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7. 여성불자 지적에 말문 막힌 사연

기자명 이제열

“목숨 구걸하는 기도를 하라니요”

큰 혈종 있어도 절하던 불자
완쾌 위한 기도하라고 하자
“목숨 놓는 기도라야” 경책

일전에 한 여성불자의 섬뜩한 천도재 이야기를 소개했었다. 그는 내가 40년이 넘도록 불교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불자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불자님이 불교를 믿으면서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때 그는 “원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다만 죽기 전에 내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대답했다.

이후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충실했고 확고한 신심과 함께 바른 견해를 지키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는 건강에 이상이 생겼는지 얼굴빛이 초췌했고 행동도 활발치 못했다. 나와 회원들은 그의 건강상태가 염려돼 혹시 큰 병이라도 걸렸을지 모르니 병원에 가 검진을 받아보라고 여러 차례 권유했다. 그는 결국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고 얼마 후 병원에 갔다.
며칠 뒤 나는 검진결과가 나온다는 날짜에 맞춰 전화를 걸었다. 검진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걱정이 돼서였다. 결과는 우리가 우려했던 것처럼 매우 좋지 않았다. 간에 종양이 4개가 발견됐는데 크기가 1개는 야구공만하고 2개는 탁구공만하다고 했다. 의사 얘기로는 조직검사를 해보아야 정확한 결과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몹시 걱정스러워 “큰일”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그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인데 무슨 큰일이냐”며 도리어 걱정하는 나를 보고 우습다는 듯 큰소리로 웃었다. 그러면서 시간이 촉박할지도 모를 일이니 주변정리도 정리지만 공부에 더욱 매진해야 하니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 뒤로 만난 그의 행동은 자신의 말과 똑같았다. 자신의 몸에 대한 우려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한결같이 불교공부와 수행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천만다행인 것은 조직검사 결과 악성종양은 아니고 혈종이라고 해서 피가 모인 혹 주머니였다. 담당 의사는 혈종이 더 커질 수 있고 더 많이 생길 수 있지만 간잎과 간잎 사이에 자리하고 있어 수술이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배에 충격을 주는 일이나 심한 운동은 극히 삼가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잘못해서 혹이 터지면 간이 굳어 생명을 잃게 된다는 것이었다. 상태가 그러다보니 나도 그에게 늘 배를 조심해서 다루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공부 모임을 인솔해 전북에 있는 마이산 탑사로 함께 성지순례를 가게 됐다. 모두들 법당에 들어가 참배하고 각자의 시간을 보내게 됐다. 회원 불자들은 모처럼 명찰을 찾았기에 법당에서 나오지 않고 열심히 기도들을 했다. 그도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냥 앉아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염주를 세면서 부지런히 절을 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심 걱정이 됐다. 몸도 시원치 않고 뱃속에 큰 혹들이 있어 터지면 어쩌나 싶어 무척 걱정이 됐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보살님 절을 너무 심하게 하지 마세요. 절을 그렇게 많이 하다가 혹에 이상이 생기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그러자 그는 절을 하다말고 내개 이렇게 충고했다. “아니 법을 설하시는 법사님이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요? 절하다 죽으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혹이 터져 죽을까봐 절하지 말라는 말씀은 법사님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나는 머쓱해져서 다시 말했다. “그럼 부처님께 그 물혹이나 떼어달라고 기도하세요.” 그러자 이번에는 이렇게 말했다. “법사님으로서 불자에게 목숨 구걸하는 기도를 하라니 제발 생각 좀 하고 말씀하세요. 평소 법문하고는 거리가 머네요. 저는 부처님한테 목숨을 놓는 가르침을 받았지 목숨을 붙드는 가르침을 받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그 불자로부터 내가 방망이 한 대를 크게 맞은 셈이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불자님들은 어떤 마음으로 기도하고 불법을 공부하는가? 글로써나마 그 불자에게 과거 일들에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509호 / 2019년 10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