 때에는 남한산성에서 병사와 주민들에게 시각을 알리는 용도로 사용되었고, 그 뒤 다시 세상에 등장한 것은 이 종을 손에 넣은 어느 일본인이 이것을 1910년에 이왕가박물관(덕수궁미술관)에 팔아넘기면서다. 그 뒤 1938년 덕수궁으로 옮겨졌다가 1969년에 다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되었지만, 이곳도 이 종의 본래 자리가 아니라서 아직 유랑이 끝났다고 할 수 없다.

어쨌든 남한산성에서는 오랜 세월 함께 했던 이 종의 인연을 살려 행궁 안 종각에 본래 종의 세배 크기로 복원한 동종을 달아놓고 있으며, 천안시에서도 이 종을 기본 모델로 하면서도 비천상 대신에 비둘기‧무궁화 등의 문양을 새겨 넣고 아래쪽에는 ‘천안(天安)‧지안(地安)‧인자안(人自安)’ 글자를 새긴 ‘천안시민의 종’을 주조하여 2011년 말에 ‘동종제작 1000년 기념’ 타종 행사를 열기도 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이 ‘성스러운 신령이 머문다’고 보고 싶었던 성거산에 ‘하늘[왕조]을 흥하게 할 절’로 지은 천흥사였지만 결국 폐사되고 종은 유랑생활을 이어갔다. “박물관으로 팔려간 덕분에 일제강점기 동종 공출을 피해 살아남았다”고 자위하기에는 마음이 쓰리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506호 / 2019년 10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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