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대혜선사의 발원
19. 대혜선사의 발원
  • 고명석
  • 승인 2019.10.23 11:33
  • 호수 150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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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에 머물던 선을 현실사회로 끌어내다

“부처님 혜명 잇겠다” 16세 출가
‘벽암록’ 저자 원오극근에게 인가
문자선이라며 스승 저술 불태워 
화두로 생사 넘는 간화선 체계화
간화선의 완성자로 일컬어지는 대혜선사가 머무르며 법을 펼쳤던 항주 경산사.
간화선의 완성자로 일컬어지는 대혜선사가 머무르며 법을 펼쳤던 항주 경산사.

조용한 곳보다 시끄러운 시장 바닥에서 공부하며 거기서 힘을 얻는 것이 진정한 선이라고 말하며, 선의 깨달음이라는 것도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성숙하는 것임을 강조한다면, 이는 오늘날에도 빛을 발하는 선의 정신이라 할 것이다. 물론 조용한 가운데서 명상을 통하여 자신을 관조하며 지혜를 통찰하는 것도 선의 훌륭한 역할임에는 틀림없지만 말이다.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 선사는 간화선 수행을 체계화시킨 인물이다. 간화선은 그로 인해 문자주의를 탈각하고 삶 속의 수행으로 역사의 전면에 부각된다. 특히 그는 당대의 지식인들과 교류하면서 행주좌와 일상 속에서 선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그들과 함께 현실 정치에 참여하면서 사회현실을 바꾸어 보고자 하였다. 선은 산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혜는 13세 때 친구들과 장난치다 던진 벼루가 훈장 모자에 맞는 바람에 배상하는 당혹스런 사건을 맞는다. 사건이 수습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세속의 책을 읽는 것이 어찌 출세간의 법을 궁구하는 것과 같겠는가”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어릴 적부터 출가를 동경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대혜는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16세 되던 해 출가를 감행하고 선 수행의 길로 들어선다. 그렇다면, 왜 대혜선사가 선의 길로 갔는가를 그의 발원을 통해서 들어보자.  

“오로지 모든 부처님 앞에서 큰 서원을 세우십시오. ‘제 마음이 견고하여 영원히 물러남이 없으며, 모든 부처님의 가피를 의지하여 선지식을 만나 한마디 말에 바로 거기서 생사(生死)를 여의고, 위없는 보리를 깨달아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서, 모든 부처님의 크나큰 은혜에 보답하기를 원하옵니다’라고.”(‘서장’의 ‘증시랑에 답함’)

여기서 대혜선사는 생사심을 끊기 위해 큰 서원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생사심이란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짐에 따라 번뇌에 붙들려 사는 것을 일컫는다. ‘나’를 내세워 분별하며 희로애락에 쌓여 분노하고 때론 기뻐하며 생멸하는 마음은 불안하고 불만 가득하며 괴롭다. 그래서 큰 어려움이나 죽음 같은 괴로움에 닥치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다. 이러한 생사심이 중생의 마음이라면, 생사심을 끊은 분별 조작을 떠난 마음인 평상심은 부처의 마음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추측컨대 생사심을 끊는 것이 그의 출가 동인임에는 틀림없겠다. 

대혜선사는 37세에 이르러 ‘벽암록’의 저자 원오극근(圓悟克勤, 1063~1135) 선사를 만나 선문답 속에 깨달음을 얻고 인가를 받는다. 그는 마음이 밝아진 후 큰 서원을 발했음을 언급한다.  

“나에겐 평소에 큰 서원이 있습니다. 차라리 이 몸이 일체중생을 대신하여 지옥의 고통을 받을지언정 끝까지 이 입으로 불법으로써 인정을 삼아 모든 사람의 눈을 멀게 하지는 않겠습니다.”(‘서장’의 ‘이참정에 답함’) 

여기서 ‘인정을 삼는다’는 의미는 사람들의 정에 이끌린다는 것이다. 정이란 사람들의 감정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사람들의 알음알이에 입각한 이익과 손해의 감정이다. 시비 분별하는 마음이다. 간화선은 이렇게 자기중심적으로 헤아리고 분별하는 그 마음을 화두로 잘라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화두는 내가 누군데 하며 ‘나’, ‘나’ 하는 그 나를 철저히 베어내는 날선 검과 같다. 

