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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교토 묘주인·쇼조케인·오사카 신뇨지

사찰마다 분명히 드러나는 종지…다르지만 하나로 통일되는 의례

색깔이 분명한 일본 우란분 시아귀회
법탁에 공양물…맞은편에 영단 설치

진언종 묘주인 의식엔 수인작법 중요
신도는 의례에 향반 돌리며 향분 뿌려

정토종 쇼조케인은 공양등으로 장엄
의례 절차마다 ‘아미타불’ 염불 특징

​​​​​​​일연종 신뇨지엔 ‘법화경’ 독경법회
의례 중에 스님들 정수 뿌리며 축원

정토종 대본사 쇼조케인 대웅전 앞에 불 밝힌 공양등.

일본은 총본산에서부터 세세한 지류에 이르기까지 종파적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이들의 범패를 연구하다가는 일생 언저리만 헤매겠다 싶어 ‘모르는 게 약’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도무지 버틸 수 없는 궁금증에 살짝이나마 그들의 세계를 엿보는 심정으로 조사해보니 사찰마다 종지가 선명하게 드러났고, 이렇게 잘 보일 줄 알았다면 진작 와볼걸 후회했다. 2016년은 고야산을 시작으로 나라, 교토를 조사했는데 이번에는 나라, 교토, 오사카, 아스카까지 다녀보았다. 이들 중 세 사찰의 오봉·세가끼를 소개해 볼까한다.

묘주인(明壽院)과 같은 작은 사찰을 한국에서 찾아내기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 사찰의 주지스님이 교토 예술대학의 쇼묘 강사여서 인연이 되었다. 묘주인은 8월16일 오전 8시에 의례를 시작해 9시, 10시, 11시 등 4회에 걸쳐 동일한 의례를 반복했는데 절의 공간이 작고 신도들의 편의 때문이었다. 신도들 중에는 자신의 집에 모셔두었던 조상 위패와 마끼(소나무 모양의 나무가지)를 들고 와 종무소에 반납해 영단에 올린 후 새로운 위패를 받아갔다. 이러한 사람들은 대개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이었고, 의례만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청면금강 깃발이 걸린 묘주인.  

교토의 후시미(伏見)역 인근 작은 골목에 위치한 이 사찰을 찾기 위해 구글 지도를 따라 간신히 왔는데 ‘복견경신당(伏見庚申堂)’이라 쓰인 붉은 깃발이 걸려있어 한참을 헤매었다. 나중에 벽에 붙은 ‘묘주인’이 눈에 들어와 안으로 들어가 보니, 불단에 모셔진 상이 부처님이 아니어서 신사인지 사찰인지 헷갈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사찰의 본산은 나라에 있는 진언율종 서다이지(西大寺)였고, 진언종 다이고지파(眞言宗醍醐寺派)였다. 주불로 청면금강(靑面金剛)을 모시고 있어 일대에서는 ‘후시미고우신도(伏見庚申堂)’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묘주인의 우란분 시아귀회는 3명의 스님이 진행하는데 이번 조사 중 가장 소규모였다. 의례의 면면을 보니 고야산 곤고부지와 거의 유사했고, 천태 본산 엔라쿠지와 교토의 산젠인과도 같은 맥락이었다. 스님이 제반 의례를 행하고, 설행 중에는 수인작법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묘주인 신도들은 의례 중 향반을 돌리며 향분을 뿌리는 것이 전부였다. 같은 진언종 계열인 고야산 곤고부지에서는 불단 맞은편에 향반을 배치하여 재자들이 차례로 나가 분을 뿌리고 절하며 들어오는 것이 전부였다. 처음에 고야산과 비예산을 다니며 보았을 때는 일본 사찰의례는 다 이러려니 했는데 그렇지 않은 사찰을 보고서야 그것이 밀종의례의 특징임을 알게 되었다.

