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보조국사의 발원
20. 보조국사의 발원
  • 고명석
  • 승인 2019.11.05 10:50
  • 호수 1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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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정혜 닦고 행원 닦아 보리 증득하세나”

불법 빙자해 명리 구하던 시대
승과 급제한 뒤 정혜결사 제안
조계산 수선사에서 결사 입재
청규에 오늘날 보살 마음 담겨
보조지눌 국사는 중생구제를 제쳐두고 정권과 야합한 고려불교의 위기를 정혜결사로 돌파하고자 했다. 보조지눌 국사 진영.
보조지눌 국사는 중생구제를 제쳐두고 정권과 야합한 고려불교의 위기를 정혜결사로 돌파하고자 했다. 보조지눌 국사 진영.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 땅을 떠나서 일어나기를 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마찬가지로 한 마음에 미혹하여 번뇌하는 자, 한 마음을 깨달아라. 이 마음을 떠나서 부처를 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한 생각 청정한 마음은 강가 모래알만큼의 탑을 만드는 것보다 뛰어나다. 이는 보조국사가 그토록 마음을 강조한 내용이다. 그는 우행호시(牛行虎視)로 불릴 만큼 소처럼 느리게 걸었지만, 호랑이처럼 날카로운 시선으로 세상의 어두운 길을 밝히고 삶을 조망한다. 소의 걸음과 호랑이의 눈 또한 그의 마음이자 모든 존재의 마음을 상징한다.

보조지눌(普照知訥,1158~1210) 국사는 고려 후기 1158년 황해도 시흥군에서 태어나, 8세 때 구산선문 중 사굴산문의 종휘(宗暉)선사 아래에 출가하였다. 그가 살아갈 당시 중앙에서는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켜 살육과 정변이 휘몰아쳤으며, 지방에서는 만적의 난 등 민란이 연이어 일어났다. 불교계는 선종과 교종이 서로 갈등하였으며 수행풍토 또한 쇠락하고 부패해 있었다. 수행과 중생 구제는 제쳐두고 정권과 야합하여 파당을 짓고 타락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지눌은 고려불교와 고려사회의 위기를 정혜결사(定慧結社)로 돌파하고자 했다. 그것은 소 같은 마음의 고귀한 성품에 대한 각성과, 각성을 바탕으로 마음 번뇌를 다스리고, 호랑이 눈 같은 지혜로 삶을 투시하며 보살의 길을 걸어 깨달음을 완성해 나가는 삶이기도 했다. 

그는 25세에 승과에 급제해 승려로서의 출세 길이 보장됐다. 세인들이 보기에 대단한 영광이기도 했지만 그는 편히 그 길로 가지 않고 대중들에게 결사를 제안한다. 보제사(普濟寺) 담선법회(談禪法會) 자리에서다. 당시 출가수행자들이 도(道)와 덕(德)을 닦지 않고 불법을 빙자해 나를 내세우며 과도하게 치장하고 구구하게 명리를 구하며, 세속 잡사에 골몰한 것이 그 1차적 이유였다. 

“이 법회를 마친 후에는 모든 명예와 이익을 버리고 산 속에 은둔하여 함께 결사를 맺고자 합니다. 항상 선정을 익히고 지혜를 고르게 함을 근본으로 삼고, 예불하고 독경하며, 힘써 울력하는 것까지 각자 소임에 따라 해나갑니다. 인연 따라 자신의 성품을 잘 기르고 평생을 넉넉히 해서 세상일에 통달한 사람과 참 사람의 고결한 행을 따른다면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눌은 지금의 전남 담양 청원사(淸源寺)에서 홀로 경전과 어록 공부에 몰두하며 마음을 밝혀간다. ‘화엄경’과 그 주석서, ‘육조단경’ ‘대혜어록’ 등은 공부에 큰 도움을 줬다. 

1188년 봄 나이 31세 되던 해, 그는 정혜결사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팔공산 거조사(居祖寺)로 거처를 옮긴다. 2년 후 그는 거조사에서 정혜결사를 세상에 알리는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을 간행하여 출가재가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전국의 뜻있는 수행자들에게 동참을 권한다. 7~8년이 지나 결사에 참가하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지자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 그 결과 48세 되던 해 중창불사를 마무리 한 오늘날의 송광사, 조계산 수선사에서 결사를 본격적으로 이어간다. 이 결사를 계기로 고려사회에 16국사가 배출되어 마음 닦는 수행가풍을 연다. 

