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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꽃들을 위한 시가(詩歌) ① - 진광 스님

기자명 진광 스님

“피고 진 꽃에 삶·사랑·수행이 담겨 있습니다” 

목련화하면 불현듯 어머니 떠올라
봄 되면 산목련으로 환생하시는듯
양희은 수술 앞서 ‘하얀목련’ 지어
​​​​​​​
연꽃은 혼생, 윤회, 극락세계 상징
연꽃 볼 때면 원담 노스님과 은사
먼저 간 누이 생각하며 부활 염원  

그림=허재경
그림=허재경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 희고 순결한 그대 모습 봄에 온 가인과 같고 / 추운 겨울 헤치고 온 봄 길잡이 목련화는 / 새 시대의 선구자요 배달의 얼이로다”

가곡 ‘목련화’를 불러봅니다. 불현듯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어머님은 강릉 함씨로 이름이 옥연(玉蓮)이셨습니다. 어머님을 생각하면 한 송이 목련꽃이 떠오릅니다. 그런 까닭에 지난해 돌아가시고 난 후에도 봄이면 산목련으로 다시 살아오시리라 믿습니다. 내년 봄 산목련이 필적에는 어머님을 만나러 갈 겁니다.

다른 이는 조병화의 “내 어릴 적 을남이는 / 하얀 블라우스만 입으면 / 그대로 목련꽃이었어라”라는 시구가 생각나는 소녀입니다. 어느 도회지에서 이사 온 유난히 얼굴이 희고 흰 블라우스가 잘 어울리던 소녀를 보면 마치 한 떨기 목련꽃과 같았습니다.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나 알퐁스 도데의 ‘별’처럼, 제 가슴 속에는 언제나 목련꽃 닮은 어머니와 그 소녀가 있었습니다. 

대학시절에는 ‘겨울 나그네’라는 영화에 매료되어 박목월 시인의 ‘사월의 노래’를 마냥 불렀었지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 빛나는 꿈의 계절아 /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그리고 그때부터 배우 ‘이미숙’을 무작정 좋아하게 되었지요.

그런 까닭에 사월의 봄이 오면 애련(愛戀)이라는 불치의 병을 앓곤 했습니다. 에피탑(Epitaph)과 비비(BB), 그리고 소하(素荷)와의 만남과 인연들은 모두가 소중하고 아름다운 의미로 영원할 겁니다. 그들은 목련 혹은 연꽃처럼 제 가슴속에 잊을 수 없는 영혼과 의미로 자리하겠지요. 그 모든 인연과 추억의 내 삶에 감사하고 싶습니다. 칠레 여가수 비올레타 빠라의 ‘내 삶에 감사한다(Gracias a la vida!)’는 노래처럼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습니다.

목련의 꽃말은 ‘이루지 못한 사랑’이랍니다. 사랑을 이룬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이루지 못한 사랑 또한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봄이 오기 위해서는 추운 겨울을 견뎌야 하고, 꽃이 피기 위해서는 고통과 아픔을 견뎌야 합니다. 어둠을 이겨낸 자만이 새벽의 찬란한 태양을 맞이할 수가 있습니다. 최소한 봄을 기다리고 목련꽃이 피기를 고대하면서 옛 추억을 되새기며 무언가 느낄 수가 있으니까요. 그런 순간들의 합(合)이 바로 인생이 아닐런지요? 그래서 인생은 더 없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문득 양희은의 ‘하얀 목련’이란 노래를 자꾸만 흥얼거리게 됩니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 다시 생각나는 사람 / 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 / 하얀 눈이 내리던 어느 날 / 우리 따스한 기억들 / 언제까지 내 사랑이어라 내 사랑이어라” 

양희은은 큰수술을 앞두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창밖에 핀 목련꽃을 보며 이 노래를 지었다고 합니다. 그런 마음은 아닐지라도 한번쯤 목련꽃과 추억들을 소환함으로써 자신의 삶과 사랑에 대해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테지요.

모든 꽃이 다 그렇지만 활짝 핀 모습은 아름답지만 지는 모습은 처량하고 쓸쓸하기 마련입니다. 목련도 피기 전의 봉긋한 모습이나 활짝 핀 모습은 아름답지만 땅에 떨어진 모습은 흉하기 그지없습니다. 이에 대해 복효근 시인의 ‘목련 후기(後記)’라는 시에서는 “목련꽃 지는 모습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말라 /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 /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 그대를 향한 사랑의 끝이 / 피는 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가//…(중략)…//피딱지처럼 엉켜서 /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 낫지 않고 싶어라 / 이대로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라고 읊고 있습니다. 나도 시인의 마음과 다르지 않나니 꽃이 피건 지건 나름 다 의미가 있는 법입니다. 

2005년 이스라엘은 2000년 전 대추야자의 씨앗을 싹틔우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이 대추야자의 이름은 ‘므두셀라’로 명명되었는데 969년을 살았다는 성서에 나오는 인물에서 따온 것이랍니다. 

한편 한국에서는 함안 성산산성 발굴조사 중에 출토된 고려시대 연꽃의 씨를 2010년 ‘아라홍련(阿羅紅蓮)’이라는 이름으로 싹틔웠다고 합니다. 불교에서 연꽃은 부처님께서 앉은 자리이자 혼생과 윤회, 그리고 극락세계를 상징합니다. 연꽃에는 ‘불멸(不滅)’과 ‘부활(復活)'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까닭에 저는 목련과 더불어 연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랑해마지 않습니다. 

어려서 일찍 세상을 떠난 얼굴도 기억할 수가 없는 두 누이와 지난해 돌아가신 어머님, 그리고 원담 노스님과 법장 은사 스님에게서, 혹은 진관, 흥륜, 수연 노스님과 명선, 태연 스님에게서 목련과 연꽃의 의미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분들 삶과 수행의 불멸과 부활을 간절히 염원하고 기원합니다.

지금은 가을이라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만발하고 산에는 만산홍엽의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조계사 앞마당에는 국화향이 가득하기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의 목련과 여름의 연꽃을 추억하고 의미를 되새기는 일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들 속에 내 지난날의 삶과 사랑과 수행이 오롯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그 꽃들 속에는 내 사랑하는 이와 함께한 날들의 추억과 깨달음의 향기가 함께 합니다. 거기서 나는 그들과 함께한 추억과 의미를 넘어 나 자신을 마주 대한 채, 진정한 나(眞我)를 찾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흠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며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습니까? 무릇 난 것은 죽게 마련이고 만나면 이별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의 꽃'에서 ‘영원‘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진광 스님 조계종 교육부장 vivachejk@hanmail.net

 

[1509호 / 2019년 10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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