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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비구니 일엽 스님

기자명 이병두

1933년 최고 인텔리여성 스님이 되다

이화여전 졸업 후 일본유학
귀국 후 신여성운동 이끌어
진정한 자유 위해 삭발염의
견성암서 수행·교학에 몰두

진정한 자유를 위해 삭발염의한 뒤 수덕사 견성암에서 수행과 교학에 전념했던 일엽 스님.
진정한 자유를 위해 삭발염의한 뒤 수덕사 견성암에서 수행과 교학에 전념했던 일엽 스님.

“인적 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 속세에 두고 온 님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적에 아~ 아~ 수덕사의 쇠북이 운다. …”

1966년 세상에 나온 이 노래 ‘수덕사의 여승’은 숱한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그때까지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송춘희를 ‘10대 가수’ 반열에 올려주었다. 그러나 이 노래의 영향력은 전혀 엉뚱한 이미지를 수덕사에 남겨 불교계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수덕사는 비구니 스님들만 계신 곳 아닌가요?”하고 묻기도 한다. 아마 우리 국민들 중 수덕사가 비구니 사찰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이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수덕사가 이런 이미지를 갖게 된 배경에는 이 노래뿐 아니라 일엽 스님(본명 김원주·1896∼1971)이 있었다. ‘스님’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이화여전을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한 인텔리 여성이었다. 일본에 머물던 시절인 1922년 9월 은행가의 아들인 오다 세이죠와 사이에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을 남겨둔 채 귀국해서는 여성들을 위한 잡지 ‘신여자’를 창간했다. 또 문화계를 주름잡던 나혜석·윤심덕과 교류하며 자유연애론과 신(新)정조론 등을 펼치며 여성해방운동을 이끌었다. 그때 태어난 아들이 출가해 그림을 그리는 화승으로 살다가 2014년 12월에 세상을 떠나면서 다시 한 번 세상 사람들에게 일엽 스님 이야기가 알려지기도 하였다.

이렇게 여성해방과 신문화 운동을 선도하던 인텔리 여성이 1933년 모든 것을 버리고 수덕사 만공 스님 문하로 출가해 비구니가 되었다. 당시 이화여전을 나와 일본 유학을 다녀온 여성이 몇 명이나 되었을까 상상해보면, 이 사건이 불교계와 문화계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 변혁만으로는 남녀평등을 이룰 수 없다. 여성이 자아를 찾아야 한다. 안팎의 변혁이 함께 일어날 때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스님이 남긴 말이다. ‘출가의 변’이라는 주를 붙이지는 않았지만, 인텔리 여성 예술가 김원주가 일엽으로 변신하게 된 목적이 ‘진정한 자유, 해탈’에 있음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출가 이전에도 문화계와 여성계를 선도하며 자신의만 영역을 구축했지만, 출가 이후 스님은 수덕사 견성암을 중심으로 한국 비구니계를 반석 위에 올려놓고 교학에서도 독특한 입지를 구축했다. 세상 사람들은 출가 이전의 연애 사건이나 일본인과의 동거‧출산 등에만 관심을 가졌지만, 스님은 바깥세상의 이야기에 귀를 닫은 채 참선과 교학 연마, 후학 양성에 몰두하면서 사진에서처럼 틈틈이 서도(書道)에 몰입할 뿐이었다.

다행히 지난 2017년 재미 철학자 박진영이 스님의 삶을 본격 조명한 평전 ‘여성과 불교철학: 김일엽 선사를 통해’를 출간해 스님과 수덕사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오해를 풀어주었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509호 / 2019년 10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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