정혜결사는 선을 중심에 둔 마음 닦는 결사다. 염불도, 간경도 모두 마음 닦는데 모아진다. 문자와 생각과 모양으로 구한다면 그것은 아상과 아견에 휘말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교만함을 버리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사무치게 들어가 선정과 지혜의 두 문으로 투과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스로 나약한 범부로 여기지 말고 자신의 밝은 마음을 믿는 것이다. 지눌은 누구나 마음은 본래 신령스럽고 밝으며 청정하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마음을 공적영지심(空寂靈知心)이라 했다. 텅 비워져 깊고 고요해 신령스럽게 아는 마음이다. 어둡지 않은 마음이다. 이 마음은 또한 부처님만 아니라 모든 생명이 다 갖추고 있기에 근본보광명지(根本普光明智)라 했다. 그는 이러한 마음을 믿고 단박에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단박에 깨닫고 믿는 것이기도 하다. ‘아!’하고 한 순간에 깨닫는다. 돈오(頓悟)다. 하지만 돈오한 이후 아직도 여러 생을 익혀온 습기가 남아 있어서 망념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기에 점차로 닦아나간다. 이를 돈오점수(頓悟漸修)라 한다.

그래서 지눌은 먼저 마음의 공하며 신령한 성품을 깨달은 연후에 이를 바탕으로 정혜로 수행해 나갈 것을 강조한다. 그 수행의 핵심은 적(寂)과 지(知)다. 고요한 마음, 세상을 비추는 지혜. 이 적과 지는 발심해서 닦을 때 번뇌를 그치는 지(止)와 지혜를 통찰하는 관(觀)으로 전개된다. 삶에서 자연스럽게 행할 때는 정과 혜로 드러난다. 선정으로 마음을 고요히 하여 공을 관조하는 지혜로 세상을 사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부처를 이룰 때 적과 지는 보리와 열반으로 나타난다. 보리, 즉 깨침의 눈으로 고요한 평화를 여는 것이다. 

지눌은 또한 남을 제도할 원을 내었다면 정혜를 닦으라고 말한다. 그것은 부처님의 지혜로 온 생명을 이롭게 하며 보살도를 행함이다. 요컨대 법에 대한 바른 안목을 갖추면 ‘자기와 타자’ ‘사랑과 미움’의 이분법적 견해를 끊을 수 있어 자비와 지혜가 원만해져 중도에 계합하고, 그렇다면 그는 진실을 행하는 자다. 온 생명의 고통을 살펴서 자비 원력의 마음을 내어 힘이나 분수를 따라 보살도를 행하면 각행이 점점 원만해 진다. 지눌은 결사 대중의 마음가짐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결사에 들어와 마음 닦는 사람들은 마음 근본과 지말을 알고, 모든 다툼을 쉬어야 합니다. 방편과 진실을 가려 대승법문의 바른 수행 길에서 헛힘을 쓰지 말아야 합니다. 함께 바른 인연을 맺고 함께 정혜(定慧)를 닦으며, 함께 행원(行願)을 닦고 함께 불지(佛地)에 나아가며, 함께 보리(菩提)를 증득하고자 합니다.”

보조국사는 또한 결사 대중의 청규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을 지어서 수선사에 들어오는 모든 이들의 수행청규로 삼았다. 이는 한계 속에서 한계를 넘는, 한계 너머를 보는 오늘날 보살의 마음가짐이 아닐까 한다.

“오로지 의지와 절개를 굳건히 하고, 스스로 채찍하여 게으름을 다스리며/옳지 않음을 알면 선으로 바꾸고, 뉘우치고 참회하며 마음 다스려 부드럽게 할 지어다.//부지런히 수행하면 지켜보는 힘이 점차 깊어지고,/갈고 닦으면 행하는 문이 점차 청정해지리.//만나기 어려운 불법 오랫동안 놓지 않으면 도업(道業)이 항상 새롭게 느껴지고/항상 즐겁고 행복한 마음 품으면, 다함없이 도업에서 물러남이 없으리로다.//이렇게 오래도록 닦아 가면 선정과 지혜 둥그렇게 밝아져 제 마음의 성품 보게 되리./환상 같은 연민의 마음과 지혜를 잘 활용하여 모든 생명 제도해 나가면/온 세계 모든 존재의 큰 복밭을 일구는 것이니. 모름지기 힘쓰고 힘쓸지어다.”

고명석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 kmss60@naver.com

 

[1511호 / 2019년 11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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