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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오캄의 레이저-상

자연이 아름다운 건 기본 법칙으로 기술할 수 있기 때문

가급적 간단한 이론 택하라는 것
과학자들 완벽한 표현 찾으려 노력
과학이론은 예술…과학자는 예술가
불교 분류법 발달은 과학정신 발로

오캄의 레이저(Ockham’s razor)란 같은 값이면 더 간단한 이론을 택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천동설보다는 지동설을 택하라는 것이다. 태양계 내행성들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데 있어서 천동설이 (초창기의) 지동설만큼 정확할지라도, 주전원(周轉圓) 등 복잡한 개념을 동원하지 않는 간명한 지동설을 택하라는 것이다. 놀랍게도 천문학자들은 지동설이 나오고도 한동안은 천동설에 입각한 옛 방식대로 행성의 움직임을 계산했다. 아직 천문학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해, 그게 더 정확했기 때문이다. (거짓말이 아니다. 역사적인 사실이다!) 주전원이란 행성이 그냥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빙글빙글 회전하며 돈다는 것이다. 원형 트랙을 도는 자전거를 상상하면 된다. 자전거도 돌지만 바퀴도 돈다. 자전거가 트랙을 한 바퀴 돌 때 바퀴는 수백 번을 돈다.

수학자들은 문제를 풀 때 필요 없는 조건은 쳐낸다. 꼭 필요한 조건만을 추려낸다. 원하는 결과를 내는 것이 100가지 조건이 아니라 사실은 5가지만 필요한 것이 아닌지 조사한다. 그리하면 다른 상황에 응용하는 것이 쉬워진다. 즉, 100가지 조건이 아니라 5가지 조건만 갖추면 동일한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사회·경제·심리와 인간들 사이에 일어나는 현상도 마찬가지이다. 그 현상을 일으키는 조건들만 추려낼 때 우리는 사회·경제·심리와 인간들 사이 일을 합리적으로 간결하게 설명하고 응용할 수 있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몇 가지 기본적인 법칙의 조합으로 기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최대한 불필요한 것을 떨어내고 더도 덜도 할 필요 없는 완벽한 형태의 표현을 찾아내고자 한다. 이 점에서 자연과학 이론은 예술품이고, 자연과학자들은 예술가들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5개의 공리로 단순화되지만, 그로부터 수백만 개의 아름다운 진리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치장하고 나타난다. 다른 수학 분야들도 그렇다. (각 분야들의) 공리들은 수도 적고 단순하다. 진리의 바탕은 단순하다. 그래서 아둔한 인간도 진리를 탐구할 수 있는 것이다. 진리는 점층적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계단을 올라가듯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점점 더 수준 높은 진리를 향해.

뉴턴의 운동법칙은 3개로 이루어져 있다. 케플러의 행성 운동법칙은 3개로 이루어져 있다. 이로부터 모든 행성의 모든 움직임을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다. 겉보기에 천변만화하는 행성의 움직임을 깔끔하게 설명하고 기술할 수 있다. 행성의 움직임이 기괴하게 보이는 것은, 예를 들어 전진하다 갑자기 후퇴하는 듯 보이는 역행현상은, 행성의 공전이 지구의 공전과 간섭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지구가 행성과 가까워지면 지구보다 공전 속도가 느린 행성은 지구인의 눈에는 전진하다 방향을 바꾸어 후진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한마디로 삼차원 움직임이 망막이라는 이차원 표면에 표현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표현은 그게 어떤 방식의 표현이든지, 설사 감정이 배제된 수식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왜곡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표현은 현상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예를 들자면 사랑에 대한 표현은 사랑이 아니다. (일체의 표현을 초월한 사랑이 있을까? 설사 있다고 해도 인간은 그걸 느낄 수 있을까?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길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일까?) 행성의 움직임이 기괴한 것은 그것이 인간의 운명을 미리 알려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행성 운동의 법칙과 사영기하학이 만들어내는 현상일 뿐이다. 인류가 처음부터 이 사실을 알았다면, 점성술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경우에 인간의 문화는 망상에 기초하고 있다. 종교도 그중 하나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름답지 않은 것도 아니다. 폐병에 걸린 창백한 미인도 심장병에 걸려 얼굴을 찡그리는 여인도 아름답다. 병을 같이하고 같이 죽을 정도로, 미구(未久)에 닥칠 사별의 아픔을 무릅쓰고 사랑할 정도로 아름답다. 음식 치고 독성이 없는 것이 있는가? 독이 덜하면 먹고, 심하면 독을 빼고 먹는다. 그래서 싸리버섯도 복어도 먹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독은 정체를 숨기고 다가온다. 그리고 사람들은 거부할 수 없는 불길한 매력에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시와 글을 쓰며 괴로워한다.

불교에 분류가 발달한 것은 과학정신의 발로이다. 3법인·3독심·4성제·4무량심·5온·6식·6바라밀·7각지·8정도·9식·9차제정·10지·10무기·12처·18계·37조도품·52위·75법·108번뇌 등등등. 무수하다. 그중 압권은 무상·고·무아 삼법인과 고집멸도 사성제다. 얼마나 간결한 진리인가.

누구나 살 만큼 살면 그게 진리라는 걸 알게 된다. 맹목적으로 믿어서가 아니라 자기 삶에서 경험하고 실천함으로써. “내 말이라고 무조건 따르지 말고 행해보고 맞으면 따르라.” 인류최초의 마음 과학자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1508호 / 2019년 10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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