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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편지와 엽서  ② - 진광 스님

기자명 진광 스님

“나는 일기와 편지, 엽서를 씀으로써 존재한다” 

세상은 글과 말의 힘, 그것으로써  
변하고 진보했으니 혁명과도 같아

직접 쓴 손편지는 ‘SNS’에 없는 
설명할 순 없지만 무언가 있어
무엇보다도 쓰고 보내는 즐거움 
기다림 그리고 멋과 여유도 있어  

그림=허재경
그림=허재경

나는 어려서부터 뭔가 공책에 쓰는 것을 좋아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일기쓰기’였다. 무언가 나만의 비밀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이 좋았다. 지금 읽어보면 그 내용이란 게 참으로 기도 안 차는지라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말이다. 그래도 열심히 무언가를 기록하면서 아울러 그중에 한자로 바꿀 수가 있는 것은 국어사전을 찾아서 써 보았다. 국어와 한문 2개 국어를 익히는 나만의 일기쓰기 비법이었다.

아버님께서 한학을 좋아하셔서 초등학교 3학년 아들에게 매양 ‘농민신문’을 읽게 하셨다. 국한문 혼용인지라 읽기가 쉽지 않은데 용케 잘 읽으면 칭찬과 함께 ‘하드(딱딱한 아이스크림)’를 사주시는지라 기를 쓰고 읽었다. 그런 까닭에 어린 나이에도 ‘명심보감’이나 ‘고문진보’ 등의 한문고전을 읽고 쓰고 외우면서 지냈었다. 거기 나오는 한시 등은 연애편지의 소재로도 유용하게 사용되었음은 물론이다.

지금도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아 일기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 무시무시한 선방에서도 일기를 쓴 적이 있고 여행 중에는 꼬박꼬박 여행기 겸 일기를 쓰는 버릇이 있다. 이번 일기는 지난해 겨울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벌써 8개월째 하루도 빠짐없이 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 오른손 세 번째 손가락은 항상 굳은살이 배겨 딱딱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 굳은살은 내겐 일종의 영광의 상처이자 훈장과도 같다 할 것이다.

글쓰기는 일종의 습관과 같은 것이다. 때론 글 감옥에 갇힌 채 글을 써야만 하는 상황이 과히 좋지만은 않지만 그게 바로 복이란 걸 나도 물론 안다. 텍스트를 다시 읽고 다시 쓰고 다시 말하는 것이 곧 혁명임을 알기 때문이다. 글은 나와 세상을 바꾸는 일종의 무기와도 같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글과 말의 힘을, 그것이 곧 혁명과 같음을, 그것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진보하게 함을 믿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어떤 텍스트라도 다시 읽고, 다시 쓰고, 다시 말하는 것을 결코 멈출 수가 없다.

편지쓰기는 중 1때의 담임 선생님과 주고받은 5년간의 편지쓰기에 힘입은 바가 크다. SNS와 휴대폰이 발달한 지금도 나는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 보다는 손편지 쓰는 것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손편지는 기계가 전달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쓰는 즐거움과 함께 보내는 즐거움과 기다리는 멋과 여유가 있다. 그 보다 더한 종이와 사람의 향기가 있어 좋다.

남미 칠레의 민족시인인 파블로 네루다에게 편지를 전달하던 집배원이 시인이 되었다고 한다. 위대한 소설가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주던 이는 마침내 소설가가 되었다고 한다. 나도 그런 위대한 문필가를 위해서라면 집배원이든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니면 그런 분을 위해 편지를 대필해주는 역할도 할 수가 있다는 생각이다.

누군가의 의미 없는 편지는 쓰레기에 지날지 모르지만 누군가의 편지는 역사이자 문학이며 한 사람의 일생을 뒤집어 버리는 대사건이 되기도 한다. 나도 그런 편지글을 이 세상에 내 이름으로 남기고 싶다. 그들도 했는데 나라고 못할 것이 무엇인가 말이다. 지금도 나는 돈 맥클레인의 명곡인 ‘빈센트(Vincent)’를 들으며 빈센트 반 고흐의 ‘영혼의 편지’를 읽곤 한다. 실로 그 누구보다 불행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열하고도 아름다웠던 그의 삶과 편지글에 매료되어 충격과 전율을 느낀다.

전 세계를 떠돌며 유력할 적에 내가 할 수가 있는 것은 다만 여행기 등의 글을 쓰고 편지나 엽서 등을 지인들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보통 한 달에 다이어리 한권 정도의 여행기를 겸한 일기와 엽서 50여통 이상을 쓰곤 한다. 특히 어른들보다는 아이들에게 엽서를 보내는데 이 작은 엽서나 편지가 그들의 삶에 있어서 작지만 소중한 꿈과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지인들의 집을 방문하면 아파트 문 전체가 내가 보낸 엽서로 장식된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보통 각 나라에서 보낸 엽서가 2~30여개는 족히 되는 듯하다. 편지는 주로 내가 묶는 호텔의 편지지나 봉투로 보내곤 한다. 뜻하지 않은 편지나 엽서가 외국에서 올 때의 기분도 좋겠지만 사실은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왜,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한 법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성스레 쓴 50여개의 엽서를 들고 우체국으로 가서 우표를 일일이 부친 후 우체통에 넣는 그 순간의 행복을 안 해본 사람은 결코 모를 것이다. 그리고 이 엽서를 받는 이들의 행복한 미소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리 많은 편지나 엽서를 보내건만 누군가 내게 보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만 하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직접 편지나 엽서 쓰는 요상한 습관이 생겼다. 남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내가 나에게 보내는 것도 나름 의미 있고 행복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 그 시절의 추억과 다짐 등을 되새겨 볼 수가 있다. 그것은 또 다른 나의 삶과 여행의 추억이자 수행과 깨달음의 역사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매일 일기를 쓰고 간혹 편지와 엽서를 쓴다. 나만의 이 즐거움과 행복을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다. 다시 여행을 떠날지라도 여행기를 쓰거나 편지와 엽서를 보낼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내 자신에게도 여전히 편지나 엽서를 보낼 것이다. 나의 지인들은 또 나의 편지나 엽서를 기다리다가 받게 되면 비로서 행복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참 이제 드로잉을 배웠다가 여행 중에 만나는 자연과 유적과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다. 영국의 비평가인 존 러스킨은 “말을 하듯이 그려보라!”고 말했다. 이미 글을 썼으니 그것들을  말을 하듯이 그림으로 그려보면 어떨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럼 나만의 소중하고 의미 있는 여행스케치 화첩이 될 것이다. 아니 편지나 엽서를 보낼 적에 예쁜 그림과 함께라면 더욱 생생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함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읽고 쓰고 그리고, 말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진광 스님 조계종 교육부장 vivachejk@hanmail.net

 

[1506호 / 2019년 10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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