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매화
43. 매화
  • 임연숙
  • 승인 2019.10.23 13:42
  • 호수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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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이겨낸 새 생명서 희망을 보다

송근영 작가 검은바탕 위 매화
세련되고 현대적 느낌의 작품
자연 관조함은 내면을 보는 것
간략·단순한 삶의 메시지 전달
송근영 作 ‘매화’, 한지에 한지콜라쥬·채색·금박, 45.5×62cm, 2019년.
송근영 作 ‘매화’, 한지에 한지콜라쥬·채색·금박, 45.5×62cm, 2019년.

전시장에서 만난 검은 바탕위에 그려진 작은 매화가 눈길을 잡는다. 검은 바탕과 흰 꽃과 흰 화병이 주는 느낌은 동양회화의 대표적인 소재이자 주제인 사군자 그림을 한결 세련되고 현대적인 느낌으로 느끼게 한다. 

사군자라 하면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인데 왜 이런 식물들이 최고 선의 경지라고 하는 군자에 비유될까 생각해 본다. 사무실에 공기정화에 좋다고 하는 여러 식물들이 있다. 화분들 속에 동양 난 화분이 한 둘 끼어 있는데, 몇 년을 같이 키우다 보니 난초의 고고한 성정이랄까, 특징이랄까 아무튼 마음을 움직이는 매력이 있다는 걸 알 것 같다. 

사실 일반 풀이랑 뭐가 다른지, 꽃이 장미나 튤립에 비해 더 아름다운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몇년 동안 잘 살아서 작은 새 잎이 올라오고 가끔 어렵사리 꽃을 피우는 걸 보니 참 신기하기도 하고 새삼 신통하기도 했다. 뿌리에서 하나하나 고고하게 올라오는 잎은 서로 부딪히지 않고 너무 무성하지도 않으며, 각각의 가야할 길을 가는 양 공간을 가르는 것을 보면 그 고고함에 의미를 부여 할 만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지난 봄 목포 남농기념관에 갈 일이 있었다. 미술관 왼쪽 오래된 매화나무를 봤다. 매화나무 가운데 매실이 열리는 않은 것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화분이 아닌 나무로 그렇게 아름답고 향기롭게 핀 매화는 처음 본 것 같다. 옛 그림 속 매화가 상상이 아닌 실제 그런 모습이었음을 새삼 느끼면서 은은함과 우아함과 여린 아름다움이 추운 겨울을 막 지나 가지의 견고함을 뚫고 나왔다는 것에 작은 감동을 느꼈다. 실내 화분에서 봄이 되면 꽃망울을 피우는 꽃도 신기하지만 나무로 된 매화는 감동이 더욱 생생했던 기억이 있다.

송근영 작가의 작은 그림에서 지난 봄 감동이 연상되었던 듯하다. 조선시대 퇴계 이황은 매화에 대한 사랑이 남달라, 70세 임종을 맞아 마지막 남긴 말이 “저 매화나무에 물을 주어라”였다고 한다. 단순히 예쁘다는 차원을 넘어 은은한 향기의 고고함, 날씨의 변화에 맞추어 꽃망울을 터트리는 신비함을 갖춘 식물이다. 이른 봄 매화화분에 핀 꽃은 긴 겨울을 무탈하게 지냈고, 새 생명이 돋는 봄을 전하는 새로운 희망이기도 하다.

희망이라고 하는 것이 저절로 우러나기도 하지만 작은 감동과 자극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하루 중 단 1분이라도 자기 자신을 돌아본 적이 있나 자문해 본다. 옛 사람들이 자연을 관조하는 것은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일인 것 같다. 살아가면서 접하는 여러 가지 감정을 어떻게 경영하는가 하는 문제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과정일 것이다. 현대는 갈등과 상황이 더 복잡하다. 옛 사람들의 삶을 대하는 태도나 방식이 때로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지침이 되기도 한다. 

작가는 사군자를 고루하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현대적으로 표현하고 메시지를 담고자 했다. ‘화중유시(畵中有詩) 시중유화(詩中有畵)’라는 말은 왕유의 그림을 보고 소동파가 평한 말이다. 시라는 것이 함축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거라면 그림은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림이나 시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하는 수단이다. 그림을 통해 혼란과 혼돈의 현대를 단순하고 간략화해 삶과 주변을 정돈하는 메시지를 얻는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예술교육 팀장 curator@sejongpac.or.kr

 

[1509호 / 2019년 10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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