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 사바세계

“사바는 ‘견뎌낸다’는 뜻, 중생 괴로움 견뎌낼 수 있어”

사바는 삼고와 팔고는 물론 
온갖 괴로움 갖추어져 있고 
조금의 즐거움도 없는 세계
​​​​​​​
극락세계 일체 괴로움 없고 
온갖 즐거움 누리는 곳으로 
아미타 부처님 복덕과 지혜 
신통과 도력으로 성취 장엄 

사바세계에서 인간 삶의 마지막 관문은 죽음이다. 인도 갠지스강 강변에 위치한 3000년 된 화장터, 이곳의 불은 한 번도 꺼진 적이 없다고 한다.  
사바세계에서 인간 삶의 마지막 관문은 죽음이다. 인도 갠지스강 강변에 위치한 3000년 된 화장터, 이곳의 불은 한 번도 꺼진 적이 없다고 한다.  

“제 22칙 : 사바세계를 싫어하여 떠나고 극락세계를 좋아하여 구할지라.”

‘아미타경’에서 말씀하시길 “여기에서 서쪽으로 십만 억 불국토를 지나가면 극락이라 이름하는 세계가 있고, 그 세계에는 명호가 아미타인 부처님께서 계시나니, 지금 그곳에서 안온히 주지하시면서 법을 설하시고 계시느니라”하셨고 또 말씀하시길 “저 국토를 어떤 인연으로 극락이라 하는가? 저 국토의 중생들은 어떠한 괴로움도 없고 오직 온갖 즐거움만 누리나니, 이러한 인연으로 극락이라 하느니라”고 하셨다.

극락세계에는 일체 괴로움이 없고 온갖 즐거움만 누리는데 이는 극락세계는 아미타부처님의 복덕과 지혜, 신통도력으로 성취하여 장엄된 까닭이다. 그러나 우리가 거주하는 세계에는 삼고(三苦), 팔고(八苦), 헤아릴 수 없는 온갖 괴로움이 갖추어져 있고 조금도 즐거움이 없으므로 사바세계라 한다. 범어인 ‘사바’는 번역하면 바로 ‘견뎌낸다’는 뜻으로 그 가운데 중생들은 일체 괴로움을 견뎌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이 세계에도 전혀 즐거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즐거운 일은 실제로 대부분 괴로운 일로 단지 중생이 어리석어 오히려 즐거움으로 여길 뿐이다. 설사 진정으로 즐거운 일일지라도 또한 오래가기 어렵다. 예를 들면 부모님께서 모두 살아계시고 형제도 뜻밖의 일이 발생하지 않는 이러한 일이 어떻게 오래갈 수 있겠는가? 그래서 사바세계에는 실제로 즐거움이 조금도 없다고 말해도 전혀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 세계의 괴로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지만, 삼고 팔고에 남김없이 포함할 수 있다. 

삼고는 바로 첫째 괴로움은 고고(苦苦)이고 둘째 즐거움은 괴고(壞苦)이며 셋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은 행고(行苦)이다. ‘고고’의 뜻은 마음에 들지 않은 경계에 대하여 오음(五陰)의 몸과 마음을 몰아대는 까닭에 고(苦)라고 한다. 게다가 생로병사 등의 괴로움을 오랫동안 받는 까닭에 고고라 한다. ‘괴고’는 “세상에서 마음에 드는 어떤 일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겠는가”라는 말이다. 해는 정오가 되면 서쪽으로 기울고, 달은 보름이 지나면 이지러지기 시작하듯 하늘의 도는 모두 이와 같은데, 하물며 인간세상의 일이겠는가? 즐거운 경계가 막 출현하자 괴로운 경계가 이미 닥쳐왔고, 즐거운 경계가 무너졌을 때 그 괴로움은 차마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즐거움을 괴고라고 한다. ‘행고’는 비록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이 적절한 듯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덧없이 변화하고 오래도록 유지할 수 없어 행고라 한다. 이 삼고는 모든 괴로움을 남김없이 포함한다. 