16일 저녁에는 교토 어소(御所)와 교엔(御苑) 인근에 있는 정토종 대본사 쇼조케인(淸淨華院)의례에 참례했다. 이곳은 오후 6시에 우란분, 오후 7시에 시아귀회를 행하며 의례를 마치면 법당회랑에서 오쿠리비(五山送り火)를 보는 순서였다. 쇼조케인에 대한 정보를 안지가 얼마 안 되었으므로 촬영 협조를 요청할 시간이 모자라 촬영은 아예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리하여 “이 사찰에서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어머니가 꼭 보고 싶어 하신다”고 사정했다. 그렇다면 의례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촬영을 하라는 약속을 받고 촬영을 하게 되었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연구를 위해 협조를 구하기보다 효심과 신심에 호소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묘주인 청면금강단 앞에 차려진 불탁(왼편)과 흰쌀밥 위에 오여래 깃발이 꽂힌 삼계만령단(오른편).

저녁 무렵이 되자 공양등을 마당에 진열하기 시작했다. 손이 필요하시면 거들겠다고 하니 배치하는 순서가 있어 안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등을 나도 하나 사면 안 될까 했더니 등마다 직접 붓으로 적는데 30분 이상 소요돼 아무나 금방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등에는 시주자의 이름과 그들이 원하는 기도문이 쓰여 있었다. 

오후 6시가 되어 오봉의식을 하는데 지금까지 보아오던 사찰과 확연히 달랐다. 불단 앞 법탁에 공양물을 진설하고, 맞은편에 삼계만령영단이 설치됐다. 우란분경을 강설하는 것은 같지만 의례 절차마다 나무아미타불 염불로써 이어갔다. 뿐만 아니라 공덕을 배양하는 재차에는 재자들이 불단 앞으로 나가 커다란 염주를 함께 돌리며 한참을 염불했다. 필자에게 이 염불의식보다 더 크게 와 닿았던 것이 있었으니 정토종 특유의 민요조 범패였다. 만약 아무 말 없이 들려준다면 민요라고 하지 범패라고 여기지 않을 곡태였다. 
 

우란분 기도 중 염주를 돌리고 있는 쇼조케인 신도들.

오후 7시 의례에서도 염불 절차는 마찬가지인 가운데 시아귀작법이 추가되었다. 한국의 수륙재차 중 하단에 많은 진언이 행해지는데, 이들 의례에서 시아귀작법에 오여래 다라니와 수인작법을 하는 것이 상통했다. 그런데 도사(導師)스님이 수인을 할 때 옷자락으로 손을 감추고 했다. 이러한 모습은 묘주인 스님도 마찬가지여서 연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인도의 힌두사제들이 염주를 돌릴 때 옷자락이나 천을 덮어 가리던 것이 떠올랐다. 보자기나 옷자락으로 수인이나 염주를 가리고 작법하는 것은 신성함을 쉽게 드러내지 않으려는 비의가 있었던 것이다.  

쇼조케인의 시아귀작법을 마친 후 오쿠리비(送り火)까지 보고 숙소로 돌아오니 자정이 다되었다. 다음날 오사카 북부 산골에 있는 신뇨지(眞如寺)를 가야하는지라 짐을 챙겨 JR기차를 타고 오사카 숙소에 도착하니 숙소에서는 “노쇼 손님이라 여겼다”며 접어 두었던 키를 성급히 찾아 주었다. 새벽부터 묘주인과 쇼조케인까지 두 탕을 뛰었으니 만신창이 되었는데도 다음날 낯선 길을 행여 잘못 들세라 얼마나 걱정을 했든지 꿈속에서도 구글 지도에서 오사카 교통편 검색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얼떨결에 눈을 떠 컵라면으로 허기를 채우고 일찌감치 숙소를 나와 지하철, 국철, 지방철을 갈아탄 뒤 시골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참으로 막막했다. 마침 한 일행이 있어 여기가 내가 타야하는 버스정류장이 맞느냐고 물었는데, 마침 한국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약 45분을 같이 기다렸는데, 만약 거기에 아무도 없었다면 얼마나 불안했을까. 버스에서 내려서는 들판과 산길을 걸어야하는데 거기부터는 신뇨지로 가는 일행들이 있었다. 이제는 살았다하는 마음에 그제야 들판이며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신뇨지 우란분에서 의례를 집전하고 있는 스님들.

