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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결사, 한국불교 변화시킬 장대한 물결 되길”

조계종 원로의원 월탄 스님

난관 봉착한 불교계에 큰 의미
말하기 쉬워도 실천은 어려워
그 첫 마음이 곧 부처님 마음
“여기서 죽겠다”는 각오 필요
시작했으니 반드시 성공해야

종단과 사찰 소임을 맡으면서도 틈틈이 제방선원에서 정진해왔던 스님은 대흥선사 불사의 골격이 잡히자 선방부터 세웠다. 안거 때면 이곳에서 후학들과 함께 정진하며 소참법문도 하는 월탄 스님은 “본래면목을 깨달아 반드시 도인이 되겠다는 각오로 정진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종단과 사찰의 중책을 맡으면서도 틈틈이 제방선원에서 정진해왔던 월탄 스님은 대흥선사 불사의 골격이 잡히자 선원부터 세웠다. 안거 때면 금성선원에서 후학들과 함께 정진하며 소참법문도 하는 월탄 스님은 “천막결사 대중들은 본래면목을 깨달아 반드시 도인이 되겠다는 각오로 정진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국불교는 지금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출가자와 신도가 갈수록 줄고 불교에 대한 신뢰도 크게 떨어졌습니다. 위례 천막결사는 참다운 불교, 참다운 수행자로 돌아가자는 비장한 각오로 읽혀집니다. 이 뜻깊은 결사가 잘 회향돼 한국불교를 변화시킬 장대한 물결이 되기를 바랍니다.”

11월5일 단양 대흥선사에서 만난 조계종 원로의원 월탄 스님은 경기도 위례신도시 상월선원에서 진행되는 천막결사 동참 대중들의 원력과 실천에 큰 의미가 있다고 찬사했다.

“덕숭산 중턱의 만공선사 부도에는 ‘천사불여일행(千思不如一行)’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천 번 생각하는 것이 한 번 실천하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입니다. 누구든 말로는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천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난방도 안 되는 협소한 천막에서 하루 한 끼에 묵언을 지키며 목욕도 않고 승복 한 벌로 한 철을 난다는 것은 대단한 각오가 아니면 해낼 수 없습니다. 이 마음이 곧 초발심이고 부처님 마음입니다.”

월탄 스님은 경허 스님으로부터 시작해 만공-보월-금오-월산 스님의 선법을 잇는 선사다. 조계종 종회의원과 종회의장, 조계사·법주사 주지 등 종단의 대소사를 맡아왔고 전국의 많은 선원에서 정진했다. 그럼에도 스님은 지금까지 ‘정화 육비구’로 더 유명하다. 1950년대 전통불교 회복을 기치로 펼쳐왔던 정화운동이 1960년 11월 대법원에 의해 무산될 위기에 처했을 때였다. 6명의 비구들이 대법원에 들어가 할복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24살이었던 월탄 스님도 이 자리에 있었다. 당시 월탄 스님은 그 자리에서 35cm가량 자신의 배를 힘껏 가르자 창자가 쏟아져 나왔다. 곧바로 병원에 실려 갔고 사흘 밤낮동안 사경을 헤매다 의식이 돌아왔다. “한국불교를 살릴 수 있다면 기꺼이 순교하겠다”는 각오로 결행한 이 사건으로 인해 여론이 크게 바뀌었고 마침내 대법원에서 정화운동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새로운 활로는 목숨을 버리는 자리에서 보입니다. 한국불교가 살려면 정법이 바로 서야하고 그러려면 법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겠다는 기개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철수개화(鐵樹開花)’ ‘암상생련(巖上生蓮)’의 이치입니다. 쇠로 된 나무에 꽃이 만발하고 바위 위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거룩한 불사라는 얘기입니다. 보조국사 지눌 스님도 위법망구의 결사를 통해 고려불교를 일신했고 송광사의 16국사를 배출할 수 있었습니다. 위례 천막결사 대중들의 원력이 지속된다면 한국불교를 새롭게 바꿀 수 있는 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월탄 스님은 한국불교가 신뢰를 넘어 스님들이 존경받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것을 역설했다.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스님이 존경받는 사회에서 부처님 말씀이 깊이 받아들여지고 실천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상은 이 몸뚱이를 어떻게 편안케 할 것이냐에 온통 매달려 미친 듯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스님들까지 그리해서는 안 됩니다. 향락주의가 참다운 행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부처님은 간파하셨고, 우리 스님들은 그 가르침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그럴 때 불자들이 감동하고 대중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지 않겠습니까.”

월탄 스님은 위례 천막결사에 동참한 모든 이들의 공덕과 함께 이번 결사를 실질적으로 이끈 전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역할에 대해서도 칭송했다.

“해방 이후 우리 불교는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총무원장도 숱하게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자승 스님은 일각에서야 뭐라 하든 내부적으론 큰 허물없이 임기를 두 번이나 지내며 불교발전을 위해 크게 기여했습니다. 퇴임 후에도 백담사 무문관에서 두 안거를 나더니 이제는 수행으로 한국불교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월탄 스님은 ‘만일 누가 잠깐동안 고요히 앉기만 해도 항하(恒河)의 모래 수만큼 칠보탑을 세우는 것보다 낫다. 칠보탑은 결국 티끌이 되지만 한 생각 깨끗한 마음은 정각(正覺)을 이룬다’는 문수보살의 게송을 인용하며 선수행의 수승함과 이번 결사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이번 위례 천막결사에 대한 걱정도 조심스럽게 꺼냈다.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이제 위례 천막결사가 불교계 안팎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막상 결제에 들어가면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중생의 업장은 매우 두터워서 그 안에서 여러 변수가 생길 수 있지요. 하지만 설령 죽더라도 약속을 지켜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진심이라도 외면 받을 수 있습니다. 9명 스님들은 자신들의 원력을 잊지 말고 부디 그곳에서 반드시 본래면목을 깨달아 큰 도인되기를 바랍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결사 대중이 꼭 새겼으면 하는 당부의 마음을 게송에 담아 전했다.

百尺竿頭座低人(백척간두좌저인)
雖然得入未爲眞(수연득입미위진)
百尺竿頭進一步(백척간두진일보)
十方世界是全身(시방세계시전신)

백척간두 끝에 앉은 사람이
비록 진리를 얻었다고 하나 참은 아니요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내디뎌야
시방세계와 내가 둘 아닌 본래 부처로 돌아간다

단양=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동학농민전쟁 때 폐허가 된 단양 대흥사(현 대흥선사)는 2001년 3월 월탄 스님이 복원불사에 착수하면서 천년고찰의 위상을 되찾고 있다.
동학농민전쟁 때 폐허가 된 단양 대흥사(현 대흥선사)는 2001년 3월 월탄 스님이 복원불사에 착수하면서 천년고찰의 위상을 되찾고 있다.

[1512호 / 2019년 11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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