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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김기영의 ‘파계’(1974)

선의 세계로 바라본 법통 전수와 본래면목의 길

감독 이력 중에서 눈에 띄는 행보 
고은 작품 원작으로 한 불교영화 
법통 전수를 위한 경쟁구조 중심
본래면목 찾아나선 과정 담아내

김기영 감독의 ‘파계’는 스님을 주인공으로, 사찰과 선의 세계를 프레임에 채웠다는 점에서 불교적 색채가 강한 불교영화다. 법통 전수를 두고 스님들 간에 벌어지는 경쟁 구도와 파계의 행위를 통한 변화를 담아냈다. 사진은 영화 ‘파계’ 캡쳐.
김기영 감독의 ‘파계’는 스님을 주인공으로, 사찰과 선의 세계를 프레임에 채웠다는 점에서 불교적 색채가 강한 불교영화다. 법통 전수를 두고 스님들 간에 벌어지는 경쟁 구도와 파계의 행위를 통한 변화를 담아냈다. 사진은 영화 ‘파계’ 캡쳐.

 

김기영 감독은 ‘하녀’(1960)를 통해 독창적인 미장센으로 한국사회의 불균질성과 인간의 욕망을 포착하였다. 그는 기인, 그로테스크, 독특함이라는 수식으로 평가되었으며 1960년대 거장 감독으로 한국영화사에서 위상을 확보하였다. 김기영은 대학시절 연극 동아리 활동의 영향으로 기묘한 미장센과 섬세한 인간 내면을 전등으로 비추는 것처럼 적나라하게 포착해냈다. 그의 작품 이력에서 고은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불교영화 ‘파계’는 다소 파격적인 행보이며 자신의 스타일과 원작의 세계 사이에서 줄다리기 하면서 자신의 세계로 기울게 한 작품이다. 

‘파계’는 계율을 파기하는 파계와 법통을 전수받기 위한 올깎이와 늦깎이의 경쟁을 두 축으로 한 영화다. 스님이 주인공이며 사찰을 배경으로 선의 세계를 프레임에 채웠다는 면에서 불교영화의 요건을 갖추었다. 불교영화 중에서도 불교의 색채가 강한 편이며 첫 장면에서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율승과 선승을 구분하면서 불교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산사에 갔다고 술회한다. 

무비 스님에 의하면 ‘불교의 교학은 아난존자가 부처님의 법문을 들은 대로 외워서 전하고, 선불교의 등불은 가섭존자의 마음에 심어주어 상전(相傳)’하였으며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파계’는 선의 세계를 중심에 두고 있으며 부처님의 마음을 전하는 가섭 존자와 달마 조사의 계통을 이어온 법통 전수에 대한 문제로 영화를 이끌고 간다. 법통은 가사와 발우를 주고받으면서 전하는 불교적 전통이며 이 영화에서는 가르침과 깨달음의 정도를 헤아리는 법거량에 대한 정도로 법통 전수자를 결정하여 영화적으로 변형했다. 법거량(法擧揚)은 서로 터득한 법을 검증해보는 것이며 ‘파계’에서는 단식을 오래하는 것과 소원암의 묘혼(임예진 분)을 통해 애욕에 대해 시험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늦깎이와 올깍이의 대표자인 경원 스님과 도심 행자의 선문답으로 결정적인 승부를 가른다. 

이와 같은 승부 장면에서 ‘파계’는 불교영화의 구도행이나 깨달음을 통한 교화라는 본령에서 벗어나 경쟁의 승리를 위해 원하는 것의 획득이라는 대중영화의 관습으로 기울어진다. 경원은 앞에 서 있는 나무를 가리키며 도심에게 ‘저 나무에 불성이 있느냐 없느냐’라는 화두를 던진다. 도심은 첫 번째 화두인 “빈 그릇은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에 대해 ‘빈 그릇은 모두 깨뜨려버리겠습니다’고 답하여 통했다는 검증을 받았으나 주관적인 경험에 한정된 답이어서 통함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했다. 도심은 불성을 내쫓는다며 나무로 올라가서 나무를 흔들고 경원에게 승리한다.
 
‘파계’는 선방에서 공양하는 장면과 경내를 정결하게 청소하는 장면 등 수도승의 일상으로 채워진다. 그 일상 속에 백장회해(720~814) 선사의 백장 청규인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一日不作 一日不食)’를 수도승의 문답 속에 집어넣는다. 침해와 도심 행자는 조실스님인 법연 스님으로부터 화두를 받는다. 화두는 ‘밤하늘의 별이 몇 개인가, 그 무게는 통틀어 얼마나 되느냐’이다. 도심이 받은 화두는 ‘빈 그릇을 채워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였다. 도심은 무불 스님의 화두에 대한 물음에 그릇을 모두 깨뜨린다고 답하여 공부의 정도를 드러낸다.  

침해는 여승들이 거처하는 소원암을 방문하여 묘혼 스님을 만나게 된다. 묘혼 스님은 손에서 소리가 들린다고 말하고 자신의 귀에 대고 소리를 듣고 미래를 예언하기도 한다. 침해는 소원암에서 묘혼의 손 등에 침을 놓아 소리를 듣는 능력을 거세시킨다.  ‘파계’에서 손은 반복해서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한다. 묘혼 스님은 손에서 들리는 소리가 사라진 후에 침해에게 소리를 돌려줄 것을 간청한다. 침해와 묘혼은 결국 손을 마주 잡게 된다. 손잡는 장면은 두 수도승의 감정을 클로즈업으로 가시화한다. 묘혼 스님은 ‘버리시면 손을 자르겠다’고 말한다. 

침해는 손가락을 소신공양하면서 정진한다. 묘혼은 전라를 통해 올깎이와 늦깎이의 법통 전수를 위한 시험을 한다. 침해는 자신도 옷을 벗고 육체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나 건강한 인간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침해는 법통 전수를 위한 경쟁에서 벗어나 사찰을 떠나고 도심은 단식 시험을 받게 된다. 침해와 묘혼은 석탑 부근에서 도를 깨우치기 위해서는 일곱 번 살고 죽어야되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본래 자신을 찾아간다. 이 장면은 불교적 정신 세계의 창조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김호성 교수는 ‘법연 스님은 법통의 길이 아니라 본래면목의 길을 가라’는 우회적 가르침을 침해에게 내렸을 것으로 해석하였다. 침해와 묘혼은 단순한 파계의 행위인가 아니면 법통의 길이라는 세속적인 승부의 세계를 벗어나 본래면목의 길로 향하는 것인가. 즉 침해가 계율의 파계를 통해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간 것인가는 관객의 몫이다. 김기영의 영화 이미지는 인물의 나신과 붉은 태양이 하나가 되는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 장면은 계율의 파계를 통한 본래면목으로 귀일이라는 의미에 더 설득력을 부여한다. ‘파계’는 죽비소리를 내면서 수도정진하는 수도승과 법통을 전수받기 위한 올깎이와 늦깎이의 경쟁을 표면적 서사로 세워놓았다. 이면에는 본래면목으로 귀일은 모든 계율로부터 자유로울 때 가능함을 역설한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506호 / 2019년 10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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