대혜선사는 스승의 ‘벽암록’을 모두 불태워버린다. 옛 조사가 남긴 행위나 문답은 고칙 공안(古則公安)으로 정립되는데, 이 고칙 공안을 게송으로 노래하는 형태를 송고문학(頌古文學)이라 한다. 당시의 귀족들이나 출가 사문은 이러한 문학적이고 주지주의적 가풍에서 노닐며 게송과 그 해석문을 외우고 익히기를 좋아했다. 그것은 어찌 보기에 남의 말을 외우고 받아쓰며 모방하는 앵무새 같은 삶이었다. 이러한 행위를 문자선이라 하는데, 문자에 치중한 나머지 말을 떠난 의미 이전의 삶의 실상에 대해 탐구가 부족했다. 대혜는 이러한 문자선을 죽은 언어라 해서 사구(死句)로 배격했다. 스승의 ‘벽암록’을 소각해 버린 이유다.  

간화선 수행은 화두를 들고 마음속으로 깊이 궁구해 들어가는 것이다. 화두란 조사들의 말이지만,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말이다. 그것은 언어로 해석되거나 의미화 될 수 없는 존재의 실상을 엿보기 위한 답할 수 없는 암호와 같다. 

사실 우리의 삶 그 자체, 그리고 세계는 의미화 될 수 없는 공백, 잉여, 뒤틀림을 담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사유는 세계와 그 존재의 본질에 대해 항상 빗나가고 미끄러진다. 아니 삶 자체의 생생한 숨소리는 언어와 생각으로 포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삶 자체가 화두다. 꽃 한 송이가 피는 것 자체가 화두다. 왜 피니? 도대체 너 누구니? 나는 무엇이니? 이것이 뭘까? 등등 풀릴 수 없는 근본적 의문이 마음에 서리게 되면 그것이 화두로 자리 잡는다. 그것을 선지식이 나에게 살아 있는 언어인 활구(活句)로 제시한다면, 그 화두는 삶의 언어로 종교성을 담아내면서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지배해 버린다.   

이러한 화두로 생사심을 다스린다. 상황이 자신의 뜻대로 잘 움직여나가는 것이 순경계요, 마음먹은 대로 상황이 전개되지 않는 것이 역경계다. 우리는 이러한 역순경계의 바람에 따라 기뻐하
고 침울해 한다. 역순경계에 부딪힐 때 이를 화두로 대치해 나가면 거기에 휘말리지 않는다. 경계를 돌파할 때 문은 열린다. 화두는 이해 타산적 판단과 분별을 끊어내기 때문이다.  

대혜는 금나라와 화친하자는 주화파에 대립하여 주전파에 가담하면서 주전파 사대부들과 더불어 귀양살이를 하며 16년간 옥고를 치른다. 하지만 그를 따르는 스님들이 2000여명을 헤아렸으며 그를 존경하는 사대부들 또한 140여명에 이를 정도였다. 그가 남긴 ‘대혜어록’ 중 ‘서장’은 40여명의 사대부들과 서신을 교환하면서 그들의 생사심을 끊어주는 역할뿐만 아니라 선을 통해 생활과 정치 현장에서도 힘을 얻는 방법을 일러준다. 그는 특히 깨달음을 의도를 가지고 고대하지 말라고 했다. 깨달음은 무아와 공이 철저해 질 때, 철저한 빈궁과 자기 결여 속에서 자신을 묶고 있는 아상과 환상의 껍질이 벗겨져 삶의 현장에서 터지고 자연스럽게 익는 것이다.   

삶의 실상, 그 존재 원리는 자기 몰락을 통해 돈오로 녹여내어 홀연히 밝아지고 드러난다 할지라도, 그래서 마음이 가벼워진다 할지라도, 우리들의 생활습관이나 일상적 삶의 장애는 점차적인 탁마의 과정을 거쳐 차츰차츰 벗겨져 나간다. 그래서 바쁜 일상의 삶이나 보살행 속에서 점점 몸 또한 가벼워지고 얽매임이 없으며, 마음이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기특한 상을 내지 않는다면, 바로 그것이야말로 공부의 효험이라고 대혜는 강조한다. 나 자신이 걸림 없이 인연 따라 물처럼 흐른다면, 바람소리를, 생명의 흐름을, 너의 눈물과 외로움을 있는 그대로 공감한다면, 경계에서 자유롭지 않겠는가. 죽음에 직면에서 죽음을 돌파하지 않겠는가.    

고명석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 kmss60@naver.com

 

[1509호 / 2019년 10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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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baha 2019-11-06 22:08:59
그것은 사실이고
전등의 비밀 이며
밀밀가지 입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모른다
는것은 사실을 입증하는
그것이요

절대긍정 입니다.
고맙고 고마운 일들
금생이 기연 입니다.

체험을 통해서
칠통을 깨부수어야
뚫고나오는법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쑥 들어가 잃어버린
흰소를 찿아 나오는

심봉사 눈을 뜸과
어찌 다르다 하겠습니까

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