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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엔라쿠지·곤고부지의 쇼묘 

일본불교 쇼묘 의식엔 본산의 전통·위의 고스란히 담겨

문화 전해진 쪽에 원형이 더 많은
디아스포라 현상은 보편적 현상
일본에 범패 원형 더 많은 이유

진언종 총본산 고야산 곤고부지
곤고부지 내당은 박물관 그 자체
거대한 카레산수이 잊을 수 없어

동경국립극장 개장 50주년 기념
곤고부지·엔라쿠지의 쇼묘 공연
곤고부지엔 문답의식 담겨 특이
엔라쿠지는 궁중악기 수반 화려

개장 50주년을 맞아 곤고부지와 엔라쿠지의 쇼묘 공연을 연 동경국립극장 전경. 

‘No재팬’에, ‘방사능 공포’ 그리고 ‘태풍’까지 불어 닥치는데도 일본을 들락거리니 “하필 왜 이때 사람들 앞에 말도 못 꺼낼 일을 하고 다니냐?”고 가족들 핀잔이 여간 아니었다. 우리네 범패 전승에 관한 조사를 하면서 ‘왜색불교’라는 말들을 많이 들었기에 나도 모르게 일본불교에 대한 반감이 있었던 데다, 그간 영어, 중국어, 산스크리트어까지 외국어 공부에 지쳐온 터라 더 이상 일본어까지 짐을 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연구를 하면할수록 일본이 원형적인 모습을 많이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어 도무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발생 지역 보다 전달 받은 쪽이 원형을 많이 지니고 있는 것을 디아스포라 현상이라 한다. 범패를 전달받은 일본에 그 원형이 더 많은 것은 음악에서와 같이 세계적인 보편적 현상이다. 그래도 일본까지 손을 뻗치고 싶지 않아 버텨오던 어느 날 교토예술대학에서 외국인들을 위한 일본 전통음악과 쇼묘 강연을 한다는 연락이 왔다. 강의신청서에 관심분야 적는 항이 있기에 쇼묘에 관심이 있고, 강의를 마치면 고야산을 다녀오고 싶다고 적었다. 그렇게 강의 등록을 마친 며칠 후 주최측에서 메일이 왔다.

8월11일에 고야산 진언종 총본산 곤고부지에서 오봉을 한다는 것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일본 사찰의 까다로운 심의절차를 몰랐던지라 “그곳 의례를 촬영하기 위해 고야산을 먼저 가겠다”고 했더니 “촬영을 하려면 촬영허가서를 받아야 한다”며 곤고부지 촬영허가 양식을 보내왔다. 양식을 보니 어떤 목적, 어떤 내용, 어떤 장소에서 자료를 활용할 것인지 빽빽한 항목이 있어 숨이 막혔다. 그렇게 촬영 허가를 얻게 되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학교 조교가 고야산을 직접 오가며 추진한 결과였다.
 

고야산 오쿠노인 추모도 소대 행렬

아침 일찍 곤고부지에 당도하니 곤고부지 종무실장 야수다 쿠겐 스님이 촬영 완장을 들고 나를 맞았다. 의례가 시작되려면 시간이 있으니 사원 안내를 하겠다며 사원 곳곳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때 보았던 곤고부지 내당은 그야말로 박물관이었다. 그 중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구름 위를 나는 용을 그린 카레산수이(枯れ山水)다. 우란분 의식은 30분 정도로 간략한 것이었고 이틀 뒤 오쿠노인 만등공양이 있었는데, 그해가 기네스북에 등록되는 해여서 그야말로 온 세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필자에게 인상적이었던 고야산의 풍속은 따로 있었으니 만등공양이 있기 며칠 전부터 여기저기서 검은 승의에 게다를 신고 왼손에 등불, 오른손에 석장을 들고 오쿠노인(奥の院)으로 가는 행렬이었다.

대개 한두 사람, 많으면 세 사람인데, 어린 승려까지 네댓명의 행렬이 있어 그들을 따라가 봤다. 인도(引導)스님이 석장을 들고 그 뒤를 초등학교부터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승려들이 보자기를 들고 총총히 진언을 외며 걸었다. 일본 최고의 명당으로 꼽히는 오쿠노인 추모도(追慕道)에는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다케다 신겐, 선 히메 등 일본사에 등장하는 유명인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약 20만개의 묘가 있다. 행렬을 이끄는 인도스님이 중요한 곳은 일일이 설명을 하였고, 설명이 끝나면 다 함께 다라니를 외며 기도를 하는지라 오쿠노인에 다다르는데 한나절이 걸렸다. 