팔고의 뜻은 경전에서 상세히 강술하고 있다. 이 세계의 괴로움을 안다면 사바세계를 싫어하여 떠나려는 마음이 뭉게뭉게 일어날 것이고, 극락세계의 즐거움을 안다면 극락을 좋아하여 구하려는 생각이 반드시 무성하게 일어날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일체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을 봉행하여 왕생하는 기초를 배양하고, 다시 지성심과 간절한 마음으로 부처님 명호를 집지하여 서방에 태어나길 구하면 이 사바세계를 벗어나 저 극락세계에 태어나 아미타부처님의 참 제자가 되고 연지해회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제23칙 : 부처님께서 특별법문을 여시니 상중하 근기 금생에 진실한 이익을 얻는다.”

승조대사께서 말씀하시길 “천지의 안, 우주의 사이 그 가운데 보배 하나가 있어 육신·심성의 산에 숨겨져 있다”고 하셨다. 이 말씀은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을 기준으로 말한 것이다. 실제상으로는 이 보배는 허공 일체를 포함하여 공간상으로 궁진함이 없고 시간상으로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으며 고금을 바로 꿰뚫어 언제나 밖으로 드러나 있다. 포대 화상께서 “시시때때로 세상 사람에게 보이나 세상 사람은 스스로 알지 못한다”고 하신 말씀과 꼭 같다. 이 어찌 슬프지 않단 말인가? 오직 우리 석가세존 한 사람만이 몸소 수용할 수 있다. 나머지 일체중생은 이 일겁에서 저 일겁에 이르도록 단지 이 보배의 위신력에 기대어 미혹을 일으키고 업을 지어 육도에 윤회하면서 벗어날 날이 없다. 마치 눈먼 사람이 몸소 보배산에 올라도 수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상처를 입고 만다. 

이로 말미암아 세존께서는 근기에 수순하여 잘 맞게 열어 보이시고 사람들이 각자 길을 나서 집으로 돌아가게 하셨다. 저 육근과 육진, 육식과 칠대 등 바깥경계의 연분에 맡겨 반야지혜로써 면밀하게 살펴보면 이러한 보배를 직접 볼 희망이 있다. 그렇지만 반야의 지혜 관조를 갖추어 지금 이 자리에서 오온이 다 공하고 일체 고액을 제거한 사람이 비록 그 사람이 많이 있을지라도 말세 둔근 중생이 할 수 있길 바라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마침내 특별법문을 여시니 상중하 근기 모두 함께 이번 생에 진실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희망이 있다. 이는 바로 일체중생에게 깊은 믿음을 내어 간절히 발원하여 아미타불 거룩한 명호를 전념하여 육근을 모두 거두어 들여 청정한 염을 이어가게 하심이다. 오랜 시일이 지나 중생의 업식의 마음이 여래의 비밀장에 훈습하면 삼매의 보배로 말미암아 실상의 보배를 증득하니 이 때 비로소 이 보배가 법계에 두루 가득 함을 알 것이다. 그런 후 대보리심을 발하여 다시 이 보배로써 일체중생에게 널리 보시할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친히 이 법문을 여신 이래로 일체보살, 조사와 선지식이 모두 이 법문을 좇아 행하였다. 왜냐하면 자력과 타력을 모두 갖추니 오직 자력에 기대어 해탈하는 법문에 비해 그 어렵고 쉬움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제24칙 : 믿음과 발원을 갖추어 일심에 녹여 아미타여래 만덕홍명을 염하라.”

우리가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을 갖추어 자식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듯 육근을 모두 거두어 들여 청정한 염을 계속 이어가 염할 수 있으면 곧 ‘대세지보살의 일념을 돌이켜 자신의 성품을 염하고’ ‘관세음보살의 들음을 돌이켜 자신의 성품을 듣는다’는 두 겹의 공부로써 일심에 녹여 아미타여래의 만덕홍명을 염하는 것이다. 오랜 시일이 지나면 중생 업식의 마음이 여래의 비밀장을 이룰 것이다. 이를테면 과지의 각을 인지의 마음으로 삼는 까닭에 인이 과의 바다를 통달하고 과가 인의 근원을 꿰뚫는다. 연분이 있어 이 법문을 만나는 사람은 절대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이는 미진수 부처님께서 한길로 열반에 이르는 문이니 말법 사람이 어찌 따르지 않겠는가?

허만항 번역가 mhdv@naver.com

 

[1512호 / 2019년 11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