니치렌(日蓮) 대사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오사카 신뇨지는 17일 오전 10시, 오후 1시 등 두 차례에 걸쳐 오봉·세가끼를 하고, 그날 저녁부터 밤 10시까지 니치렌 대탑을 중심으로 ‘법화경’ 독경법회가 열렸다. 신뇨지 입구에 들어설 무렵에는 10시 의례의 마지막 순행을 하고 있었다. 스님과 신도들의 음성이 논둑길에서도 들릴 정도로 열성적인 분위기였다. 

신뇨지에는 촬영을 위한 협조문을 보냈으나 “우리 사찰은 귀 학자께서 연구하려는 역사적 사료나 율조적 목적을 두고 의례를 하지 않으므로 연구할 대상이 못 된다”는 답이 왔었다. 그리하여 이곳에서도 촬영은 포기하고 갔었다. 그러나 8월 뙤약볕에 울러 매고 온 촬영장비가 억울하여 “우리 어머니가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어 하신다”는 효심의 비법을 한 번 더 발휘했다. 사정사정을 한 뒤 “의례에 방해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약속을 단단히 하고서 뒷자리에 숨듯이 촬영을 했다. 

의례를 마치고 나서는 긴자(金座, 한국의 어장과 같음)스님의 걱정이 태산이었다. 스님은 “내가 오늘 범패도 부족했으니 어머니 외에는 절대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며 수차례 당부했다. 귀국해보니 “‘촬영 때문에 기도에 방해가 됐다는 사람들이 있었다’며 다음에는 절대 촬영불가”라는 메일이 와 있었기에 “정말 죄송하다”는 사과문을 보냈다. 스님께 약속한대로 두 사찰의 동영상은 나의 어머니께 보여 드리는 것 외에 채보나 논문에만 참고할 뿐 그 누구에게도 개봉하지 않을 것을 이 원고에 약속한다.   

신뇨지는 개식사로 시작하여 도량게, 삼보례, 공양, 주원(呪願)을 할 동안 도사가 쇄정의식을 하고, 이어서 개경게, 방편품, 제바품훈독(提婆品訓讀)을 할 동안 일반 쇄수를 했다. 진언을 외며 바라와 법구를 타주(呪讀鐃鈸)하는데, 뇨(鐃)와 발(鈸)은 한국의 자바라와 거의 유사하나 바라가 마주치는 잔향을 최대한 확대하므로 화려한 음향이 발산되었다. 이어 불단을 돌며 염송하는 행도(行道), 보탑게, 회향, 사서(四誓)를 마친 후 봉송, 마침 인사(挨拶あいさつ), 패식사로 종료했다. 일본의 사찰은 대개 긴 회랑으로 연결돼 있어 개식사와 폐식사 사이에 승단과 보조사들의 입당 행렬이 길게 이어진다. 이러한 과정에 의례를 시작하는 결계, 정화 그리고 회향을 염원하는 범패나 염불이 따른다.

신뇨지는 지금껏 다닌 그 어느 사찰보다 스님과 신도들의 신심의 열기가 대단했다.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조상 위패를 예반에 동그랗게 펼쳐 담아 올리는데 비해 신뇨지는 법당 삼면에 판을 만들어 붙이고, 의례 중 두 스님이 일일이 정수를 뿌리며 축원했다. 이러한 과정 중에 뜻밖의 증언을 들었으니 법상종인 나라 야쿠시지는 고야산(高野山), 일연종인 오사카 신뇨지는 비예산(比叡山)이 자신들 쇼묘의 원류라고 했다. 그리하여 다음 회에서는 고야산과 비예산의 쇼묘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한다.

윤소희 음악인류학 박사·위덕대 연구교수 ysh3586@hanmail.net

 

[1507호 / 2019년 10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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