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일본의 쌍계사 어산 산젠인(끝)
4. 일본의 쌍계사 어산 산젠인(끝)
  • 윤소희 교수
  • 승인 2019.11.12 15:04
  • 호수 1512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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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여년 전 시작된 일본 범패 ‘교잔(魚山)’의 발원지

두 계곡 ‘쌍계’ 사이 세워진 산젠인
천태종 창시자 사이초 스님서 비롯
예부터 황족이 주지를 맡은 궁문적

의례 승단은 스님들 15명으로 구성
선율 짓는데 조금의 어긋남도 없어
모두  엔라쿠지 강원서 익혔기 때문

천태쇼묘 교육은 엔닌 스님서 시작
당시 신라풍 범패와 일본범패 같아 
엔닌 스님의 범패 지금까지 계승돼

​​​​​​​동시대 진감선사도 쌍계사서 전파
고려 때 티베트 불교 들어와 변화
일제 때 사찰령으로 설자리 잃어
아미타삼존이 봉안된 산젠인 왕생극락원.

교토시내에서 북쪽으로 올라오는 것은 엔라쿠지(延曆寺)나 산젠인(三千院)이나 같은 길이지만 엔라쿠지는 오쓰시, 산젠인은 교토부에 위치한다. 흔히들 엔라쿠지를 교토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엔라쿠지는 등반열차, 케이블카, 산정 버스를 타고 산을 넘는 사이에 오쓰시 경계로 접어든다. 그에 비해 산젠인은 북쪽으로 곧 바로 올라가므로 행정구역은 교토부 그대로다. 교토역에서 17번 버스를 타고 1시간30분 정도를 달리면 엔라쿠지로 갈 수 있는 야세스테이션(八瀬驛前)이고, 거기서 10분 정도 더 가면 17번 버스의 종점 오하라역에 도착한다. 맞은편 산길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산젠인에 이른다.

산젠인이 있는 오하라(大原)는 1000여년 전 시작된 교잔(魚山)이라 불리는 일본 범패의 발원지다. 때문에 이곳의 산젠인을 ‘교잔 산젠인(漁山三千院)’이라고 표기한다. 산젠인의 가람 배치를 보면 이 사원이 어산·범패의 산실임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이 사원의 양쪽으로 흐르는 두 개의 계곡이 있으니, 말하자면 쌍계 사이에 산젠인이 있어 하동 쌍계사 지형과 비슷하다. 계곡 양편으로 여러 암자가 있는데 오른쪽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사찰 입구에 어산교가 있어 범어사를 떠올리게 된다.

예로부터 범패승을 많이 배출해온 부산 금정산 범어사의 이름은 부처님을 상징하는 ‘금’자와 우물 ‘정’자, 하늘 물고기가 노닐었다는 전설을 따라 붙여진 ‘범어’는 중국의 조식이 어산·범패를 창제할 때의 설화를 연상시킨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범어사는 한국 최초로 범패로써 문화재가 된 보성(寶聲) 용운 스님이 있었고, 그 스승 대산 스님의 어산은 더욱 장엄하고 여법하였다니 그 당시 녹음기가 없었던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불탁을 돌며 산화(散華)의식을 하고 있는 스님들. 

그러한 범어사 입구에 어산교가 있고, 대웅전을 향해 조금 더 올라가면 어산계공덕비가 있다. 일제의 사찰령으로 염불원이 폐지되자 부전스님들끼리 모여 어산 강습과 의례 활동을 했는데 ‘회(會)’라면 사람들이 많이 모일까봐 일제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으니 소규모인 ‘계(契)’로 하였다. 계원 스님들이 어산 활동을 하여 사찰 불사와 민족불교를 위한 포교당 건립에 보시한 금액이 막대한지라 어산교 옆에 공덕비를 세운 것이다.

일본 산젠인의 어산교를 지나 산등성을 따라 오르면 왼편 계곡은 율천(律川), 오른편 계곡은 여천(呂川)이라, 이들 쌍계의 천(川)을 빼면 범패의 ‘율려’가 된다. 양천(兩川) 주변에는 덴다이쇼묘(天台聲明) 노장들이 주석하는 암자들이 둘러싸고 있다. 산젠인 일대에 운집해 있는 이들 문중은 가지이 몬제키(梶井門跡) 혹은 나시모토 몬제키(梨本門跡)라 부르며 천태종 5대 문적 중 하나다. 창건 유래를 보면 천태종을 창시한 사이초(最澄, 767~822) 대사가 비예산(比叡山) 엔라쿠지(延曆寺)를 건립하기 전 초암(草庵)을 지은 데서 시작되었다. 

