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공성의 용례와 그 함의 ②
86. 공성의 용례와 그 함의 ②
  • 김재권 교수
  • 승인 2019.10.23 10:36
  • 호수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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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을 잘못 이해하면 ‘허무주의’나 ‘악취공’에 떨어져

반야경 ‘소품계’에선 공을
부정적인 관점에서 기술
대품계는 자성과 관련해
본성적으로 공임을 표방

‘공성(空性, śūnyatā)’이란 ‘결여되어 있다’ 혹은 ‘비어있다’라는 형용사 ‘공(空, śūnya)’의 여성명사의 형태이다. 어원적으로 ‘공(空, śūnya)’은 ‘부풀다(to swell)’ 혹은 ‘증가하다(to increase)’는 의미를 가진 산트크리트의 동사어근 ‘스비(√śvi)’ 혹은 '수(√śū)'에서 파생된 형용사이다. 이러한 ‘공’은 인도 베다문헌에서는 ‘공허한’이나 ‘텅빈’ 등의 의미로, 인도의학서에서는 병적으로 ‘부풀어 오른’ 상태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쓰이기도 했다. 대체로 여성명사 ‘공성’과 형용사 ‘공’은 거의 동일한 의미로 혼용되어 쓰인다. 

대승불교에서 공의 개념이나 그 이해방식은 설일체유부가 주장하는 본체론적 사고방식인 실체적인 본질, 즉 모든 존재의 자성(自性, svabhāva)을 부정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하지만 ‘반야경’에서 ‘모든 존재는 자성을 가지진 않는다(一切法無自性)’라는 전형적인 표현에서 확인되듯이, 때로 나와 세계 등의 모든 존재의 실체성을 부정하는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쓰이기도 한다. 일상적으로 공을 잘못 이해하면 ‘허무주의’나 ‘악취공(惡取空)’에 떨어질 수 있다고 본다. 

초기경전에서도 공이나 공성에 관한 표현이 확인된다. 특히 ‘중아함’이나 ‘맛지마니카야’의 ‘소공경’과 ‘대공경’에서 붓다가 명상수행과 관련하여 공관(空觀)이나 공의 개념을 들어 설명하는 기술이 있다. 이 가운데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은 ‘소공경’이다. 

‘소공경’에서 붓다는 아난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아난다여, 이전에도 지금도 나는 자주 공에 든다. 아난다여, 이 녹모강당에는 코끼리들, 소들, 말들, 암말들이 공하고, 금이나 은도 공하고, 여자나 남자들의 모임도 공하다. 그러나 단지 공하지 않은 것이 있다. 즉 비구들의 모임에 대해서는 공하지 않다. (중략) 아난다여, 이와 같이 ‘어느 곳에 어떤 것이 없을 때, 전자는 후자의 관점에서는 공이다’라고 바르게 관찰한다. 또한 ‘그곳에 남은 것이 존재한다면, 현재 존재하는 것은 여기에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아난다여, 이것이 여실하게 전도되지 않은 공성에 들어가는 것이다.”

‘소공경’에서 코끼리 등의 관점에서는 공이지만 비구들 모임이라는 관점에서는 남아있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점에서 공이 상대적인 공의 개념으로 쓰이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이해방식은 유가행파에 계승되고 있는데, 그들은 공성의 이해방식에 실천적인 측면에서 자신의 독특한 진리관을 반영하여 교리적으로 새롭게 정립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유식학파와 중관학파의 공성의 이해방식의 차이는 무엇인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편 ‘반야경’의 공에 관한 기술을 살펴보면, 소품계와 대품계가 공과 자성의 개념을 기준으로 설명방식이 다소 다른 점이 확인된다. 예컨대 소품계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즉 “만약 색은 공이다(rūpaṃ śūnyam)고 실천한다면, 보살은 상(相, nimitta)을 실천하는 것이다. (중략)만약 색은 공이다고 실천하지 않는다(na rūpaṃ śūnyam iti carati)면, 그와 같이 실천하고 있는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실천하는 것이다.” 대품계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즉 “A는 그것 자체로서 벗어나있다(svabhāvena vivikta). 그것 자체로서 공이다(svabhāvena śūnya). 그러한 것은 성문들이나 연각들이나 제불세존들이 행한 것은 아니다. 실로 자성이란 전도되지 않은 본성이다. 본성에게 본성은 그것 자체로서 공성이다. 공성은 지식이 행한 것도 아니고, 보는 것이 행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그의 본성이다.” 결국 소품계에서는 공이 공무소득의 관점에서 부정적으로 기술되고, 대품계에서는 자성과 관련되어 본성적으로 공임을 표방하고 있는 점에서  표현상의 차이가 확인된다.

김재권 능인대학원대교수 marineco43@hanmail.net

 

[1509호 / 2019년 10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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