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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중앙종회의장 범해 스님

“직근·망근이 큰 나무 만들듯, 신심·발심이 있어야 참 불자 됩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강조하지만
초심 잃지 않는다는 건 쉽지않아
일상서 자신 돌아보고 점검할 때
비로소 초심을 유지할 수 있어

오랫동안 큰 나무가 서 있는 건
직근·망근의 유기적 역할 때문
굳은 신심은 나무 직근과 같고
발심은 영양분 공분하는 망근
신심·발심, 불자가 갖출 덕목

범해 스님은 “큰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직근과 망근이 유기적인 역할을 하는 것처럼 불교발전을 위해서는 스님들의 노력 뿐 아니라 재가불자들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범해 스님은 “큰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직근과 망근이 유기적인 역할을 하는 것처럼 불교발전을 위해서는 스님들의 노력 뿐 아니라 재가불자들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늘 법보신문 임직원들이 약사사에서 워크숍을 한다고 해서 저 또한 기쁩니다. 법문을 부탁해서 무슨 말씀을 드릴까 하다가, ‘초심’이라는 주제로 여러분과 함께 생각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스님들이 출가해서 절에 들어오면 처음으로 배우는 책이 있습니다. 출가수행자로서 첫 걸음을 뗀 스님들이 꼭 익혀야 할 책인데, 바로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입니다. 저는 출가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초발심자경문’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곤 합니다. ‘초발심자경문’은 처음 절에 들어온 출가대중은 물론 이미 절에 들어와 살고 있는 스님들도 꾸준히 익혀야 할 책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알겠지만 ‘초발심자경문’은 크게 3부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지눌 스님의 ‘계초심학인문’과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 야운 스님의 ‘야운자경문’을 하나로 묶은 것입니다. 모두 초심자들이 익혀야 할 규범과 수행 내용을 정리한 것들입니다. 

한국불교가 대중화된 시기는 신라 때라고 합니다. 아마 원효 스님이 대중들에게 불교를 쉽게 전하면서부터겠지요.  지눌 스님은 고려불교가 정법에서 멀어져 갈때 불교의 참 정신을 일깨운 분이기도 합니다. 지눌 스님은 ‘계초심학인문’에서 “부초심지인(夫初心之人)은 수원리악우(須遠離惡友)하고 친근현선(親近賢善)하며 수오계십계등(受五戒十戒等)하여 선지지범개차(善知持犯開遮)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무릇 부처님 가르침에 귀의하고자 처음 마음먹은 이는 모름지기 나쁜 벗, 그러니까 계율을 지키지 않고 세속적 욕망을 즐기는 이를 멀리해야 하고, 계행이 청정하고 지혜가 밝은 이를 가까이해야 하며, 계율을 생명처럼 지키고 잘 따르며, 어떤 경우에 계율을 어기고 범하게 되는지를 잘 알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 가운데 ‘처음처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또 ‘초심으로 돌아가자’ 그런 말도 자주합니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사실 출가자인 저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초심이라는 것은 우리가 처음 마음먹은 대로 진솔하게 실행하는 것, 본래 가지고 있는 가장 순수한 무언가에 충실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예전에는 제사를 지낼 때 제단 앞에 2살 정도된 아기들을 두었다고 합니다. 인지가 발달하기 전의 순수한 아기를 보면서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죠. 결국 초심이라는 것은 가장 순수한 때 품은 마음이 아닌가 합니다. 