다음날 내가 묵고 있던 렝게인(蓮花院)의 행렬을 따라가 보니 만령단(三界萬靈壇)에 올려두었던 위패와 마끼, 공양물을 보자기에 싸서는 주지스님 혼자서 소대터로 갔다. 스님은 중간에 어떤 비석 앞에 멈추어 기도를 했는데, 그 비석은 렝게인에 적을 올린 영령들의 합동묘비였다. 그러고 보니 고야산 각 사찰마다 그들 사찰 영가들을 위한 묘역이 있었다. 조령(祖靈)을 맞아들이는 등불이며 재상 차리는 법도까지 볼거리 가득한 고야산 일정을 마치고 도쿄 예술대학의 특강까지 들은 후 엔라쿠지로 향했다. 바로 그날 사이초대사 탄신법회와 동경국립극장 개장 50주년 쇼묘 공연 포스터를 보았다. 
 

고야산 만등공양에서 불을 밝히는 사람들.

아무리 세기의 공연이라도 공연을 보러 비행기를 타고 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나 귀국한 뒤 내 손은 이미 국립극장 홈페이지 예매코너를 접속하고 있었다. 그런데 외국에서 표를 구할 수 있는 결제시스템이 없었다. “에라 잘됐다. 이제 마음을 접자” 했는데 결국은 그 공연장을 가게 되었으니, 그 사연을 간단히 말하기 어렵다. 공연이 있기 하루 전 동경에 도착하여 황실 주변 호텔에 짐을 풀고는 건너편에 있는 국립극장 사무국을 찾아 촬영 가능성을 타진해 보았으나 예상했던 대로 불가능이었다. 그 후 이 자료를 구하기 위해 극장 영상실, 곤고부지, 엔라쿠지와 연락을 해오다 올해 태풍을 뚫고 다녀옴으로써 드디어 그 자료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날 곤고부지는 문답이 있는 시카호요(四箇法要, 범패‧산화‧범음‧석장)를, 엔라쿠지는 가가쿠(雅樂)가 있는 시카호요를 했는데 두 본산의 위의가 막상막하였다. 곤고부지는 문답을 하는 두 승려가 엎드려 팔씨름하듯 겨루는 모습이 특이하였다. 문답을 왜 팔씨름하듯 하느냐고 생각하겠지만 옛날 강론 문답은 그랬다. 우선 당나라의 강경의식을 보면 ‘한 스님이 발의하여 논을 펴면 다른 스님이 큰 소리로 ‘난(難)’하며 되받아쳤다’는 대목이 있다.

이와 비슷한 정황을 티베트 라싸에 있는 쎄라사원에서 보았다. 중국과 일본 그 어디에도 의식무용이 없는데 한국에만 있으니 이것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인지, 문화적 흐름이 있는 것인지 궁금하던 중 티베트에는 무용만으로 의식을 하는 ‘참’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조사를 갔다. 그때 쎄라사원의 강원 스님들이 오후 한 때가 되니 마당 곳곳에서 그날 학습한 경에 대해 논쟁을 펼치는 것을 보았다. 한 스님이 나무 그루터기 앉아 뭐라뭐라 하면 그 논을 듣던 스님들 중 한 사람이 손바닥을 세게 내리치며 반론을 펼치는데 마치 한판 싸움을 하듯 사방이 시끌시끌하였다.  
 

공연장에서 산화지화(散華紙花)를 가져가는 관람객들.

엔라쿠지는 궁중 음악에 쓰이는 가가쿠 악기를 수반하여 화려한 의례 설행을 선보였다. 곤고부지와 엔라쿠지 두 사찰이 모두 황실과 막역한 관계를 지니고 있었지만 도성에 있는 엔라쿠지는 황실 의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으므로 그들 의례는 마치 궁중잔치를 보는 듯 화려하였다. 여기에는 엔라쿠지에 있는 법의(法儀)음률연구부와 천태아악회(天台雅樂會)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전승과 교육시스템의 뒷받침이 있다. 

