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알음알이(지해)와 지혜
38. 알음알이(지해)와 지혜
  • 현진 스님
  • 승인 2019.10.15 09:59
  • 호수 15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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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알고 반응하느냐 따라 지해‧지혜로 구분

지해, 약삭빠르게 내는 지식
편협된 사고에 기반한 분별심
지혜는 지해의 상반된 개념
온전하고 완전한 지식 의미

안다[知]는 것은 어떤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며, 그렇게 인지된 것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반응하느냐에 따라 앎은 알음알이[知解]와 지혜(智慧)로 색깔이 입혀지게 된다.

알음알이란 국어사전에 ‘약삭빠른 수단’이라 정의되어 있다. 어떤 사실을 인지하고 그것에 대해 약삭빠르게 내는 지식이나 분별심 등을 말하는데, 물론 이타적인 것이기 보단 이기적인 것이며 보편적인 사고이기보단 다소 편협된 사고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이를 한문에서는 지해(知解)라고 하는데, 지견해회(知見解會)의 준말로서 지식이나 분석력을 가리킨다. 오온(五蘊)과 연기(緣起)에서의 식(識)이 곧 이 지해인 알음알이에 해당한다.

지해는 중국 원나라 때의 중봉명본(中奉明本) 선사의 게송에 ‘신광불매(神光不昧) 만고휘유(萬古徽猷) 입차문래(入此門來) 막존지해(莫存知解)’라 하였으니, ‘불성의 광명은 신령하여 어둡지 않으매 만고에 이르도록 오히려 장엄하네. 불법의 문안에 들어오려면 아는 체하는 알음알이[知解]를 두지 말지니라’라는 문장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지해의 상대어로 지혜(智慧)가 쓰인다. 지혜는 본디 지(智)와 혜(慧)의 합성어로서, 지는 분석력과 기획력이 뛰어난 상태를 가리키며 혜는 실행력이 뛰어난 상태를 가리킨다. 그래서 지혜로운 이라면 분석・기획력은 물론이요 그것을 실행하는 힘까지 겸비한 사람을 일컫는다. 그렇지만 지해의 상대어로서의 지혜는 약삭빠른 수단으로서의 지식이 아닌 온전하고도 완전한 내용의 지식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될 뿐이다.

산스끄리뜨어에선 하나의 동사어근에 20개의 동사전치사 가운데 일부를 첨부함으로써 다양한 의미의 여러 동사가 형성된다. 예를 들면 √jñā(알다)라는 동사어근에 saṁ­(함께)이 첨부되면 saṁjñā(산냐, 相)가 되고, pra­(확실히)가 첨부되면 prajñā(반야, 智慧)가 되며, vi­(잘 or 분리된)가 첨부되면 vijñā(잘 알다 or 잘 못 알다)가 되는 것 등이다. 동사전치사 20개는 기본의미와 더불어 부가된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그 활용성이 제법 유동적이므로 단어의 사용자나 문장에 따른 세밀한 의미의 분류가 가능해진다.

한역 ‘금강경’을 통해 잘 알려진 사상(四相)의 상(相)은 ‘saṁjñā’의 번역어이다. 여기서 함께(saṁ­)라는 것은 ‘과거의 기억과 함께’를 의미하므로, 무엇을 인지하여 알아차리는 데 있어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경험하여 기억하고 있는 과거의 특정 사실을 가져와 뒤섞어놓고 인식하는 것을 산냐(saṁjñā)라 한다. 산냐는 지해(知解)인 알음알이로 이해될 수도 있으나, ‘금강경’에서의 산냐는 그 상대어가 뚜렷하게 반야(prajñā)로 나타난 까닭에 산냐 혹은 상(相)으로 놓아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야(prajñā)의 동사전치사 ‘pra­’는 확실하다는 의미 외에 ‘눈앞에 두다’라는 부가적인 의미도 있는데, 그래서 ‘눈앞에 놓인 것을 보고 알듯이 확실하게 아는 것’을 반야라 하며 달리 지혜(智慧)라고 일컫는다.

고대의 화려한 정신문화를 일구었던 인도는 그들의 많은 언어 가운데 특히 산스끄리뜨어를 통해 여러 분야에서 언어를 통한 생각의 세분과 그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시도해오고 있는데, 그 중심에는 동사전치사 20개의 역할이 수훈갑인 셈이다.

비록 한문으로도 善行, 惡行, 恣行, 蠻行, 流行, 遊行이나 認知, 感知, 明知, 析知 등으로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여 하나의 단어군처럼 표현할 수는 있으나 이는 단어 대 단어의 결합인 복합어일 뿐이지, 산스끄리뜨어처럼 하나의 동사어근에 부사적인 전치사가 번갈아 첨부되어 유사한 의미의 다양한 동사군을 형성하는 형태는 아니다. 산스끄리뜨의 특질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장점을 취하는 데는 동일한 동사어근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세분된 동사군에서 동사전치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큰 도움이 된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508호 / 2019년 10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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