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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오캄의 레이저-하

축약은 오해를 부르지만 지식·지혜도 늘려준다

사람은 단어와 기억으로 기억·생각
전문용어 없으면 전문적 사고 불가
의식·무의식 숱한 정보 입각해 판단
AI도 최대한 간결한 형태로 만든 것

사람은 의식적인 판단을 한다. 의식적인 판단을 하려면 지식과 정보를 되도록 소수로 축약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현재의식이라는 스크린에는 많은 창을 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폰8처럼 300개 창을 띄우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띄운다.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될수록 간결한 표현으로 만들어 마음(뇌)에 저장한다.

그게 속담·교훈·가르침에 반영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상전벽해(桑田碧海).’ ‘적선가필유여경(積善家必有餘慶).’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 등이 있다. 이들은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일이 예외적인 경우를 명시하지 않는다. 예컨대 은혜를 악행으로 되돌려 받는 경우도 생각보다 흔하다. 지인이나 가족에게 보증을 서고 망하는 사람들이나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을 보라. 밤에 자다 살해당하는 선량한 사람들을 보라. 아니면 평생 폭력이라고는 행사한 적이 없는 초식동물이 사자·늑대·호랑이·하이에나에게 잔인하게 산 채로 뜯어먹히는 것을 보라. 아니면 일제에 고문당하고 살해당한 일제강점기의 독립군들을 보라. 이들은 기독교 천국에 가지 않는다. 기독교인이 아닌 한 지옥에 가 영원히 고문을 당한다. 이 세상에서도 고문을 당하고 저 세상에서도 고문을 당한다. 인간과 신에게 똑같이 고문을 당하는 것이다.

축약하다 보면 오해를 불러오기도 한다. 하지만 토의하는 과정에서 사물과 현상의 다양한 모습을 보게 되어 지식과 지혜가 늘게 된다. 이런 이유로 토론과 논쟁이 필요하다. 부분이 다른 부분들에 대한 이해를 늘릴 때, 전체가 발달한다.

상징은 디테일을 생략하고 줄일 대로 줄여 표현한다. 그게 한꺼번에 많은 걸 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복잡한 디테일을 감당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비전문가에게 색은 몇 개 되지 않는다. 심하면 빨강·파랑·노랑·하양·검정 정도이다. 전문가들이 구분하는 수백 개 색은, 평범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전설에나 존재한다.

사람은 언어 즉 단어와 문장으로 기억하고 생각한다. 문장이란 단어들 사이의 관계식이다. 전문용어가 없으면 전문적인 생각이나 사고를 할 수 없다. 물리학·화학·수학 용어를 모르고는 이 학문들을 할 수 없다. 당연히 배움도 불가능하다. 새로운 용어를 만드는 것은 국가를 세우고 국명을 부여하는 것과 같다. 전인미답(前人未踏 terra incognita)의 추상적인 공간에 들어가 일정한 영토와 국민들을 모아 나라를 세우고 나라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새로운 생각을 할 때마다 새로운 나라가 만들어진다. 이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제국을 세웠다.

본래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인지 아니면 인간이 만들어낸 것인지 하는 문제가 있다. 자연법칙을 발견했다고 하지 발명했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충분히 지능이 발달한 생물은 우주 어디에 있든 간에 동일한 것들을 발견할 것이라는 말이다. 자연법칙에 대한 표현방법은 발명일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자연법칙에 대한 이해 수준도 발전을 하는 것이고, 그 발전과정이 정해져 있다면, 즉 지능이 발달함에 따라 특정한 과정을 반드시 따라가는 것이라면, 그에 따라 변해야 하는 자연법칙에 대한 표현 역시 발견일 것이다. 수학은 어떨까? 인간 정도의 지능을 가진 생물은, 예를 들어 안드로메다 은하인이건 마두상 은하인이건 누구나 필연적으로 같은 수학을 발견할까? 만약 그렇다면 발견일 것이다. 반대로, 만약 그렇지 않다면 발명품일 것이다. 개인에 달린 것을 발명이라 하고 전체에 달린 것을 발견이라 한다.

의식과 무의식과 AI(인공지능)는 수많은 정보에 입각해 판단한다. AI에 들어있는 수많은 소프트웨어는 필요 없는 것을 잘라내 최대한 간결한 형태로 만든 것이다. 그래야 버그도 줄어든다. 사랑하는 감정도 간단해야 버그가 없다. 말이 많은 사랑은 버그도 많다. 가장 간결한 사랑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을 사랑한다’이다. 그런 사랑이 오래 간다. 대표적인 것이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다. 그에 비해 아버지의 사랑은 조건이 붙은 복잡한 사랑이다. 옛날 아버지들은 자식이 자기 기준에 미달하면 죽이기도 했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1510호 / 2019년 10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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