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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내 내기 수행법

  • 데스크칼럼
  • 입력 2019.11.08 20:22
  • 수정 2019.11.12 13:35
  • 호수 1522
  • 댓글 3

불전엔 흉내 내기가 공덕
부처님 닮아가는 게 수행
진정성 따지는 건 무의미

‘흉내’는 그리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주체성이 결여됐다거나 위선, 가식적, 이중적 태도를 지적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이런 정서는 불교계에서 유독 두드러진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殺佛殺祖)” “어느 곳이든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그곳이 모두 진리다(隨處作主 立處皆眞)” 등 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불교의 특징일 수 있다. 손가락을 세우며 자신을 흉내 내는 어린 동자의 손가락을 끊어 일깨웠다는 구지선사 일화처럼 흉내는 남의 다리를 긁는 어리석은 일로 간주된다.

하지만 불경에는 흉내 내기의 허물을 지적하지 않고 찬탄하는 사례들도 많다. ‘법구비유경’의 원숭이들이 그렇다. 부처님께서 아라한들에게 계빈국 남쪽 산에 가서 탑과 절을 세우게 했다. 아라한들은 부처님 말씀에 따라 아침저녁으로 향을 피우고 탑을 돌았다. 그런데 이 산에는 500마리 원숭이가 살았다. 이들 원숭이는 아라한들이 탑을 세우고 공양하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신기한 듯 구경하더니 그 일이 재밌게 보였는지 나중에는 흉내 내기 시작했다. 서로 장난 쳐가며 진흙과 돌을 운반해 탑을 만들었고 그곳에 큼직한 깃발도 세웠다. 원숭이들은 아침저녁으로 향을 피우고 예불을 드리며 놀았다.

그러던 어느 해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갑자기 불어난 물로 500마리 원숭이들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모두 죽고 말았다. 그런데 이들 원숭이는 죽어 도리천에 태어났다. 탑을 만든 공덕 때문이다. ‘법구비구경’에는 “장난으로 흉내 내며 탑을 세웠어도 이런 복을 받거늘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받든다면 그 공덕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약사’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무리들에서 떨어져 홀로 산속을 헤매던 원숭이 한 마리가 수행자들을 발견하고 그들과 지냈다. 원숭이는 나무뿌리나 열매를 따다가 수행자들에게 올리고 자기는 남은 음식을 먹어가며 살았다. 수행자들은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결가부좌한 채 선정에 들었다. 원숭이도 차츰차츰 수행자들을 흉내 내며 결가부좌를 했다. 훗날 이들 수행자들은 깨쳤다며 육신을 버리고 모두 열반에 들었지만 원숭이는 수행을 지속했다. 뿐만 아니라 고행승들을 교화해 큰 깨달음도 이루게 했다고 기록돼 있다.

불전에는 원숭이 500마리가 서로 팔을 연결해 연못에 비친 달을 건지려 했으나 그들을 지탱하던 나뭇가지가 부러져 모두 죽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연비산산공착영(連臂山山空捉影, 원숭이가 팔을 이어 헛되이 물속의 달을 건지려하네)’은 형상에 집착하는 원숭이들의 어리석음을 경책하는 글이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가섭불 당시 이들 원숭이가 사람들이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것을 흉내 내려 했고, 사람들과 다른 색다른 공양을 올리기 위해 고민하던 중 연못에 비친 둥근 달을 건져 부처님께 공양 올리려 했다고 한다. 물에 빠져 죽은 500마리 원숭이는 부처님께 공양 올린 공덕으로 500나한이 됐다는 것이다.

편집국장
편집국장

이 같은 얘기들은 흉내 내고 따라하는 행위가 큰 공덕이 될 수 있음을 일러준다. 수행은 어쩌면 흉내 내기일 수 있다. 내가 비록 중생이지만 부처님처럼 말하고, 내가 비록 중생이지만 부처님 행동하고, 내가 비록 중생이지만 부처님처럼 생각하려는 노력들이 수행이다. 끊임없이 부처님을 흉내 내고 따라하다 보면 부처님을 닮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1프로 부처님을 흉내 내면 1프로 부처님, 10프로 부처님을 흉내 내면 10프로 부처님, 그렇게 차츰차츰 닮아가 100프로까지 부처님을 흉내 낼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성불이 아닐까.

최근 많은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이 긴 동안거 수행에 들어갔다. 그 수행을 두고 진정성 여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설령 흉내 내는 것이라도 불보살과 역대조사스님을 향한 것이라면 그 자체로 공덕이며 칭송받을 일이다. 올겨울 우리 불자들도 부처님의 ‘따라쟁이’가 돼볼 일이다.

mitra@beopbo.com

[1512호 / 2019년 11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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