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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공성의 이해방식 ①

자성 공의 관점은 유부와 외도의 실체론적 사고 비판

대승의 논사인 나가르주나는
공을 승의와 세속 이제로 설명
유가행파, 잘 파악된 공성 통해
유부와 용수 입장 비판적 지양

대승불교에서 공성(空性, śūnyatā)은 ‘반야경’의 ‘모든 존재는 자성을 가지지 않으므로 공(一切法無自性空)’이라는 입장에서 이해된다. ‘반야경’의 공성은 내적으로 존재의 구성요소로서 법이 승의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설일체유부의 실체론적인 사고를 비판함과 동시에 이와 유사한 실체론적인 사고경향을 가진 바이쉐시카 등 외도들의 견해를 표적으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반야경’의 ‘모든 존재(=법, dharma)는 자성을 가지지 않으므로 공’이라는 입장을 잘못 파악하거나 과도하게 해석할 경우 악취공이나 허무주의에 빠질 소지가 있다. 

이런 점에서 대승 논사인 나가르주나(龍樹, 150~250)는 대표 저작인 ‘중론’ 제24장 ‘4성제의 고찰’에서 공과 공성에 대한 표현과 그 관계의 문제를 승의와 세속이라는 이제적인 관점을 통해 설명한 후, 악취공(惡取空)의 위험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시설한다. 즉 “잘못 파악된 공성(=惡取空)은 지혜가 모자란 자를 파괴한다. 마치 잘못 움켜쥔 뱀이나 잘못 행해진 주술과 같이.(24-11)” 이른바 공성은 현상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유부가 주장하듯이 그 현상적 존재의 너머에 존재한다고 보는 고유한 본질(自性)은 연기적인 관점에서 그 어디에도 없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공성은 이제적 관점에서 올바르게 파악하는 것도 그리 쉽지 않기에, 용수는 악취공의 위험성을 잘못 움켜쥔 뱀이나 잘못 행해진 주술과 같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예컨대 ‘반야심경’에서 5온․12처․18계․12연기․4성제 등이 모두 공하다고 설하고 있는데, 공의 도리를 잘못 이해하거나 과도하게 해석하는 경우 초기불교에서 붓다가 제시한 주요한 교설의 가르침이 완전히 무의미한 것으로 이해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반야심경’  도입부의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라는 조건문을 고려하면, 5온 등의 공성에 대한 기술은 승의적인 차원에서 설해짐을 알 수 있다.  

초기 유가행파의 최초기의 논서인 ‘보살지’ 제4장 ‘진실의품’에서는 초기경전의 ‘소공경’을 인용하여, 잘 파악된 공성(善取空)과 잘못 파악된 공성(惡取空)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즉 “그러면, ‘잘 파악된 공성’이란 어떠한 것과 같은 것인가? 어떤 A가 어떤 B에 존재하지 않을 경우, 그 B는 A의 관점에서 공이라고 바르게 본다. 그러나, 여기에 어떤 C(B-A)가 남겨진 경우, 현재 존재하는 그 C는 여기에 존재한다고 여실하게 안다. 이것이 여실하게 전도되지 않은 공성에 대한 파악이라고 불리운다. 

예를 들면, 이미 시설한 바와 같이 색 등으로 명명되는 ‘실재’에 색 등이라고 하는 이와 같은 가설적 언어표현을 본질로 하는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색 등으로 명명되는 ‘실재’는 가설적 언어표현을 본질로 하는 관점에서는 공이다. 그런데 그 경우에, 색 등(A)으로 명명되는 ‘실재’(B)에 남겨진C(B-A)는 도대체 무엇인가? 참으로 그것(C)은 즉 색 등(A)이라고 하는 이와 같은 가설적인 언어표현의 의지처이다. 그리고 그 양자[색과 가설적 언어표현]은 즉[각각] 현재 존재하는 ‘실재에 지나지 않은 것’과 실재에 지나지 않는 것에 있어서 ‘가설에 지나지 않은 것’이라고 여실하게 안다.(중략) 그리고 있는 그대로 진여를 언어로 표현 할 수 없는 본질을 가진 것으로서 여실하게 안다. 이것이 바른 지혜(正智)에 의해서 잘 통달된 것으로서 ‘잘 파악된 공성’이라고 불리운다.”

초기 유가행파는 가설적 언어표현은 공이지만, 가설적 언어표현의 의지처의 존재를 인정하는 점에서 그 특징을 드러낸다. 이는 유부와 용수의 법에 대한 입장을 비판적으로 지양하여 법과 법성을 준별하여 법이 가설의 의지처임을 새롭게 밝히는 것이다.

김재권 능인대학원대교수 marineco43@hanmail.net

 

[1511호 / 2019년 11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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