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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의상대사의 발원 

기자명 고명석

이름 모를 들꽃들이 장엄하는 화엄향기 퍼뜨리다

우리나라 화엄 초조로 불리며
방대한 ‘화엄경’ 도리 응축해
온 생명 제 모습 간직하면서
서로 화합· 조화 이룸이 법계

이 땅을 화엄세계로 만들어나간 의상대사는 선묘낭자 도움으로 고국에 당나라 침공을 알릴 수 있었다. 사진은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설화가 깃든 부석사. 
이 땅을 화엄세계로 만들어나간 의상대사는 선묘낭자 도움으로 고국에 당나라 침공을 알릴 수 있었다. 사진은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설화가 깃든 부석사. 

온 세계의 존재들이 서로 어우러져 꽃을 피우는 생명의 바다. 어느 하나의 뛰어난 꽃만을 내세우지 않고 수다한 들꽃들로 구성된 잡화들이 서로를 품으며 하나의 꽃으로 피어나는 화엄세계의 그윽한 향기. 내 속에서 전체를 보고, 전체 속에서 나를 보는 그 중도의 자리에서 붓다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는 그 존재 규명은 오늘날 생명 세상과 그 생명의 진정한 철학적 가치를 드러낸다. 

이 꽃으로 세계를 아름답게 장엄하는 화엄(華嚴)의 도리를 단백한 시어로 토해 낸 사람이 의상(義相, 625~702)대사이다. 그는 우리나라 화엄의 초조로서 화엄세상을 이 삶의 세계에서 꽃피워낸다. 삼의일발(三衣一鉢)의 청빈한 모습으로 수행자로서 위의를 잊지 않는다. 그 단아하고 검박한 모습대로 의상대사는 길지 않은 두 가지의 발원문과 방대한 ‘화엄경’ 전체의 도리를 간략하게 응축한 저술을 남긴다. 

의상대사는 신라 진평왕 47년(625)에 태어났다. 그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주도권 쟁취를 위해 힘 겨루던 삼국시대 전란의 와중에서 성장해 가다가 15세 전후 즈음에 경주 낭산 북쪽 기슭 황복사로 출가한다. 왕족 출신이었지만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고 세상에 홀로 선다. 그보다 연상이었지만 서로 왕래하면서 구도의 길을 갔던 원효는 무덤에서 마음의 도리를 깨친 후 서라벌로 돌아간다. 하지만 의상은 당나라로 들어가 화엄의 도리를 익히고 그의 주저인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를 짓는다. 그 법계도의 핵심은 법성게(法性偈)다. 법의 성품을 노래한 게송이다.

“법의 성품 원융하여 너와 내가 따로 없고/모든 법은 부동하여 본래부터 고요하며//이름 없고 모양 없어 모든 분별 끊어지니/체득하여 알 수 있고 생각으론 알 수 없네.”

법성(法性)이란 법의 성품이다. 법이란 존재요 현상이다. 그 존재의 성품이란 모든 존재는 서로 어우러져 융합되어 있음이다. 그렇게 서로 걸림 없이 머무는 자리는 일정한 한계나 틀을 떠나 있기에 고요하다. 움직이면서도 움직이지 않고, 머물면서도 머물지 않는다. 나이면서 내가 아니고 너이면서 네가 아니다. 이름을 떠나 있다. 규정지을 수 없다. 무한하다. 무한하기에 한계가 없으며 자유롭다. 그 무한 속에서 서로에게 가 닿으려고 발심하고 행동할 때 그것은 부처의 모습으로 일어난다. 그 순간 그는 바로 부처를 만나고 부처로 사는 것이다. 그것이 존재, 즉 법의 성품이며 활동이다.

의상은 신라가 당나라 침공의 위기에 몰리자 이를 조국에 알리기 위해 급히 귀국한다. 귀국길에 그를 사모했던 선묘낭자는 그를 위해 기꺼이 바다 속에 뛰어들어 용으로 화현하여 거센 바닷길에서 그가 탄 배를 보호한다. 의상은 당나라의 상황을 조정에 알린다. 그리고 곧바로 동해 낙산으로 향한다. 지금 낙산사의 홍련암 법당 마루 구멍을 통해서 보이는 관음굴로 말이다. 의상은 이 관음굴에서 치열한 기도 끝에 관음보살을 친견한다. 그곳은 바다의 생명이 움트는 곳이었다. 모든 존재들이 한 맛으로 영그는 자리였으며 그 상징이었다. 거기서 의상이 지은 것이 ‘백화도량발원문(白花道場發願文)이다.   

