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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정호승의 ‘풍경 달다’

기자명 김형중

운주사 와불 참배하며 임을 위해 기도
임은 풍경·내 마음은 바람에 비유한 시

운주사 풍경 가슴에 매달고 와
그곳 바람소리·풍경소리 들어
기도 간절할 때 부처 감응 있듯
연인들의 사랑 고백도 같은 법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산사의 풍경소리, 바람소리, 시냇물소리, 목탁소리, 범종소리, 예불소리, 독경소리 등은 아무리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향기로운 소리(香聲)이다. 특히나 풍경은 바람소리와 짝이 되어 밤낮으로 잠도 자지 않고 임을 기다리다가 바람이 먼저 기척을 하면 곧바로 쟁그랑쟁그랑 반가이 반응을 한다.

11월 대학입시기도 하려 경내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풍경소리가 반가이 맞이한다. 법당에서 졸고 계신 부처님께도 “부처님, 이 보살님이 또 입시기도 하러 오셨네요. 어지간하면 기도를 들어주셔유. 정성이 갸륵하잖아요.” 하고 아뢴다.

정호승(1950~현재) 시인의 ‘풍경 달다’는 운주사 와불님(臥佛)께 참배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를 했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와 사랑하는 임에게 마음속으로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습니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요”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속으로 속삭임의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임을 풍경에, 자신의 마음을 바람에 비유하여 쓴 감각적인 서정시이다. 시인은 아예 운주사 풍경을 자신의 가슴속에 매달고 왔다.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시인은 ‘임을 그리는 간절한 마음’을 복선으로 깔아 연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홀로 멀리 있는 그곳의 바람소리와 풍경소리를 듣고 있다. 어느 고승의 마지막 유언이 “봄바람 불어 법당 앞에 홍매화 피면 내가 온 줄 알아라” 한 것과 같은 풍류의 시구다. 

정호승의 ‘풍경 달다’는 조선시대 기생인 홍랑(洪嫏)이 삼당(三唐)시인 최경창(崔慶昌)에게 준 ‘묏버들 가려 꺾어’의 시조에서 인유(引喩)하였다.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임이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 잎 나거든 나인가 여기소서”

정호승의 ‘어른이 읽는 동화’에 ‘풍경소리’가 있다. “비로전 처마 밑에 매달린 풍경도 땡그렁땡그렁 맑은 소리를 냈습니다. 산사는 풍경소리에 더욱 고요히 깊어갔습니다. 언제 찾아왔는지 노을빛이 지리산 단풍잎이 눈부셨습니다. 풍경에 매달린 얇은 물고기에도 노을빛이 눈부셨습니다.” ‘어린왕자’처럼 순수한 동심과 자연의 마음이 담긴 자유시 형식으로 쓴 동화이다,

가을 단풍에 물든 산사의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허공에 홀로 매달린 물고기는 밤마다 잠을 자지 않고 서방정토를 향해 먼 여행을 하고 동이 트기 전에 돌아온다. 물고기는 잠을 잘 때도 눈을 뜨고 잔다. 항상 정진하며 깨어있는 그의 모습에서 수도승에게 귀감이 되는 스승이다. 그래서 예불할 때 치는 목탁도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풍경소리도 바람이 불어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부처의 영험도 기도하는 사람의 간절한 마음이 다가가야 감응한다. 연인들의 사랑 고백도 그렇다. “마음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누워도 땡그렁 땡그렁” 풍경소리가 난다.

정호승 시인은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로 등단,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 ‘첨성대’, 1982년 조선일보 단편소설 ‘위령제’, 산문집으로 ‘소년부처’ 등 불교적 소재를 가지고 좋은 시를 많이 쓴 시인은 자신의 삶이 가장 불교의 정서와 사유에 가깝다고 고백하였다. 한국문단에서 시, 소설, 산문 등 문학 전반에 걸쳐 문명을 날린 시백(詩伯)이다.

김형중 문학박사·문학평론가 ililsihoil1026@hanmail.net

 

[1512호 / 2019년 11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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