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공성의 용례와 그 함의 ①
85. 공성의 용례와 그 함의 ①
  • 김재권 교수
  • 승인 2019.10.14 17:13
  • 호수 15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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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경’의 핵심은 공사상과 육바라밀, 보살사상

‘공’의 가장 기본적 의미는
무언가 결여된 상태 뜻해
소품은 공과 자성 별개 개념
대품에 와서 공과 자성 결합

대승불교의 근본적인 경전은 ‘반야경’이다. 이러한 ‘반야경’의 핵심적인 사상은 공사상과 육바라밀, 보살사상 등으로 볼 수 있다. ‘법화경’ ‘화엄경’ ‘무량수경’ 등 여러 대승경전들도 ‘반야경’의 공사상과 육바라밀, 보살사상 등을 근거로 이에 여러 요소들을 부가하여 매우 독특한 형태로 발전시킨 것으로 이해된다. 

‘반야경’은 인도에서 나타난 초기대승경전의 하나로, 핵심내용은 ‘일체의 존재는 공(空, śūnya)이고, 무(無, abhāva)이며 무자성(無自性, niḥsvabhāva)이다’라고 설한다. ‘반야경’의 텍스트 성립과정은 최초기의 소품계 ‘반야경’에서 내용이 확대되어 ‘만팔천송반야경’이나 ‘이만오천송반야경’ 등을 비롯한 대품계 ‘반야경’이 성립된 것으로 본다. 

‘반야경’에 나타난 공성의 용례를 보면 내용적으로 변천하는 양상이 보이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소품계의 범본 ‘8천송반야경’은 그 원형인 지루가참(支婁迦讖, Lokakṣema, A.D.179) 역의 ‘소품반야경’이나 구마라집(鳩摩羅什, Kumārajīva, A.D.408) 역의 ‘소품반야바라밀경’ 등에는 보이지 않는 새로운 요소가 도입되어 정비된 흔적이 보인다. 사실 현존하는 범본의 ‘8천송반야경’은 10세기 시호(施護) 역의 ‘불모출생삼법장반야경(佛母出生三法藏般若經)’과 가장 잘 대응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반야경’에 나타난 ‘공(空, śūnya)’의 기본적인 의미란 ‘어떤 것에 무엇인가 결여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예컨대 ‘어떤 것(B)이 어느 곳(A)에 존재하지 않을 경우에, 그 곳(A)은 그것(B)을 결여하고 있다(yad yatra na bhavati. tat tena śūnyam.).’라고 표현한다. 이때 범어 ‘슌야(śūnya, 空)’는 제3격(具格, Ins.)을 지배한다. 이때 A와 B의 관계가 집과 항아리의 관계처럼 그 사실여부나 존재여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경우에는 공의 의미가 쉽게 파악된다. 하지만 A가 색(色, rūpa)이고, B가 색의 자성(色의 自性, rūpasvabhāva)으로 대체될 경우에는 A와 B의 두 관계를 파악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진다.

기본적으로 ‘공(空)’이란 ‘결여되어 있다’ ‘비어있다’는 형용사로서 다음과 같이 ①상대적인 공과 ②절대적인 공의 이해방식, 즉 2가지 방식으로 이해가능하다. 예컨대 교실에 학생 A가 없을 경우, 언어용법상 ‘학생 A라는 점에서 교실은 공이다’고 표현한다. 이 경우 교실자체는 공이 아니라 실재한다. 이러한 이해방식을 ①상대적인 공의 입장으로 볼 수 있다. 반면에 교실마저도 없다고 이해하는 방식은 ②절대적인 공의 입장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소품계의 ‘반야경’에서는 ‘어떤 것이 결여되어 있는가?’ 라는 기술은 보이지 않고, 문맥상 단지 모든 존재가 공이라고만 설하고 있는 점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소품계통 ‘반야경’의 ‘自性(자성, svabhāva)’에 관해 살펴보면 ‘자성적으로 공하다(svabhāvena śūnya)’는 표현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자성’에 관한 설명과 ‘공’에 관한 설명이 개별적으로 보일 뿐이고, 자성과 공이 결합되어 자성의 개념에 의해 ‘공’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한편 대품계통의 ‘반야경’에서는 ‘자성’과 ‘공’이 결합된 형태로서 자성의 개념에 의해 공이나 공성이 설명된다. 교리적으로 더욱 진전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반야경’의 원형인 소품계통의 ‘반야경’에서 ‘만팔천송’ ‘이만오천송’ 등으로 변천함에 따라 단순히 ‘공(空)’은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이 ‘자성(自性)적으로 무(無)’인 점을 시사한다. 하지만 ‘반야경’의 공사상을 계승하고 있는 용수를 비롯한 공이나 공성에 대한 이해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중관학파의 유식학파의 공성에 관한 이해방식의 그 차이는 공성의 의미가 일의적이지 않음을 시사한다.

김재권 능인대학원대교수 marineco43@hanmail.net

 

[1508호 / 2019년 10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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