이 사찰은 예로부터 황자나 황족이 주지를 맡아온 궁문적(宮門跡)으로, 가람으로 들어서는 문의 이름이 어전문(御殿門)이다. 일찍이 염불 성인에 의한 정토신앙의 성지였으므로 어전문에는 ‘왕생극락원’이라는 현판이 하나 더 붙어있다. 986년 천태 정토를 설파하며 ‘왕생요집’을 저술한 에신소즈(蕙心僧都) 겐신(源信)이 부모의 보재를 위해 건립하였고, 국보로 지정된 아미타삼존상이 모셔져 있다. 아미타여래상 후면에는 도명존자부터 허공장보살에 이르기까지 13불보살이 모셔져 있는데, 이는 황실 영령이 입적한 뒤 32년간 행해지는 추모의례와도 연결된다.

이러한 배경에서 보면 오봉과 세가끼도 여기서 행해야겠지만 워낙 오래된 건물이라 현재는 보존과 참배만 가능하고, 의례는 본당인 신덴(宸殿)에서 이루어진다. 신덴의 마루 앞에는 관상식 정원이 있어 사람들은 마루에 걸터앉아 여유롭게 시간을 누린다. 신덴과 극락원 사이에는 중국 남북조시대의 시인 사령운(謝靈雲)의 산수청음유(山水淸音有)로부터 명명된 지천 회유식 정원이 있어 오래된 삼나무와 이끼들이 고색창연한 정취를 자아낸다. 필자가 방문한 8월은 수국이 만발하여 파스텔 꽃색과 향기가 어우러져 그야말로 천상의 정원인 듯하였다.

매년 양력 7월15일에 행하는 산젠인의 오봉·세가끼를 칭할 때 법회에 준하여서는 ‘우란분시아귀회법요(盂蘭盆施餓鬼會法要)’, 쇼묘에 준하여서는 ‘광명공 구조 석장(光明供九條錫杖)’이라 하였다. 2019년은 레이와 원년(今和 元年)으로 황실 위의를 모신 산젠인으로서는 더욱 특별한 해였다. 의례는 9시 묘참으로 시작되었다. 
 

7월15일 저녁에 행해지는 기온마쯔리 가마. 가마 위에 대형 마쯔리가 꽂혀있고, 쌀알 모양의 등은 공양과 풍요를 상징한다. 

묘참을 마친 참례자들은 객전에서 차를 마시며 의례를 기다렸는데 정갈하고 품위 있는 재자들의 모습이 일반신도들과는 달랐다. 너무도 정숙하여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은 객전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차를 마시면서도 어떻게 하면 이 숨 막히는 고요를 뚫고 촬영을 할 것인가 하는 생각만이 가득하였다. 산젠인은 일찍이 촬영협조 서신을 보내 허가를 얻은 상태였으므로 카메라를 숨기지는 않아도 되지만 정밀한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전 10시30분 무렵 첫 번째 타종을 치며 참례자들을 신덴으로 인도하였고, 15분 후에 제2타종을 하자 집전 스님들이 의례를 위한 예복(裝束)을 갖추어 입고 회랑에 일렬로 섰다. 11시에 세 번째 타종을 하자 법요가 시작됨을 알리는 개식지사(開式之辭)가 들려왔고, 찬두(讚頭) 스님이 예찬의 음(音)을 발(發)하자 이어서 대중스님이 합송을 하며 입당행렬이 시작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범패를 시작하는 것을 ‘선창’이라 하지 않고 ‘발음(發音)’이라 하는 것에 귀담아 둘 필요가 있다.

