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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포아송 분포’와 업

복권 구입할 때 1등 많이 나온 집에서 사야 할까?

어떤 사건의 발생횟수 확률모형
기계, 기억력 갖추고 있지 않아
1등 횟수는 복권판매량과 비례
선행에 따른 보상 기대 말아야

평소 늦어도 10분이면 오던 택시가 한 시간이 지나도 안 온다. 포기하고 전철을 탈까 하는데 친구가 ‘지금까지 안 왔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면 금방 올 거야’ 하며 기다리잔다. 정말 그럴까? 다음 10분간에 택시가 올 확률이 평소보다 더 높을까?

카지노에 가서 슬롯머신을 당길 때 잭팟이 안 터진 걸 당겨야 할까? 아니면 많이 터진 걸 당겨야 할까? 어떤 사람들은 지금까지 안 터졌으니 이제 터질 때가 되었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터져본 게 잘 터진다며 잘 나오는 걸 찾아간다. 마치 그 기계에 잘 터지는 성향이라도 있는 듯. 만약 평소에 오랜 기간, 예를 들어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10년 동안 자주 터지는 기계가 있다면, 반드시 그 기계를 당겨야 한다. 하지만 만약 그런 기계가 있다면 주인이 이미 오래 전에 손을 보았을 것이다. 예컨대 당신이 주인이라면 꼴은 많이 먹고 일은 잘 안 하는 소를 어떻게 하겠는가? 손을 보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그런 기계는 있다 해도 매우 드물 것이다.

복권을 살 때 1등이 많이 나온 집에서 사야 할까? 아니면 1등이 안 나온 집에서 사야 할까? 허망하게도, 1등이 많이 나온 집은 복권 판매량이 많은 집이다. 소문이 나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집에서 사면 더 많이 1등이 나온다. 1등 당첨은, 평균적으로, 복권 판매량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한 집에서만 복권을 팔면 모든 당첨자는 그 집에서만 나온다.

기계는 기억력이 없다. 과거에 얼마나 잭팟을 터뜨렸는지 기억이 없다. 그래야 할 의무도 없다. 통계학의 주요 정리 중 하나인 ‘포아송 분포(Poisson Distribution)’의 원칙 중 하나이다.

사람들은 선행을 하면 우주(다른 말로 하느님)가 기억 하고 보상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곤 하지만, 당신의 선행을 우주가 기억해야 할 필요가 없다. 특히 당신이 지구에서 한 선행을 마두상 은하 외계인들이 기억할 필요는 없다. 매년 다른 행성 외계인들이 그 행성 외계인들에게 한 선행을 상찬하기 위해서 지구의 부를 강제로 공출해 간다면 당신은 동의하겠는가?

물론 예외도 있다. 만약에 하루 중 그 지점을 반드시 지나야 하는 택시 대수가 정해져 있고 반드시 지켜진다면, 택시가 안 왔을 경우 같은 시간을 기다리면 올 확률이 배증할 것이다.

업(業 karma)은 존재하더라도 지구인의 업은 지구에만, 신라인의 업은 신라에만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다시 말해 자기가 사는 사회에만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인도인들의 영혼은 인도 아대륙을 떠돌며 환생을 기다리는지 모른다.(매년 2000만명 정도가 죽고 환생을 기다린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 나라 사람들에게 한 선행을 당신 나라가 보상하는 건 당신은 절대 찬성 안 할 것이다. 그 나라 상벌(賞罰)은 그 나라에서 책임지는 게 옳다. 그건 당신의 잘잘못에 대한 상벌은 당신이 책임지는 것과 같다. 또는 아이들이 자기 집에서 저지른 일에 대한 상벌을 그 아이들의 집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것과 같다.   

이는 불교 우주론에서 하나의 세계 안에 28개 천국과 136개의 지옥이 독립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이유일 것이다. 업은 빛과 달리 아무데로나 마구 퍼지지 않는다. 혹시 업을 전달하는 소립자인 업자(業子 karmaton)가 있다면 모를까? 결국 우리가 우리 세계 안에서 돌고 돈다면, 우리는 우리 세계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무한 책임을.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만들어도 광고가 안 되면 팔리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좋은 물건을 만드는 게 선업(善業)이라면, 많은 사람이 쓸수록 더 선업이 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즉 선업은 사람들에게 실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과 관계가 없다면, 마음속으로만 좋은 물건을 만드는 것도 많이 만들어 널리 유통시키는 것과 동일한 선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불합리하므로, 널리 이용될수록 더 선업이 될 것이다. 그럼 광고를 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게 하는 것은 선업을 증진하는 좋은 방편이다. 이 점에서 말없이 선행을 하는 것은 광고를 하는 것보다, 즉 이런 일을 하자고 홍보를 하는 것보다, 선업을 덜 쌓는 일일 수 있다. 병도 자랑해야 하지만, 선행도 자랑해야 한다. 그것이 세상에 선업을 많이 쌓고 증진하는 길이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1511호 / 2019년 11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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