지눌 스님은 초심을 강조한 분이었습니다. 당시 한국불교는 참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 불교는 정법에서 벗어나 퇴색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눌 스님은 수행전통을 회복하면서 한국불교의 변화를 외쳤죠. 출가수행자로서의 초심을 강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지눌 스님의 노력으로 한국불교의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습니다. 항상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말은 많이 하지만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초심을 잃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항상 내 자신을 되돌아보고, 점검해 봐야 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지방 어느 마을에나 가면 동네 어귀에 큰 나무가 있습니다. 그 나무가 그렇게 무성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뿌리가 탄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나무의 뿌리는 두 종류로 나뉜다고 합니다. 큰 나무의 경우 뿌리 중에서도 땅 속으로 깊게 박힌 뿌리가 있는가 하면 옆으로 번지는 게 있습니다. 깊이 곧게 내려간 뿌리를 직근이라고 하고, 옆으로 뻗은 것을 망근이라고 합니다. 큰 나무일수록 직근과 망근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우선 나무가 튼튼하게 서 있을려면 직근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깊게 뿌리내리고 있어야 비바람에도 폭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살 수 있겠죠. 그런데 망근의 역할도 직근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직근이 땅 속 깊게 들어가 튼튼히 버티면 망근은 옆으로 퍼져 나무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직근과 망근이 유기적으로 역할을 해야 나무가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불자들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불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신심과 발심입니다. 신심은 나무의 직근과 같고, 발심은 망근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가르침을 믿고 실천하겠다는 굳은 신심이 있어야 어떤 난관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신심은 곧 초심이기도 합니다. 부처님가르침을 따르겠다는 초심이 곧 굳은 신심이기 때문이죠. 그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닦고 그 마음의 소리를 듣고 일으킨 것이 발심입니다. 이렇게 신심과 발심이 제대로 갖춰졌을 때 참 불자가 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인연법을 말하는데, 연이라고 하는 것은 환경입니다. 좋은 환경은 결코 혼자의 힘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면서 좋은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지요. 부처님을 닮겠다는 굳은 신심으로, 그 가르침을 실천하겠다는 발심으로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언제는 좋은 환경이 될 것입니다. 

불자에게 있어 오계를 받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계를 받았다면 마땅히 지키겠다는 생각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때론 놓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놓는다는 것은 계율을 어기거나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라 계율의 참 의미를 알고 실천하자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오계 가운데 거짓말하지 말자는 게 있지요.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면서 거짓말을 단 한 번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단순히 거짓말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때론 진실이라도 이야기 하지 말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거짓말을 해서라도 하지말아야 한다는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거짓도 때로는 필요하고 진실도 절대로 말을 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끔 너무나 미운 사람이 내 눈앞에 와도 “너 밉다”라고 말하지 않지요. 일단 덕담을 합니다. 사람을 앞에 두고 “너는 왜 이렇니”라고 말하는 것은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지 않아요. 이건 아주 작은 예입니다. 

여러분들은 언론에 종사하는 분들입니다. 언론은 정론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론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화가 될 수 있는 상황도 많이 있습니다. 아무리 정론이라도 지금은 맞을 수 있지만 내일은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세상의 흐름입니다. 

예전 통도사에 있을 때 큰방 천장을 보니 ‘참을 인’자가 쓰여 있더라구요. 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말을 할 때나 행동을 할 때는 두세 번쯤 생각해서 해야 합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대로 표현한다면 결국 그 화가 나에게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출가한 사람은 아침에 세수할 때 손을 머리까지 올려봐야 한다고 합니다.  세수를 하면서 자신이 머리를 깎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뜻이겠지요. 머리를 깎은 수행자라는 생각, 내가 왜 출가를 했는가를 매일 아침 세수를 하면서 되새기고 알아차리라는 뜻입니다.  그런 생각을 매일 놓치지 않고 생활한다면 출가수행자로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 겁니다. 물론 형상에만 치우쳐서도 안되겠지만 초심을 잊지않고 살아가려는 자세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 내가 나의 위치에서 제대로 살고 있는지, 게으름 없이 노력하며 살고 있는지 끊임없이 돌아보고 점검해야 합니다.  그렇게 일으킨 마음을 되돌아보면서 그 마음을 나태하게 하지 않게 하는 것이 발심입니다. 

여러분들은 언론인이기도 하지만 부처님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불자이기도 합니다. 큰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직근과 망근이 유기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스님들이 굳건하게 직근의 역할을 할테니, 여러분들이 충실하게 망근의 역할을 해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불교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스님들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여러분들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이 굳은 신심과 발심으로 제 역할에 충실한다면 불교는 크게 발전할 것입니다. 불교가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갑시다.

정리=임은호 기자 eunholic@beopbo.com

이 내용은  조계종 중앙종회의장 범해 스님(서울 약사사 주지)이  10월18일  약사사에서 진행된 2019년도 법보신문 추계워크숍에서 법문한 내용을 요약정리한 것입니다. 

 

[1510호 / 2019년 10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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