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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내 할머니 스님의 신통력-하

기자명 이제열

“얘야, 애비 대신 용서를 빌어다오”

부처님 불신·비난하던 부친
갑자기 몸 굳고 말도 못해
할머니스님께 참회하자 풀려

아버지는 할머니가 스님 되신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스님에게 특별한 일이 아니면 찾아뵙지 않았고 신심도 없었다. 스님 역시 속가에는 들르지 않으셨고, 나 외에 다른 가족들과 만나는 일도  없었다.

내게 할머니 명덕 스님이 보여주신 불가사의한 사건들 가운데는 아버지와 관련된 것도 있다. 당시 나는 21살이었고 그해 군에 입대했기에 어느 사건보다 기억이 또렷하다. 어느 날 아버지는 내게 할머니를 뵈러 절엘 가야겠다고 하셨다. 면사무소에서 스님의 일로 연락이 왔다며 자전거를 타고서 집을 나섰다. 집에서 절까지는 자전거로 약 1시간 반 정도 거리. 그런데 웬일인지 절에 가신 아버지가 일찍 집에 돌아오셨다. 가족들은 아버지가 오랜만에 스님과 만났으니 저녁도 함께 드시고 말씀도 나누느라 천천히 오실 줄 알았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아버지는 급히 돌아오셨고 표정도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아버지는 황급히 자전거에서 내리더니 내게 다가오셨다. 그리고는 내게 말씀은 않고 손짓으로 종이와 연필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나는 얼른 방에 들어가 종이와 볼펜을 가져다 드렸다. 아버지는 종이에다 이렇게 글을 쓰셨다.

“제열아, 애비가 할머니와 대화하던 중 노여움을 샀는데 발이 얼어붙어 땅에서 떼지를 못하다가 간신히 집에는 돌아왔는데 그 뒤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애비가 벙어리가 됐으니 큰일이다. 할머니가 네 말은 들으시니 내 대신 할머니께 빌고 나를 용서하시라고 말씀드려라.”

나는 아버지의 글을 읽고 큰일이다 싶어 자전거를 타고 급히 절에 올라갔다. 스님은 내가 올라가자 노하신 얼굴로 아버지를 나무라셨다. 그날 스님으로부터 전해들은 내용은 이렇다. “괘씸한 놈, 내가 네 애비한테 부처님한테 지극정성으로 절해야 복 받는다니까 부처님이라고 다 옳은 게 아니라며 사람들이 다 꾸며낸 얘기라고 대꾸하는 거야. 그래서 너 자꾸 그런 식으로 맘을 쓰고 부처님 업신여기면 벌 받는다고 했더니 ‘어머니도 참 어리석으십니다. 누가 누굴 벌줍니까?’하고 말하는 것 아니겠냐. 내 그래서 네 애비 정신 좀 차리라고 신중들에게 고해서 벌을 받게 했다”고 하셨다.

후에 아버지 말씀으로는 스님이 “신장님들, 이놈 벌 좀 내리십사”하고 말하자마자 사지가 마비되는 것처럼 몸이 굳었고 말도 할 수 없게 됐다. 스님이 꼴 보기 싫으니 가라는 말씀에 간신히 몸을 움직여 집에 돌아왔다고 했다. 나는 할머니 스님 말씀을 듣고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큰 잘못이라고 말씀드린 뒤 제가 대신 참회 드리니 한번만 용서하시라고 간청했다. 내가 스님을 뵙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비로소 “푸우~”하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거참, 허사가 아닐세” 하는 말씀과 함께 평소 모습으로 돌아오셨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뒤로 아버지는 스님을 업신여기거나 부처님을 가볍게 보는 행동을 하지 않으셨고 내가 불도의 길을 걷는 것도 대견스럽게 여기셨다.

내가 이렇게 할머니 명덕 스님의 기행을 소개하는 것은 스님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함도 아니고 신통력을 추종하거나 찬탄하려함도 아니다. 이제 종교의 기적현상이나 신통력을 바라고 사는 시대는 지났다.   하지만 세상에는 인간의 사고와 경험으로는 알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들이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다. 인간의 마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불교에서 마음은 사고하고 기억하고 감정을 주관하는 일만이 아니라 미래를 예견하고 신통을 일으키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이른바 아뢰야식연기설이 그것이다. 인간 마음을 무의식의 전개로만 파악하려는 심리학과 수많은 뉴런들의 활동으로만 한정 지으려는 뇌과학의 범주를 뛰어넘는다. 이런 측면에서 부처님의 신통이나 수행에 의한 능력들을 부정할 것만은 아니다. 이를 인정하되 무작정 좇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508호 / 2019년 10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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