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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열한 행태의 인사 청문

대학 교단에 있을 때 일이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 투쟁의 열기가 아직은 다 가시지 않은 시절, 학생들에게 잘못보이면 교수도 곤욕을 치르는 시절이었다. 강의에 들어가면서 지나치던 게시판에 특이한 대자보가 붙어 있어 읽어보게 되었다. 

“민족**(대학교 이름)는 얼마나 썩었는가?”하는 구호로 시작된 대자보였다. 내용인즉 교직원 하나가 요식업소 주인여자와 좀 친분이 있었는데, 그 집 아이에게 대학과 관계된 특혜를 준다고 돈을 받아놓고는 전혀 모르쇠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피해를 당했다는 여자 분이 총학생회에 찾아와 하소연을 했고, 거기에 격분한 총학생회에서 앞에 말한 제목으로 대자보를 붙이면서 일의 전말을 알린 것이었다. 

그 내용에는 교직원 이름까지도 그대로 명시하고 있었다. 그 대자보를 보는 순간 화가 나기 시작하여, 강의를 시작하려 마이크를 들고는 그대로 퍼부어 버렸다. “민족**는 얼마나 썩었니?” 영문을 모르는 학생들은 어리둥절한 반응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총학생회에서 그런 대자보 붙이는 만큼 썩었다고, 총학생회에 가서 전해라! 무슨 인민재판이냐. 한쪽 말을 듣고 사람 이름까지 적시하면서 그 따위 대자보를 붙이느냐!”하면서 화난 이유와 심정을 학생들에게 토로하였다. 

그랬더니 학생 하나가 손을 번쩍 들고는 질문을 하였다. “그게 왜 나쁩니까? 우리 주변부터 정의를 실현해야 할 것 아닙니까?”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더 화가 치밀어 “그래! 말 잘했다. 그게 정의실현이냐? 그건 정의실현이 아니야 이 친구야! 그런 건 삼류 주간지의 행태라고 하는 것이야. 자네 앞으로 정의실현을 위해 이런 고까운 소리하는 내 뒤도 은밀히 캐보지. 그리고 성 교수 비리를 대자보로 한번 붙어보지! 그런 식으로 정의실현이 될 것이면 벌써 좋은 나라 되고도 남았다!”하고 계속 퍼붓다보니 강의 시간을 엄청 잡아먹어버렸던 기억이 있다.

조국씨까지 이르는(꼭 조국씨의 경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여러 번의 인사 청문과 관계된 파동을 보면서 이 기억이 여러 번 떠올랐다. 우리가 하는 행태가 앞에서 말한 삼류주간지의 행태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곤 했던 것이다. 한사람을 탈탈 털어대는 행태, 그 주변사람까지 참으로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주고, 모욕을 주는 행태, 이것이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일까?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어떤 직책에 앉을 만한 역량이 있는가에 대한 검증, 그리고 치명적인 도덕적 하자가 있는가를 밝히는 검증, 그 적절한 선을 지키지 않으면 이 과정은 심각한 인권침해가 되고, 아무도 어떤 자리에 설 수 없게 만드는 저열한 행태가 되는 것이다. 언론들은 이러한 행태에 이미 익숙해진 정도가 아니라 그런 행태들을 주도하고 있고, 국민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한 저열한 행태에 장단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대학’에 “자기 몸을 닦은 뒤에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고, 집안을 가지런하게 한 뒤에 나라를 다스리며, 나라를 다스린 뒤에 천하를 평화롭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의 출전이다. 당연하게 쓰이는 이 말도 엄격하게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사람을 옴치고 뛰지도 못하게 만드는 족쇄가 된다. 자기 몸을 누가 온전하게 닦았다고 할 수 있는가? 자기 집안을 누가 완전히 가지런하게 했다고 할 수 있는가? 사회적으로 활동을 하는 사람들 하나하나 잡고, “당신 집안을 완전히 가지런하게 했어? 그것도 못한 사람이 뭐 밖에 나와 설치는 거야!”하고 따지기 시작하면 누가 과연 그 올가미를 벗어날 수 있을까?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 위에 어떤 사람의 자격을 밝히는 방법과 과정이 올바르게 되지 않아서는 안 된다. 그저 밝히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결과만을 내세우며, 거기다 ‘아니면 말고’하는 식의 무책임한 폭로까지 용인하게 되면?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지켜야 할 근본을 부정하는 우환이 그 속에 자라고 있는 있다는 걱정을 금할 수 없다.

성태용 건국대 명예교수 tysung@hanmail.net

 

[1509호 / 2019년 10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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