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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오상순의 ‘꿈’

기자명 김형중

인생은 한편 소설이고 한바탕 긴 꿈
인생무상 주제 4·4조 가락으로 읊어

민족 암담한 상황에 깊은 절망
꿈을 소재로 패배의식 나타내
현실 삶은 인과의 인연 되풀이
백일몽이라도 꾸는 순간 행복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너도 나도 꿈속이요
이저것이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가는 인생
부질없다 깨려는 꿈
꿈은 깨어 무엇하리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은 인구에 회자하는 인생을 꿈에 비유한 일화이다. 어느 날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어 온 세상을 훨훨 날아다녔다. 꿈속에서 완전히 나비가 된 장자는 얼마나 즐거웠는지 자신의 존재를 망각했다. 꿈에서 깬 장자는 “꿈속에서 내가 나비가 되었는지, 아니면 나비가 꿈속에서 장자가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한 바탕 긴 꿈이고, 한 편의 소설이고 드라마이다. 지나온 세월 동안 가시밭길을 걸었던, 꽃길을 걸어왔던 지나고 보면 무상하여 허망하고 덧없는 것이다. 삶은 꿈처럼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꿈은 길몽과 흉몽이 있기는 하지만 능력이나 귀천의 차별이 없이 좋은 생각만 하면 아름답고 행복한 꿈을 꿀 수가 있다. 꿈과 현실이 다른 점은 꿈은 깨고 나면 결과물이 없이 그저 망각 속으로 사라질 뿐이다. 그러나 현실은 인과의 인연을 되풀이 하며 엄연하여 여간한 노력이 없이는 고통이나 불행을 없애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절망에 선 사람은 그나마 백일몽이라도 꿀 수밖에 없다. 꿈을 꾸는 순간은 행복하다.

오상순(1894~1963)의 ‘꿈’은 인생무상을 주제로 우리의 4·4조 전통 민요가락으로 읊은 시이다. 이 시는 우리 민족의 암담한 상황에서 깊은 절망과 애달파하는 상념을 꿈을 제재로 패배의식과 절망감을 나타내고 있다.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가는 인생 부질없다 깨려는 꿈, 꿈은 깨어 무엇하리” 이렇게 마지막 연은 철저한 폐허의식이 나타나 있다.

시인의 호는 공초(空超)이다. 하루에 담배 20갑을 피우는 골초로서 불교의 허무한 공(空)세계를 초월하겠다고 세상사에 걸림이 없이 바람처럼 살아가면서 스스로 지은 호다. 그의 시 ‘짝 잃은 거위를 곡하노라’가 국어교과서에 수록되었었다.

‘대반야경’에 ‘꿈속에서 꿈 이야기를 한다’는 내용이 있다. “마치 어떤 사람이 꿈속에서 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꿈속에서 보았던 모든 현상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꿈도 허망한 것인데 어찌 꿈속의 일들이 허망하지 않겠는가?”

서산대사의 삼몽사(三夢詞)란 유명한 시가 있다. “주인은 꿈 이야기를 나그네에게 하고 나그네는 주인에게 꿈 이야기를 하네. 지금 꿈 이야기를 하고 있는 두 사람 역시 꿈속을 헤매는 사람이네.” ‘삼국유사’에 나오는 ‘조신의 꿈’이나 김만중의 ‘구운몽’, 이광수의 ‘꿈’도 우리 인생을 꿈에 비유하여 소설화한 작품이다.

인간은 나그네로 와서 세상 주인 행세를 하다가 본래 나그네가 되어 가을낙엽처럼 무상하게 떠난다.

오상순은 우리 역사의 가장 참담한 시기에 태어나 처절하게 살다간 최고 지성인이며 시인이다. 시인은 젊은 시절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일본에 유학하여 도시샤대학 신학부에서 공부했다. 1921년 신학에 대한 불신과 인생무상으로 불교로 개종하여 조선중앙불교학교 강사 생활을 하며 동국역경원과 조계사를 전전하며 살았다.

시인은 1920년 문학동인지 ‘폐허’를 결성해 최초로 ‘폐허 의식’를 설파했다. 일본 유학 중 ‘에스페란토(세계 평등사상과 상호 이해의 정신을 기조로 한 세계 공용어)’를 가장 먼저 배워 국내에 보급하였으며, 중국 근대문학의 개척자인 루쉰(아큐정전)과 저우쭤런(周作人) 형제와 지적 교류를 하였다.

김형중 문학박사·문학평론가 ililsihoil1026@hanmail.net

 

[1510호 / 2019년 10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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