필자는 전국 각 지역을 다니며 승려들의 범패 전승에 관한 조사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범음 범패’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그래서 ‘범음’은 무엇이고, ‘범패’는 무엇이냐? 물어보면 여기에 대해서 정확하게 대답을 해주는 스님이 없었다. 간혹 대답을 하되 물을 때마다 내용이 달라 신빙성이 없었다. 이러한 여러 의문을 풀기 위해 팔리어 송경과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고, 힌두사제들의 사브다비드야(聲明)까지 파고들면서 뭔가 가닥이 잡혀가고 있는 중에 일본 쇼묘(聲明)와 석장의 용어들을 통해 그 실마리가 잡혀가는 듯하여 여간 보람스런운 것이 아니다.

찬두(讚頭)나 석장사가 ‘발음’하면 대중스님들이 합송으로 따르는데, 의례집에는 이 부분에 ‘동음’이라 표시하고 있다. 의례 승단은 도사(導師)를 맡은 주지스님, 송경을 이끄는 시경사(始經師), 범패를 이끄는 석장사(錫杖師), 독창 범패를 하는 찬두, 도사의 의례문 절주를 맺는 뇨사(鐃師), 범패의 절주를 가늠하는 발사(鐃師), 범패 합송을 2인으로 8명이 법탁의 양편으로 앉고, 법탁 맞은편에 의례의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예반을 올리거나 기타 의례를 수반하는 스님 3인, 한국의 증명법사에 해당하는 스님 2인까지 총 15명의 스님이 의례를 주재하였다. 합송을 할 때는 8인의 스님이 일제히 균일한 선율을 짓는데 조금도 어긋남이 없었다. 이는 문중의 모든 스님들이 엔라쿠지 강원을 통하여 쇼묘를 학습하기 때문이다. 

10명이 넘는 승려가 함께하는 의례에서 누구 한 사람 중간에 지시를 하거나 눈짓을 보내는 일 없이 진행되는데, 거기에는 사전에 차제(次第)와 각각의 소임이 명확하게 짜여있기 때문이다. 의례 순서를 간단히 보면, 입당과 함께 도량 청정과 결계의 가사를 담고 있는 예찬(列讚)에 이어 행도찬(行道讚), 사지찬(四智讚: 대엔경지(大円境智)·평등성지(平等性智)·묘관찰지(妙観察智)·성소작지(成所作智))을 노래하며 입당한 후 법탁을 돌며 순행한다. 

각각의 자리에 앉아서 착좌찬(着座讚)을 노래한데 이어 9조 석장 범패를 노래하는 동안 도사는 염주, 금강저, 수인으로 작법을 한다. 4언 절구의 가사가 아홉 부분을 이루고 있는 구조석장은 석장사가 세 번 석장을 흔들며 시작하여 각조의 마무리에는 두 번씩, 마지막에 세 번을 흔들어 맺었다. 이러한 모습은 한국의 궁중악무에서 집박을 맡은 악사가 춤의 절주를 지휘하는 것과 유사하였다.
 

기온마쯔리에서 기념품을 판매하는 아이들.

의례가 진행되는 동안 재자들은 자리에 앉아서 의례를 지켜보기만 하였다. 이는 법상종 약사사의 신도들이 송경과 기도, 쇼묘까지 함께 하거나 정토종 쇼조케인에서 나무아미타불 염불로 동참하는 것, 일연종의 신뇨지 재자들이 ‘법화경’ 송경과 남묘호랭게쿄 염송으로 동참하는 것과 확연이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한 점에서 한국의 재의식에서 신도들의 역할이 없는 것도 고려시대 티베트 밀교의 영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다 마당에 궤불을 내어 걸고, 나팔을 불고 커다란 북을 두드리는 가운데 의식무를 추는 것은 티베트 방식으로 중국이나 일본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어서 필자는 진작부터 우리네 의례 방식을 텍스트(의례문)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행위적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함을 주장해 왔는데, 이번 일본불교의례를 보면서 그간의 생각에 더욱 확신이 들었다. 

산젠인에서 우란분 세가끼 회향을 마치고 나면 교토 시내에서는 기온마쯔리(祇園祇園祭)가 행해진다. 산젠인 시아귀 회향과 기온 마쯔리가 연결되는 일정이라 무언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알아보니, 예로부터 ‘기온’은 귀신들이 드나드는 길목이었다 한다. 그리하여 이곳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귀신들에게 공양을 하던 것이 오늘날 기온마쯔리였다. 그리하여 두 풍속을 연결해 보니 황실에서는 사원에서 여법하게 스님들께 공양을 한 후 시아귀작법을 하였고, 민가에서는 귀신(萬靈)에게 공양한 뒤 잔치를 하였다. 필자는 그날 점심은 산젠인 황실 재자들의 공양에 초대를 받았고, 저녁은 기온마쯔리의 포장마차에서 끼니를 때웠다. 한낮에 본 황실의 격조와 황가와 승단의 특이한 전통에 대비되는 거리 풍경 이야기들이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좀더 많은 지면이 필요하므로 다음 기회를 빌어볼까 한다.

