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볼펜과 함께 글과 그림을  ① -진광 스님
21. 볼펜과 함께 글과 그림을  ① -진광 스님
  • 진광 스님
  • 승인 2019.11.05 10:38
  • 호수 1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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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 중지의 굳은 살은 내가 나에게 준 훈장”

모나미 생일은 1963년 5월 1일
잉크없이 쓸 수 있는 국민 볼펜
언제 어디서나 기록할 수 있어
당시엔 획기적인 아이디어 상품

쓰기 연습 끝에 중지에 굳은살
항상 쓰고 있기에 나는 존재해
그림=허재경
그림=허재경

어린 시절 초등학교 다닐 적에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글을 쓰던 기억이 새롭다. 어려운 시절인지라 몽당연필이 되면 아버님께서 빈 볼펜대에 끼워주던 기억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달력 뒷장에 꼭꼭 눌러 받아쓰기를 하거나 한자를 익히던 기억이 아련하기만 하다. 새 연필을 예쁘게 깎아 필통에 가득 채우면 부자라도 된 듯이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 꽃과 연필로 삐뚤빼뚤 쓴 어버이날 감사편지 한 장에 부모님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셨다.

그러다가 샤프펜슬이 나왔을 적에 얼마나 신기하고 멋지던지 몰랐다. 연필을 깎지 않아도 술술 나오는 것이 마치 요술연필과 같았다. 지금도 책을 읽으며 밑줄을 그을 적에는 꼭 샤프펜슬을 사용하곤 한다. 그 가느다란 연필심이 부드럽게 써내려가는 글씨와 그 느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리어 지금은 연필을 수집하고 쓰는 마니아들이 많아진다고 한다. 옛 추억에 대한 향수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게다. 또한 지금도 고급 호텔에 가면 편지지와 편지봉투, 그리고 연필이 구비되어 있는지라 정성껏 편지를 써서 지인들과 내 자신에게 보내곤 한다. SNS와 이메일로 소통하고 있는 요즘에도 직접 연필로 써서 보내는 편지나 엽서 한 장은 서로에게 더 없는 기쁨이자 행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모나미 볼펜이라는 신통방통한 물건을 사용하게 되었다. 처음 이 물건이 나왔을 적에 모든 사람들이 적지 않게 놀랐을 것이다. 먹을 갈 필요도 없고 연필을 깍지 않고도 오랫동안 쓸 수가 있는 이 놀라운 ‘볼펜’이라는 물건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사용해 본 필기구가 바로 국민볼펜 ‘모나미(Monami)’다. 1960년 회화, 문구류를 생산하는 광신화학공업이 1963년 5월1일 국내 최초의 볼펜인 ‘모나미 153’을 출시했다. 모나미는 프랑스어로 ‘나의(Mon) 친구(Ami)’를 뜻한다. 출시 이후 폭발적인 판매로 인해 1974년 사명을 아예 ‘모나미’로 바꿨다고 한다. 

5개의 부품(볼펜 촉, 선 촉, 노크, 스프링, 볼펜 심) 만으로 디자인된 ‘모나미 153’ 볼펜은 언제 어디서나 메모할 수 있다는 편리함과 잉크 없이 바로 쓸 수 있는 펜이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 상품이었다. 그런 까닭에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친구 혹은 동반자의 이미지로 자리매김 하였다. ‘모나미 153’은 ‘15’는 15원(63년 출시 당시 서울 시내버스 요금과 신문 한 부의 가격)을 뜻하고 ‘3’은 모나미가 만든 세 번째 제품이라는 의미이다. 

‘모나미 153’ 볼펜은 현재에도 한 자루에 300원이라는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이 볼펜은 하루 평균 생산량이 20만 자루에 달한다. 자루 당 길이는 14.5Cm로 일년 생산량을 일렬로 늘어놓으면 서울에서 뉴욕(1만1,000Km)까지의 직선거리와 같다고 한다.

사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형님은 잉크병에 솜을 넣어 찍어서 펜글씨를 쓰곤 하셨다. 그래서인지 글씨가 단정하고 멋스럽기까지 하였다. 그때 나도 그리 해볼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 까닭에 볼펜으로 그나마 잘 써 보려고 부지런히 노력한 끝에 과히 보기 싫은 글씨는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내 글씨를 보고는 모두가 놀라워한다. 얼굴과 글씨가 잘 매치가 안 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오른손 중지는 항상 굳은살이 박혀있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쓰고 있기 때문이다. 내겐 그것이 하나의 훈장과 같다 할 것이다. 편지나 엽서는 물론 일기와 기행문까지 무언가를 쓰고 있으므로 나는 존재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이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애써 바꾸려하지 않으련다.

은사 스님께서는 ‘몽블랑' 만년필을 무척이나 사랑하셨다. 나도 몽블랑까지는 아니더라도 멋진 만년필 하나 정도는 가질 수 있는 호사를 누려보고 싶다. 그리하여 특별한 이에게 편지나 엽서를 쓰거나 저서에 사인을 할 적에는 가끔 만년필을 사용하게 된다. 몽블랑과 다른 두세 개의 만년필을 가지고 있지만 그리 자주 사용하지는 않고 고이 모셔두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다가 누군가 달라고 하면 그냥 주어 버리기 일쑤이다. 

덕숭 문중의 스님 네들은 모두가 붓글씨를 잘 쓰신다. 경허, 만공 스님은 물론이고 불학무식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벽초 스님의 한글서예는 압권이 아닐 수 없다. 선필로 이름이 높은 원담 노스님을 3년여 시봉한 나는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처럼 초서를 읽고 그리듯이 흉내 내기도 한다. 노스님이나 아는 서예가분들이 “제대로 기본만 배우면 제법 잘 쓰겠다”고 하지만 구태여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장난삼아 부채에 글씨를 그려 남에게 선물해도 부끄럽거나 상대방이 싫어하지 않을 정도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조계종 교육원 해외순례를 가면 삼색의 볼펜으로 스케치를 하는 것을 즐긴다. 데생이나 스케치를 배운 바가 없지만 나름 의미 있고 행복한 일이다. 물론 기본을 배우면 더욱 잘 그리겠지만 구태여 그렇게까지 잘 하고 싶지 않다. 이것은 내가 진정 좋아하고 나름 의미가 있으며 남들도 좋아하기 때문에 하는 것일 뿐이다. 나는 이것이 ‘석복(惜福)’ 즉 복을 아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객이 전도 되거나 본말이 뒤집혀서는 안 된다고 믿는 것이다.

선가에 이르기를 “나에게 한 권의 경전이 있으니 종이와 먹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네. 펼쳐 놓으면 단 한 글자도 없건만 항상 대광명을 발하는구나!(아유일권경 我有一卷經 불인지묵성 不因紙墨成 전개무일자 展開無一字 상방대광명 常放大光明)”라고 하였다. 

수행자는 부디 이러한 글을 쓰고 읽을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글을 다시 쓰고 읽고 말함으로써 혁명적인 변화와 창조를 이루었으면 한다.

진광 스님 조계종 교육부장 vivachejk@hanmail.net

 

[1511호 / 2019년 11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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