음악전문가로써 이 공연을 보며 부러웠던 것은 동경국립극장의 음향과 조명, 절차의 모든 부분을 자막으로 띄우는 치밀한 기술이었다. 뒤늦게 표를 구하느라 2층 끝줄 구석에 앉아 있었는데 수십명 스님의 쇼묘 성음이 깨끗하고 고르게 구석진 좌석까지 전달되는 음향이 한결같이 가까이서 듣는 육성과 같았다. 범패나 쇼묘는 모음을 늘여 그 가사를 알아듣기가 어려운데, 각 소절마다 정확하게 한줄 씩 자막이 넘어갔다. 자막은 감상을 방해하지 않도록 무대 양편의 검은 전광판에 정갈하고 정확하게 표시되어, 이를 연구하기에 매우 좋겠다는 생각에 더더욱 그 기록영상에 탐이 났다. 
 

홍법대사 구카이(空海) 초상과 불탁 양쪽으로 태장계만다라와 금강계만다라로 장식된 고야산 곤고부지 공연 모습.
전교대사 사이초(最澄) 초상과 불탁 양편에 가가쿠 악기들이 배열된 비예산 엔라쿠지 공연 모습.

공연 일정은 오후 1시에 곤고부지, 오후 4시에 엔라쿠지가 배정되어 저녁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곤고부지는 정찬(庭讚), 여래패(如來唄), 어영공표백(御影供表白), 산화(散華), 대양(對揚), 범음(梵音), 창례(唱禮), 오대원(五大願). 호립도사표백(呼立導師表白), 원인문답(猿引問答), 삼조석장(三條錫杖), 불명(佛名), 후찬(後讚), 칭명례(稱名禮) 순으로 행해졌다. 이를 행한 승단 구성은 도사(導師), 정두(正頭), 패(唄), 산화(散華), 원인문(遠引問), 원인답(遠引答), 한국의 어장 격인 석장(錫杖), 후찬 솔로(後讚唄), 칭명례 솔로(稱名例)에 각 1인의 스님이 배치됐고, 합송하는 승려가 14인, 취나사(吹螺師) 2인, 반주승(伴僧) 1인, 고실자(故實者) 2인, 승임(承任) 4인, 이방(裏方) 4인 등 모두 50명이었다.

엔라쿠지는 총례(總禮), 패닉(唄匿), 산화(散華), 대양(對揚), 도사입당(導師入堂), 표백(表白), 범음(梵音), 삼조석장(三條錫杖), 개경게(開經偈), 송경(誦經), 보호(寶号), 후패(後唄)로 진행되었고, 승단은 도사(導師), 도석장(都錫杖), 대양(對揚), 독창 범음에 각 1인, 산화를 주재하는 4인, 석장(범패) 합송에 25인, 생황 3인, 피리 3인, 젓대 3인에 대고와 세요고를 비롯한 법구타주, 의례복과 기타 채비를 위한 승려까지 약 50인이었다. 앞으로 이들 공연에 대한 상세한 내용과 율조를 파악하기 위해 자료 확보보다 더 많은 연구 노력이 따라야 할 것이다.

사이초대사 앞에서 발음(發音)하고 있는 석장사(錫杖師, 어장).<br>
사이초대사 앞에서 발음(發音)하고 있는 석장사(錫杖師, 어장).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침공했을 때 프랑스 학자들은 이집트인 도굴꾼들과 결투를 해 가며 그들의 유물을 지키고 카이로에 박물관을 지어 그 유물을 보존하고, 수천년 전 파피루스 문자를 해독해냈다. 정치와 학문의 성질은 이런 것이라. 피아(彼我)를 넘어 진실의 가치를 향해 매진하였던 학자들이 많다. 특히 불교문화는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맥락을 읽지 않으면 내가 들여다보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를 알 수 없는 점이 있다.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어느 날 이집트 유적을 답사하느라 말을 타고 가다 낙마를 하였는데 바로 그곳이 파라오의 지하 묘지로 통하는 입구여서 엄청난 고고학 자료를 발굴하게 되었다. 현장을 다니다보면 어느 순간 나를 잡아당기는 때가 있으니 사이초대사의 탄생법회와 동경국립극장 포스터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윤소희 음악인류학 박사·위덕대 연구교수 ysh3586@hanmail.net

 

[1510호 / 2019년 10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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