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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삶을 살다

기자명 금해 스님

고통스런 기억 마음의 병 키워
지나간 과거는 경험·교훈일 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 가야

연화보살님은 결혼한 지 30년이 지난 지금, 가부장적인 남편과 이혼하려고 집을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다 자란 뒤에야 겨우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평생 동안 혼자 외출한 적이 없고, 친구도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법을 잊었고, 감정을 표현할 줄도 모릅니다. 이혼 조정을 위해 남편과 만날 때마다 두렵습니다. 말을 잘하는 남편은 당당하고, 보살님은 자신의 고통을 설명할 줄 몰라 쩔쩔맵니다. 남편은 ‘앞으로 잘 하겠다’고 애원하고 울기도 하며 이혼에 합의해 주지 않습니다. 주변에서는 다들 그렇게 산다며 화해하라고도 권합니다. 

혼자 남는 것이 두려운 보살님은 이 순간마다 혼란스럽습니다. 30년 동안 변하지 않았던 남편이 그의 말대로 변하는 ‘불가능한 일'이 생긴다면, 다시 같이 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결국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우리 절에 온 것은 이렇게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기도와 공부를 시작하고 겨우 안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혼의 결과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현재의 자신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재판을 받기 위해 다녀오면 겨우 갖춘 안정감은 다시 흔들립니다. 과거의 고통이 더욱 강하게 되살아납니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삶을 삽니다. 중생의 삶은 탐진치(貪瞋癡)에 의해 일어나는 갈등의 연속입니다. 그럼에도 고통의 근원인 탐진치를 제거하기보다는 현상에만 집착합니다. 가족이나 친구, 직장에서 일어나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평생 동안 되풀이하며 마음의 병을 키워나갑니다. 먹고 자고 움직이는 단조로운 일상이 지옥으로 변합니다.

불교는 항상 현재의 나를 보고, 알아차리는 연습을 합니다. 지나간 과거는 우리를 성장시키는 경험이며 배움터이기에 교훈으로 삼고 버립니다. 미래는 오늘을 바탕으로 변하는 것이기에 아예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른 삶의 방식을 정했으면, 그대로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옛날 어느 황제가 신하와 함께 왕국의 바닷가 항구 도시로 나갔습니다. 왕은 신하에게 물었다.

“몇 척의 배가 들어오고, 몇 척의 배가 나가고 있는가?”

신하가 대답했습니다.

“폐하, 세 척의 배가 들어오고, 세 척의 배가 나가고 있습니다.”

황제가 놀라서 되물었습니다.

“저렇게 많은 배가 있는데 어찌 세 척뿐이라고 하는가?”
“저는 세 척의 배만 보입니다. 하나는 돈, 하나는 섹스, 하나는 권력의 배입니다. 인간은 이 세 척의 욕망의 배를 타고 삶 전체를 살아갈 뿐입니다.”

불교에서 이 세 척의 배는 탐진치입니다. 현재를 사는 사람은 세 척의 배에서 떠난 사람입니다. 그는 풍랑을 겪어도 풍랑일 뿐, 자신의 마음을 병들게 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평화롭고 자유롭습니다. 그래서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나 세상의 일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항해를 해 나갑니다. 실패를 통해 더 강하고 현명하게 될 것이며, 성공을 통해 더욱 겸손하고 하심하게 될 겁니다.
 

금해 스님

연화보살님이나 우리들 모두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현재 상황에서도 불교 공부를 절대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육체가 스러지는 노인이 되어서도 마음은 여전히 성장할 것입니다. 

금해 스님 서울 관음선원 주지 okbuddha@daum.net

 

[1509호 / 2019년 10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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