“저희는 세세생생 관세음보살을 스승으로 삼아/관세음보살이 아미타부처님을 이마에 이고 계시듯이/저희 제자들도 관세음보살을 이마에 정대하고/열 가지 서원, 여섯 가지 회향/천 개의 손과 눈으로 행하시는 대자대비를 모두 똑같이 행하며 이 몸을 버리거나 새 몸을 받을 때나/이 세상이든 저 세상이든 머무시는 곳마다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듯이/언제나 관세음보살님의 설법 듣고 참된 교화를 돕겠습니다.(명법스님 번역)” 

백화도량(白花道場)이란 백의를 입은 관음보살의 정토를 일컫는다. 그곳은 관음보살이 머무는 보타락산(補陀洛山), 포탈라카이다. 이 발원문의 주요 내용은 관세음보살께 귀의하고 관세음보살처럼 행위하여 자신이 관세음보살이 되어가면서 관세음보살의 구원을 받아 백화도량에 왕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관음보살 친견을 계기로 의상은 이 땅이 관음진신이 상주하는 불연 깊은 불국토임을 확신하고, 그 관음보살의 친견과 가피의 힘으로 이 땅을 화엄의 대지로 가꾸어 나가는 구도의 발길, 보살행의 발걸음을 내딛는다.

소백산에 이르러 저 멀리 보이는 앞산들이 서로 중첩되어 중중무진 법계연기를 이루는 그곳에서 부석사를 창건한다. 그로 말미암아 부석사는 한국 화엄의 중심 도량으로 떠오른다. 그곳은 또한 선묘낭자의 도움으로 얻어진 성지이기도 했다. 의상은 그 부석사에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한 무량수전을 짓고 선묘각 또한 지어 선묘의 은혜에 감사하고 그 영혼을 위로한다. 무량수전에는 아미타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관음보살의 이마, 그 눈 없는 눈의 눈 가운데 자리에 자리잡고 있는 분이 아미타부처님이다. 의상은 그렇게 스스로 관음보살이 되어 아미타부처님을 자신의 마음 한 가운데, 이 국토의 가운데 자리에 모시면서 그 부처님 자리로 돌아가기에 위해서 이 땅에 화엄세계를 만들어 나간다.

그것은 온 존재를 일깨워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면서 그 자리에 모든 타자들이 들어와 살게 하는 보현보살의 보살행이기도 하다. 그러한 보살행은 이 세계를, 이름 모를 들꽃들로 아름답게 장엄하는 화엄삼매의 물결이다. 거기에서는 계급적 차별을 떠나 모두가 존귀하다. 그래서 그는 왕이 하사한 전답과 노비도 한사코 받지 않았다. 왕이 성을 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교에 밝아 세상을 살핌이라 했다. 

진리의 세계인 법계는 온 생명이 제 모습을 간직하면서 서로 어우러진 화합과 화해의 공동체이다. 그곳이 작지만 아름다운 꽃으로 꾸며진 화장세계요 연꽃세상이다. 그 세계에 비로자나부처님이 앉아 계신다. 비로자나 부처님은 우주의 법신이다. 그 법신 부처님은 모든 상대적인 분별을 끊었기에 소리로도 모습으로도 그려 낼 수 없다. 하지만 그 텅 빈 자리에서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아름답게 피어난다. 모든 존재들의 다함없는 보살행 속에서 꽃이 핀다. 의상대사는 이러한 도리를 ‘일승발원문(一乘發願文)’으로 우리를 깨운다.

“모든 악행 한번 끊어 일체 악 끊고/온갖 선행 한번 이뤄 일체 선 이뤄//한량없는 선지식을 만나 뵈옵고/법문 듣기 싫어함이 없음이로다.//선지식이 대비심을 일으키옵듯/나와 함께 모든 존재 대자비심 일으키오리//선지식이 대보살행 닦아나가듯/나와 함께 모든 존재 대보살행 닦아나가리//광대하온 보현행원 구족하여서/화장세계 연꽃세상 어서 가서 태어나오리//비로자나 부처님을 친견하옵고/나와 남이 모두 함께 불도 이루리.” 

고명석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 kmss60@naver.com

 

[1507호 / 2019년 10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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