천태 총본산 엔라쿠지는 사이초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천태쇼묘의 본격적인 교육과 연마는 엔닌 스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엔닌 스님은 ‘입당구법순례행기’에서 산동적산원의 신라 사람들이 노래하는 범패 중 한낮에 하는 신라풍 범패가 일본의 것과 같았다고 하였다. 아마도 그와 같은 선율은 당풍이 유입되기 전 신라와 백제로부터 전승해온 선율이었을 것이다. 국경이 바뀌어도 강물은 흘러가듯이 노래는 왕조가 바뀌어도 불린다. 그러한 점에서 엔닌 이전의 신라풍 율조가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번 여름 여러 사찰을 다니며 들었던 선율 중 신라풍 범패와 연결되는 율조를 골라 본다면 민요조의 범패를 하였던 정토종 쇼조케인의 범패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앞으로 많은 연구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한국의 진감선사와 엔닌 스님의 당풍 범패 전래를 비교해 보면, 진감선사는 830년에 귀국한 이후 상주 남장사에 머물다 하동 쌍계사로 옮겨와 본격적으로 당풍 범패를 가르쳐 신라 전역에 전파되었다. 진감선사가 귀국한 때는 신라 말기였으므로 고려시대에 더욱 활발하게 전승되었을 테지만 고려 후기에 원나라를 통하여 티베트 불교가 들어와 변화를 겪었고, 조선시대에는 억불로 인하여 범음성이 약화되었으며, 일제의 사찰령으로 염불원이 폐지되었다. 그러자 범패를 담당하던 승려들이 설자리가 없어지며 세속화 내지는 예술화의 과정을 거쳤고, 오늘날 쌍계사에는 범패전승의 맥이 연결되지 않고 있다. 

이에 비해 엔닌은 848년 3월에 제자들과 함께 귀국하여 6월에 전등대법사위(傳燈大法師位)를 받고, 7월에 내공봉십선사(內供奉十禪師)에 보임되었으며 854년 4월에 천태좌주(天台座主)가 됐다. 스님은 864년 1월14일에 입적했으며, 866년 7월 자각대사(慈覺大師)의 시호를 받았다. 일본도 가마쿠라시대에 송의 불교 전통을 배워오기도 했지만 엔닌 스님이 전한 당풍 범패는 엔라쿠지를 통하여 지금까지 계승되고 있다. 엔닌 스님이 당나라에서 신라인의 범패를 들었던 때는 839년이므로 진감선사와 엔닌 스님은 동시대에 당나라의 범패를 배웠는데 오늘날 한국과 일본이 완전히 별개의 범음성을 전승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번에 산젠인의 구조석장을 악보로 채보해 보니 서로 연결되는 코드가 있었으니 그에 대해서는 논문을 통해 발표할 예정이다.

윤소희 음악인류학 박사·위덕대 연구교수 ysh3586@hanmail.net

 

[1512호 / 2019년 11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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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심 2019-11-13 12:40:50
신라소리와 일본소리가 같았을 정도로
우리에게 배운 것이 많은 일본입니다.
저 당시에 일본은 신라인의 도움 없이는 당나라에 들어가지도 못했지요.
범음성과 음악에 스며있는 교류흔적이 놀랍습니다.

무애 2019-11-13 12:34:03
오하라에는 온천도 좋은데 산젠인의 범음도 있군요.
요즘은 노재팬이라 짠하네요.

장구잽이 2019-11-13 08:13:32
기온마쯔리가 산젠인 우란분 시아귀회와 같은 날이군요. 낮에는 오하라 산젠인을 보고
저녁에는 기온마쯔리를 즐기고 좋은 정보입니다.

해조음 2019-11-12 16:46:17
한국과 일본의 범패 전승 관계가 현실적 얘기로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앞으로의 연구 성과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